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별빛 Feb 03. 2021

아이의 재능이 독이 되지 않으려면...

'잘하고 못하고의 경계가 없는 호주 초등교육'


안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가끔 내 아이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혹시 하는 마음에 내 꿈을 투영할 때가 있다.
미술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아이에게 대리하려는

욕심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합정동이 고향인 나는 어릴 적부터 동네 마실 나가듯
홍대 거리를 거닐곤 했다.
당시 지금의 번화가로 자리매김하기 전 홍대 거리는
미대가 유명한 것만큼 화실이 즐비했다.
화구통을 옆구리에 메고 다니는 미대 언니 오빠들은
참 근사해 보였다.


화방에서 멋몰라도 그저 좋아 보이던 물감이나 종류별로 늘어선 색연필, 파스텔 톤으로 은은하게 고급진 색도화지들은 참 신세계였다.
그 영향 때문이었는지 나는 미술학원을 초등학교 3학년부터 5학년까지 꼬박 3년을 다녔다.
중간에 주산학원도 가기 싫다고 울며불며 때려치우고 피아노도 몸부림칠 정도로 거부한 것을 보면
미술은 내 의지로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림은 재능이 없어 실력이 되지 못했고,
딱히 노력으로 거듭나기엔 그다지 간절함이 없었다.
4학년 때 딱 한번, 크레파스 위에 물감으로 덧칠한

운동회 날을 그린 그림이 교실 뒤 게시판에 장려상
딱지를 달고 주간 걸린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까마득하니 미술에 대한 동경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저 누군가 데생하는 모습을 보면 참 멋지다...
바라보는 것으로 딱 좋은, 딱 거기까지
미술이란 내게 성립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그림에서 난데없이 그 말랑말랑한 머리에

내 미련을 주입하고 싶은 욕심이 살랑거린다.

혹시 우리 애가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4차 산업시대, 사라지는 직업도 많다던데..
아이의 창의력엔 미술을 꼭 가르쳐야 하는 건 아닌가
합리화하며 아이를 자꾸 유혹한다.

그림을 곧잘 그리는 아이의 작품을 볼 때마다
정말 미술을 좋아하게 된 것인지..
엄마의 의지로 이끌려온 결과인지..
아니면 그 나이 때가 주는 아무 생각 없는 순수함인지
궁금해진다. 행여 내 나름의 해석이 아이의 팔다리를
내 손으로 휘저어 움직이게 하는  아닐지

덜컹 겁이날 때도 있다.



호주 초등교육에서 재능을 미리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잘하고 못하고의 경계가 없다 보니
모든 아이들의 결과물엔 excellent, fantastic, great
의 소견과 칭찬이 주어진다

아이들이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니 늘 해맑고 순수하게 뛰논다.

엄마로서 조금의 기대를 실어 질문할 때도 아이 담임은

" 벤자민은 그림 그리는걸 참 좋아해요 "
" 계속 지켜봐 주세요"​

정도의 답으로 절대 선을 넘지 않는다.

타고난 재능이 어린아이에게 독이 될 수 있음을
조심스러워한다고 해야 할까.
좋아하는 과정 속에 잘하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저 마구마구 왕성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재능이라는 한가지에 갇혀 사고하다 보면 자칫 다른 곳으로 자라나지 못하는 비극을 미리 차단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무언가 뛰어나지 않아도 잘한다는  칭찬이,
정말 대단한 무언가를 생산해내고 최고의 자리의
재능으로 키워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끊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체적으로 찾아 뻗어 가는 원동력은 될 것이다.

어른이 된 후에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이게 진짜 내가 원한 삶은 아니라고 말한다.

잘 돌이켜보면 최고가 될 수 있는 커다란 재능이
아니라면 섣불리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채우지 못한 셔츠의 단추보다 잘못 채워진
단추가 그만큼의 경험치를 내 것으로 남길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 소중한 시행착오가 용기와 자신감이 되어
더 단단한 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말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아는 삶을 살길 바란다. 무한한 호기심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면

더 좋다. 그 과정 속에 자신을 더 알게 될 테니까.

나는 그저 자라나는 어린나무에 때맞춰 넉넉히 물을 주고
반짝이는 햇살 잘 받을 수 있게
훤한 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부모인  몫일 것이다.

어느 쪽으로 가지를 뻗느냐는 주체적으로
살아갈 우리 아이의 마음이겠지..
아이가 엉뚱한 것에 관심을 쏟아 걱정스러워 잠 못 이뤄도
그 자체로 존중해주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길
오늘도 꾹꾹 나의 욕심을 밟고 다짐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주 구름의 재발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