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앙케트에서 최악의 남편감으로 '하늘이 내린 효자'가 1위를 차지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보다 더 최악은 세상 누구보다 자유 영혼이었던 사람이 결혼과 동시에 하늘이 내린 효자로 둔갑하는 경우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깔깔 대며,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겼던 그때의 나. 그러나 이게 웬 걸.
나 하늘이 내린 효녀가 됐나 봐. 설상가상, 그것도 결혼 뒤 둔갑한 케이스랄까.
사실 결혼 전 나는 단 일분도 허투루 쓰지 않는 신여성-이 되고 싶었던 삼십 대였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늘 바빴다고 자부했던 나는 지구력은 없지만 다양한 걸 배우는 데 희열을 느꼈다. 평일은 회사와 운동, 주말은 데이트와 모임들로 빠듯하게 시간을 채우고 틈틈이 원데이 클래스나 학원 등을 신청하여 오로지 '나' 자신에 집중했다. 가족행사도 빠지는 일이 다반사였고, 집은 하루의 끝을 마무리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가는 곳처럼 살았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왜 결혼과 동시에 세상에 둘도 없는 효녀가 되어버린 걸까. 남편인 J군과 함께 알콩달콩 시간을 보낼 때는 잠시 잊었다가도, 혼자 있을 때면 알 수 없는 외로움과 함께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동안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진심으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예를 들면,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고서는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집안일을 할 때,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불 꺼진 거실을 마주했을 때, 낯선 동네의 어두운 밤길을 걸어갈 때 등 혼자 겪는 일상은 내게 가족의 부재를 적극적으로 말하는 듯했다. 내가 이렇게 가족공동체적인 사람이었던가? 스스로 의아해하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던져진다는 것은 곧 익숙지 않은 내 모습을 계속해서 발견해가는 일이었다.
유학을 가보거나 자취를 해봤으면 그나마 좀 덜 했을 것 같은데, 결혼 전까지 단 한 번의 독립된 생활을 해본 적이 없던 내게 결혼은 헐거운 엄마의 구두를 반쯤 신은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의 발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혼 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메리지블루를 그제야 느꼈던 걸까. 나는 혼자 있을 때면 늘 그리움, 고마움, 미안함 등의 복잡한 감정들 속에서 헤매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결혼 초, 갑자기 변한 생활환경에 이러한 심리적 변화를 겪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때의 요동치던 마음을 잠재우는 것은 늘 남편 J군의 역할이었다. 혼자 일기장을 사서 글을 적어도 보고, 산책도 해보고,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것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았던 공허한 마음은 결국 나의 새로운 가족만이 해결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기가 막히게 나의 업 앤 다운을 눈치채 내는 남편 J군과 말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나의 성격의 조화였다.
어느 날 밤, 이유는 모르지만 무언가 평소와는 다른 나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느낀 남편 J군. 그러나 쉽사리 이유를 말할 리 없는 옹고집 아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그. 연애시절에도 이런 날이면, 신경 쓰지 말라는 나의 말에도 자기한테 소중한 사람이 뭔가 문제가 있는데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맞는 일이냐며 너무도 낯간지러운 말을 낯간지럽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던 J군.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결국 늘 입을 열고는 만다.
으어어헝~엄마가 보고 싶어
라는 말과 갑자기 터진 울음. 당황스럽지만 당황스럽지 않게 어이없지만 어이없어하지 않고 다독이며
어이구 서른두 살이 되어도 엄마가 보고 싶어~? 보고 싶으면 보면 되지
라며 해주는 단순한 말이 심심한 위로가 된다. 별 것 아님에도 그냥 마음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고,누군가의 공감만으로도 까마득한 밤하늘에 한 줄기 빛이 드리운다. 이 날의 길고 긴 대화는 인생 1막의 아쉬움을 쿠키영상으로 달래주고 자연스럽게 인생 2막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어쩌면 남자 친구에서 남편으로, 남편이자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1막의 출연진들이 조금씩 자리를 비워줬던 건 아닐까. 일련의 감정을 지나오며, 일련의 사건을 함께 겪으며 관계의 깊이를 더해가다 어느새 연리지 나무처럼 하나가 되는 것이 결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