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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Dec 11. 2020

호텔침구가 뭐길래...

이 주 후면 10년 넘게 살았던 이곳을 떠나 이사를 간다. 이사를 대비해 살림을 정리하다 보니 버릴 짐이 한가득이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 살 리스트를 정리해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주문을 시작했다. 그중에서 딸의 침구세트가 제일 먼저 택배로 도착했다. 나는 당연히 딸이 좋아할 줄 알고 침구세트를 펼쳐놓고 설명을 늘어놓았다.


”봐봐, 이쁘지? 엄마가 엄청 고심해서 고른 디자인이야. 알레르기 방지 기능도 있데.”

“근데, 이 가장자리 장식은 뭐야?”

“아무 장식 없는 것보다는 이런 프릴이 달려있는 게 이쁘더라고. 왜 이상해?”


미간을 찌푸린 채 팔짱을 낀 딸은 한동안 말이 없다. 

내 눈엔 흠잡을 곳 없이 예쁜데 도대체 어디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걸까? 


“엄마, 내 건 나랑 상의하고 고르면 안 돼?”

“아니, 네가 평소에 말한 호텔 침구 스타일이 이런 거 아닌가? 색도 하얀색이고…”

“호텔에서 이런 프릴 달린 침구 봤어? 어디가 호텔 스타일인데?”

“애가 어디서 소리를 질러? 엄마가 사줬으면 고맙게 생각할 일이지, 네가 돈 내냐?”

“내가 돈 내는 건 아니지만, 내가 덮고 자는 거잖아. 그럼 내 말을 들어야 하는 거 아냐?”


어느새 딸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나는 순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아니 뭐가 속상해서 눈물까지 흘리는 걸까? 며칠 동안 인터넷으로 수십 가지 침구를 비교하고 리뷰를 확인하며 제일 좋은 것으로 사다 받쳐도 이렇게 푸대접을 받아 서러운 건 난데…


순간 어린 시절 엄마가 새 책상을 사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내 정든 책상은 사라지고 낯선 새 책상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어 상당히 속상했던 일. 나는 엄마에게 왜 내 책상을 엄마 마음대로 갖다 버리냐며 울며 대들었고, 엄마는 새 책상을 사줘도 고마운 줄 모른다며 화를 냈었다. 하지만 나는 커다랗고 허연 그 새 책상이 싫었다. 좀 작아도 나무로 된 예전 책상이 그리웠고, 엄마가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본인 마음대로 책상을 바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는 대놓고 물어보지 않으면 상대방 마음을 잘 모른다. 새것이라고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내 눈에 호텔 침구처럼 보인다고 딸 눈에도 그리 보이란 법은 없다. 나는 미리 딸에게 물어봤어야 했다. 


결국, 프릴 달린 새 침구는 내가 쓰기로 했다. 내 침대 사이즈에는 좀 작지만(내 침대는 킹이고 딸은 슈퍼 싱글이다), 어차피 혼자 덮을 거고 나도 여분의 이불이 필요했던 탓에 그리 정했다. 그리고 딸 침구는 본인더러 고르라고 했다. 딸이 어떤 침구를 고르건 간섭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결제만 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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