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겨찾기 Dec 06. 2019

친구들의 장난감을 갈취하다

둘째가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장난감을 강제로 요구했다는데...

 둘째의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상담 약속을 잡자는 의사를 전해왔다. 이전에도 3개월 마다 한번 씩 상담을 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약속 시간을 정했다. 다만 부모가 함께 오라고 한 것이 조금 의아했다. 이전에는 한 명만 오면 된다고 했었다.     


 어린이집 상담실에 앉아 마자 선생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우리의 독일어가 서투르기 때문에 상담은 영어로 진행된다. 독일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대부분 영어를 못 하지만 한두 명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있다.     


 “오늘 오시라고 한 건 최근에 있었던 어떤 사건 때문이에요.”

 “무슨 일이 있었죠?”     


 “저도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이가 친구들에게서 장난감을 강제로 요구했어요. 폭력을 쓴다거나 위협해서 뺏은 건 아니고 장난감을 선물로 주지 않으면 친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나 봐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아이에게 장난감을 선물로 주었대요.”     


 “네? 최근에 아이가 친구들의 장난감을 가져온 적이 몇 번 있기는 합니다만, 아이가 말하기를 친구들이 선물로 주거나 빌려준 거라고 하던데요?”

 “아니에요. 아이가 그걸 강요한 거예요.”     


 아내와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 너무 황당해서 화가 난다기 보다는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선생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단지 장난감이 너무 갖고 싶어서 그랬나 봐요. 심각한 문제는 아니고 우스운(funny) 이야기에 가까워요. 더 이상 친구 안 하겠다고 해서 장난감을 주었다는 게 너무 재밌잖아요. 아이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고, 친구들과 잘 지내요.”     


 “그래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군요. 친구들에게 장난감을 강제로 요구할 만한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저희가 장난감을 안 사준 것도 아니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이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걸 매몰차게 거절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집에 장난감 많은데 또 사려고 해?”,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건데 여기서 장난감 많이 사면 가져가지도 못해.”    

 

 때로는 장난감 욕심을 부리는 아이에게 심한 말도 했다. “돈이 모이기만 하면 장난감을 사다니, 정말 돈 아깝다 돈 아까워.” - 우리는 아이들에게 매주 2유로를 용돈으로 준다. - “맨날 장난감만 사서 나중에 뭐가 되겠니?”        

 장난감을 더 잘 사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 때 선생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도 몰랐는데, 다른 친구들 학부모에게서 항의가 들어왔어요. 일주일에 하루씩 장난감 날(Spielzeugtag)이 있잖아요.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져 왔다가 빈손으로 집에 갔나 봐요. 어떤 날은 장난감을 두 개 가져갔다가 한 개만 가지고 왔대요. 어머니들이 물어보니 친구한테 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몇 명한테서 어떤 장난감을 받은 지 아시나요?”     

 “4명으로 알고 있어요. 바쿠간(bakugan, 공 모양에서 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난감)과 레고에요. 특히 바쿠간이 문제에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어서 서로 더 많이 가지려고 해요.”      


 “그렇군요. 4명이 누군가요?”     

 “마테오, 레오나스, 프리츠, 에밀이에요. 마테오와 레오나스한테서 바쿠간을 받았어요. 마테오는 여러 개를 주었나 봐요.”     


 아이가 친구들한테서 선물로 받았거나 빌려온 장난감이라면서 자랑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어떤 장난감들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이에게 단단히 주의 주겠습니다. 심려 끼려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심각한 잘못은 아니에요, 제가 아이에게 얘기해서 장난감 다시 가져오라고 한 다음 전부 돌려주었어요. 다만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이에게 그 점을 얘기 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독일 어린이집은 대부분 공립이지만 소속 재단은 다양하고, 재단마다 운영 방식이 다르다. 첫번째 어린이집과 달리 두번째 어린이집은 3개월 마다 한번 씩 학부모 상담을 실시한다.

 어린이집을 나오는 아내의 표정이 심각했다. 나 역시 아이에게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게 놀라웠지만, 나는 걱정되기 보다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성향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잖아? 우리한테서 배운 것도 아닐 텐데... 우리가 장난감을 너무 안 사줬나?”

 “몰라, 모르겠어. 너무 걱정되고, 부끄러워. 교육을 잘못 시켰나봐.”

 “잘 모르고 그랬을 수도 있지. 주의주면 다시는 안 그럴 거야.”

 “몰라, 자기가 한 번 얘기해봐. 이따가 집에 데려 오면서 빵집이라도 가서 남자 대 남자로 진지하게 얘기해봐. 다시는 그런 일 절대 없도록.”    


 그날 오후 어린이집으로 갔다. 보통 때는 엄마가 데리러 오기에 아이는 의아해했다.


 “왜 엄마가 안 왔어요?”

 “오늘 아빠가 할 얘기가 있어.”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다. 다짜고짜 혼낼 수는 없고, 추궁하듯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아이의 입에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는 게 우선일 듯했다.     


 “얼마 전에 마테오한테서 장난감 받아온 거 있잖아. 그거 마테오가 선물로 준 거라고 했지? 어떻게 받은 거야?”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이미 한 차례 홍역을 겪어서인지 곧바로 움츠러들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약간 말까지 더듬으면서 말했다. 평소 그렇게 씩씩하고 또박또박 말하던 아이가 더듬더듬 말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둘째는 당황해서인지 논리적으로 말하지 못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횡설수설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변명을 하느라, 핑계거리를 꾸며내느라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가 말을 마칠 때까지 가만히 듣기만 했다.     


 논리적이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듣다보니 사정은 이러했다.      


 마테오가 예전에 장난감을 선물로 준 적이 있다. - 두 달 전쯤 있었던 일로 나도 기억이 났다. - 그건 진짜로 준 거다. 그런데 얼마 전에 마테오가 장난을 치다가 나를 다치게 했다. 화가 나서 같이 놀지 않는다고 했더니, 마테오가 다시 친구하자면서 졸랐다. 나는 싫다고 했지만, 마테오가 친구하자고 조르면서 장난감을 주었다.        

문제의 장난감, 바쿠간

 어린이집 선생님이 했던 말과는 조금 달랐다. 말이라는 게, 서로의 입장 차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니까. 선생님이 했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아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물론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반대로 마테오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아이에게 불만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런 상황이 그려졌다.


 아이가 두 달 전에 장난감을 한번 주었는데, 이번에 또 주었다. 장난감을 어떻게 했냐고 아이에게 물었더니 친구에게 주었다고 했다. 친구에게 왜 주냐고 물으니, 안 주면 친구 안 하겠다고 해서 주었다고 대답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다른 장난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친구 안 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장난감을 선물로 받거나 빌려온 경우는 없었다. 바쿠간을 선물로 준 레오나스는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레고를 빌려 준 친구들과는 서로 장난감을 바꿔서 놀았다.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아이가 잘못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무죄 판결을 내려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아이를 조금이나마 오해했던 게 미안했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 그러한 사정을 얘기했다. 아내는 흥분하면서 마테오의 엄마를 원망했다. 마테오 엄마가 어린이집에 얘기한 게 틀림없다, 아이들 일에 괜히 끼어든 거라면서.     


 그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는지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우리가 아이들한테서 들은 사정은 이러하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가 잘못했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아이의 입장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라고 했다.  편지를 전달 받은 선생님은 별 다른 답을 주지는 않았다. 


 아이의 장난감 갈취(?) 사건은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나는 장난감을 많이 사주지 않은 것과 아이 교육을 잘못 시킨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겨도 믿음을 잃지 않기로 다짐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칭찬은 상어를 기분 나쁘게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