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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겨찾기 Dec 18. 2019

독일에서 타던 중고차를 팔다

차를 팔았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하다.

 독일에서 1년 5개월 동안 타던 중고차를 팔았다. 한국으로 가져가는 것보다는 여기서 처분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판단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계약을 체결한 뒤 딜러에게 차를 넘겼다.     


 다음 날 집 앞을 지나던 중 주차된 차들을 무심코 쭉 살폈다. 자동차가 잘 있는지 확인하던 습관이었다. 불현 듯 그 거리에 우리 차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년 5개월 동안 4만km의 유럽 여행을 함께 했던 차였다.        

 1년의 체류 기간을 예정하고 독일로 오던 2017년 자동차를 리스했다. 씨트로엥 코리아가 유럽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제공하는 서비스로 350일 동안의 비용은 대략 8000유로였다.     

 

 이렇게 리스를 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다. 우선 한국에서 자동차를 미리 예약할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 직후 자동차를 받을 수 있어서 – 픽업 차량을 타고 20분 정도 가야한다 – 주거지로 짐을 싣고 갈 수도 있었다.     


 8000유로는 350일 동안의 보험료가 포함된 금액이고 씨트로엥에서 제공하는 차량은 중고차가 아닌 새 차다. 우리가 리스한 씨트로엥 C4 그랜드 피카소는 7인승 승합차였는데 내부 공간이 넓어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었다.      

 한 가지 문제는 번호판이 튄다는 것이었다. 유럽은 번호판 앞부분에 출신 국가가 표시된다. 독일이면 D, 프랑스면 F, 네덜란드는 NL과 같은 방식이다. 우리가 차량을 대여한 씨트로엥은 프랑스 회사여서 번호판 앞부분에 F가 표시되어 있었다.     

씨트로엥 C4 그랜드 피카소

 유럽이 아무리 하나의 땅 덩어리라고는 하지만 그들에게도 다른 나라 사람은 이방인이다. 국경 마을이 아닌 이상 독일 마을에는 거의 대부분 독일 차만 있고, 프랑스와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 차량이 있으면 눈에 확 띈다.     


 게다가 우리가 씨트로엥과 계약한 방식은 특수한 리스여서 번호판이 빨간색이다. 독일 자동차의 번호판은 하얀색인데, 빨간색 번호판에 프랑스 차량이라니. 이곳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이집이나 대학교, 어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언제나 자동차에 대해 제일 먼저 물어보았다.      

 “자동차 번호판이 왜 빨간색이죠?”     

 그럴 때면 우리는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만 했다.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되물었다.     

 “여기서 차를 사거나 렌트하면 되지 않나요?”      


 만약 우리의 C4 그랜드 피카소가 검은색이었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새까만 검은색 차량에 빨간색 번호판이면 왠지 외교관용 차량 같지 않았을까. 그러면 사람들에게 ‘특별한’ 차라고 둘러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018년 여름이 되어 독일 생활을 조금 연장하기로 했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동차를 사는 것이었다. 자동차 없이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 힘들었다. 교통비가 비싼 독일에서는 시내를 나가더라도 차를 가지고 가는 게 나았다. 여름 방학 동안 여행을 가기위해서라도 자동차는 필요했다.     


 독일에서 중고차를 사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공식적인 딜러를 통해서 사거나, 비공식적인 딜러를 통해서 사거나, 개인적으로 거래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딜러는 벤츠, BMW, 아우디 매장을 말한다. 그런 매장들은 새 차뿐만 아니라 중고차를 함께 취급한다. 비공식적인 딜러는 중고차만 취급하는 크고 작은 업체들을 의미하고, 개인 간의 거래는 인터넷이나 앱을 통해 할 수 있다.    

 

BMW 매장. 새 차와 중고차를 모두 취급하며, 차량의 정기점검 또한 이곳에서 받는다.

 우리가 독일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 씨트로엥을 타고 시내를 운전할 때면 독일 사람들이 차량과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 1년 동안 씨트로엥을 탄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미 계약을 하여 비용을 지급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독일에서 중고차를 사는 절차가 힘들지 않을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자동차를 알아보러 다니는 수고와 괜찮은 자동차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과 거래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했다. 독일어에 서툴러서 자세하게 상담하기 어렵다는 두려움과 매수 후 이어질 복잡한 행정절차는 덤이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들은 모두 쓸데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2주 동안 10군데 정도의 공식 매장을 방문했다. 집 근처에 아우디 매장이 있었고, 자동차 수리 때문에 자주 가던 씨트로엥 매장 근처에 폭스바겐, 오펠, 현대, 기아, 토요타, 혼다 등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는 ‘돈’만 있으면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었다. 자동차의 스펙과 사고 경력 등은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고, 그날그날의 시세에 맞게 중고차 가격이 책정되었다. 딜러들의 말에 따르면 자신들이 임의로 자동차 가격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시스템에 등록된 여러 변수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고 했다.     


 딜러들 대부분은 영어에 능통했고, 50유로만 추가하면 차량 등록부터 번호판 부착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아내와 나는 이구동성으로 “진즉에 사러 올 걸.”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BMW 320 차량을 구입했다. 날렵한 세단이 아니라 투박한 해치백 형태에 회색에 가까운 쥐색이었다. 브랜드와 배기량, 색깔까지 ‘독일의 국민차’라고 불려도 손색없을 정도로 많은 독일인들이 타는 차였다. - BMW 매장에 같은 종류의 중고차만 10대 가까이 있었다.     


 우리가 산 차는 2014년 4월식에 마일리지가 9만 5000km였다. 네비게이션, 루프탑과 에어컨 등의 옵션을 갖추고 있었으며, 가격은 1만 7300유로였다. 독일 사람들은 수동을 많이 사용하지만, 우리 차는 오토매틱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차가 있었다. 지인으로부터 구입한 중고차였는데, 직접 발품을 팔고 장단점을 비교하고 고민해서 선택한 게 아니어서인지 그렇게 애착이 가지는 않았다. 1-2년만 탈 생각이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독일에서 산 중고차는 한국으로 가져갈 생각으로 구입한 것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시내 곳곳을 다니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나름 거금을 들였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를 애착이 갔다. 날렵한 앞모습은 물론 투박한 뒷모습마저 든든해 보였다.      

BMW 320d의 이미지

 아이들도 아내와 나의 그런 마음을 알아챘는지 우리가 산 BMW를 ‘베엠베’라고 부르면서 ‘베이비’처럼 아꼈다. 아이들은 하늘을 향해 열리는 창문에 환호했고, 뒷좌석 가운데에 있는 컵받침에 즐거워했다. - 하지만 아이들은 자동차를 쓰레기장처럼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 아내와 나는 독일의 아우토반을 질주하면서 엔진소리와 안정감에 감격했다.    


 우리의 차는 1년 5개월 동안 서쪽으로는 스페인의 톨레도, 북쪽으로는 독일의 뤼벡,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헝가리까지 우리를 데리고 다녔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이전에는 몰랐던, 이름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작은 마을들까지 갈 수 있었던 건 베엠베 덕분이었다.     


 불법주차로 한밤중에 견인되고, 주행 중 별안간 뒷바퀴의 공기압이 낮아져 차를 멈춰야 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때로는 애물단지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베엠베는 독일 생활을 든든하게 뒷받침 해준 친구였다. -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에서 자동차는 정말 사람과 친구가 된다.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라는 – 아니, 덜 손해라는 – 판단 하에 자동차를 팔기로 했다. 자동차를 파는 것 역시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우리는 개인 간 거래를 위해 중고차 사이트에 등록했지만 한 사람도 연락하지 않았다.      


 비공식적인 딜러들에게 연락을 하기도 하고, 연락이 오기도 했지만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네덜란드에서 연락 온 딜러와 거래가 이루어질 뻔 하였으나 막판에 틀어졌다. 다른 곳에서 같은 종류의 차량을 구입했다는 이유였다.     


 결국 중고차를 구입한 BMW 매장에 다시 팔았다.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판매하는 절차 역시 간편했다. 가격에 합의한 후 계약서에 서명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판매한 금액은 8100유로였으니, 1년 5개월 동안 보험료 포함 대략 1만 2000유로의 사용료를 낸 셈이었다. 


 나는 물건에 애착을 잘 느끼지 않는 편이다. 오랫동안 사용한 물건도 거의 없고, 오래 쓴 물건이라도 물건은 물건일 뿐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며칠 전 팔아버린 차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4만km다. 출퇴근에 이용하지 않았고 시내를 갈 일도 많지 않았으니, 함께 여행 다닌 거리가 대부분이다. 무거운 짐들을 운반해 주고 우리가 묵었던 숙소 앞을 묵묵히 지키던 차였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이유가 독일 생활이 막바지를 향해가서인지, 즐거웠던 지난 시간들이 그리워서인지, 떠나보낸 친구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한 살 더 나이를 먹어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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