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다. 최근 잇따라 보도되는 전기차 화재 때문만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성장세가 주춤하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인데, 대부분의 국가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적잖은 제조사들은 전기차의 비싼 가격을 소비자들에게 납득 시키기 위해 중대형 럭셔리 지향 전기차들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전기차 구입동기에서 ‘친환경성’을 고려하는 경향이 덜한, 한국과 미국 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시장에서 전기차는 대개 ‘친환경적인 차’보다는 ‘압도적인, 최첨단의’ 고성능차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전기차 사업을 전개하는 일론 머스크의 존재가 그리 넌센스도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전기차 보급률을 확대해나가기 위해서는 유럽 시장의 사례를 좀 더 참고해야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탄소 감축 목표치를 요구하는 유럽 시장의 경우, 전기차 라인업이 다양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유럽 시장에서는 2000만원대, 더 심하게는 시트로엥 아미(Ami)처럼 시작가 1100만원 정도의(7,695유로) 마이크로카가 등장했다. 미니 3도어 전기차, 피아트 500ev, 푸조 e208, 르노 메간 E-Tech 일렉트릭과 같은 소형 라인업도 폭넓게 제공하고 있다. 저조한 충전 인프라 보급률(EU 전체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대수가 한국과 비슷한 수준)에 비해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계층이 접근 가능한 선택지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전환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제조사들도 좀 더 접근 가능한, 다양한 EV 모델들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아 EV3는 한국 시장에서도 좀 더 다양한 선택을 제공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차를 처음 접했을 때 상당한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전에 필자의 위시리스트에 있었던 르노 조에와 비슷한 수준의 가격을 가지고, 조에에서 느낀 아쉬움과 불편함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르노 조에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에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나왔던 소형 전기차들은 대부분 상당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산 소형 전기차를 반조립 상태로 들여오던 영세 사업자들은 A/S에 무책임했다. 전기차라는 사실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다보니, 동급 내연기관 자동차 대비 상품성이 지독하게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숱한 오판이 반복되면서 내연기관 베이스의 친숙함과 대체하기 어려운 강점을 가진 레이EV와 택시 모델로도 판매되고 있는 니로EV 정도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EV3는 분명 지금까지의 아쉬움을 떨칠 수 있는 차다.
내연기관의 익숙함에 젖어있으면서, 동시에 좀 더 넓은 계층에 전기차가 보급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사람으로서 기아 EV3는 반드시 성공했으면 하는 차다. 현대는 아이오닉5N보다 작은 소형 전기 N모델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EV3가 성공해야 소형 전기차 라인업이 더 충실해질 여지가 있다. 물론 필자가 성공을 빌지 않더라도 EV3는 충분히 성공할 것이다. 상당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동급의 내연기관 차에 비해 아쉬움이 있는 것이고, 차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전기차포비아를 이겨낼 잠재력이 충분한 차다. 다만 이 리뷰에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EV3의 단점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향후 상품성 개선과정을 통해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놓는 것이다. 칭찬을 하는 리뷰는 이미 충분히 많이 누적되어있어, 장점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