이유 없이 싫어해서 미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것,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에 내 신경은 더 반응하도록 진화된 듯하다.
직장에 꼭 만화 짱구에 나오는 유치원 원장 선생님을 닮은 사람이 있다. 네모나고 검지만 반들거리는 얼굴, 새까맣고 굵은 직모 머리카락, 키에 비해 짧은 다리를 가진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리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40대 한국 남자이다.
나에게 별 잘못을 한 적도 없고, 일적으로 그리 부딪힐 일도 없는데 난 그 사람이 참 싫다. 굳이 굳이 싫은 이유를 대라면, 발목 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목소리가 너무 저음이고, 다 같이 먹는 간식을 지나치게 많이 게걸스럽게 먹고, 가글 하듯 물을 마시고, 너무 성급하게 걷고, 껌을 자주 씹기 때문이랄까.
나도 안다. 아주 많이 사소하다는 것을. 내가 만약 이러저러한 이유로 당신이 싫다고 한다면, 그 짱구 유치원 원장을 닮은 사무실 동료는 세상 어이없는 표정을 짓지 않을까.
하지만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싫은 감정을 갖는 일은 내 쪽에서도 세상 피곤한 일이다. 사람을 싫어하는 일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 일거수일투족을 굳이 관찰해야 하고, 탁탁 거슬리는 행동들이 여지없이 발견되면 거기에 따른 내 신경세포들의 연쇄적 반응을 견뎌야 한다. 같은 행동을 다른 사람이 했을 때보다 내가 싫은 그 사람이 했을 때 훨씬 더 크고 부정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마련이니 내 신경은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또한 무고한 사람을 싫어한다는 그 죄책감은 어이할꼬.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이래저래 나를 지치게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싫어하는 감정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오늘은 그 사람이 사무실에서 아주 작게 노래를 부르는 거야. 무슨 일인지 기분이 좋았나 봐. 잘 들리지도 않았는데, 너무 거슬렸어. 근데 굳이 굳이 그 거슬리는 소리에 귀를 잔뜩 기울이며 노래를 듣고 있었어, 내가. 혼자 인상을 쓰고.”
가끔 친한 친구에게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너도 참 별나다. 세상 사람들 남들에게 그리 관심 없는데 뭘 그렇게 관심을 가지니?"
"그러게, 근데 관심을 갖고 싶지 않아도 갖게 돼. 이런 게 강박증인가?"
"안됐네 친구, 사무실에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 대신 이유 없이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봐. 싫어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말고 좋아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것은 어때?"
그렇다. 이왕 남에게 에너지를 쓰는 거라면 싫어하는데 쓰는 대신 좋아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것이 훨씬 건설적일 것이며 내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회사에서 이유 없이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회사 생활을 꽤 해본 나로서는 그런 경험은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