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아이슬란드 여행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아내와 내가 큰 감동을 받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물론 자연환경이다. 그 동안 내가 여행했던 장소는 아이슬란드와 아이슬란드가 아닌 곳으로 나눌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독특하고 압도적이고 지구의 것이 아닌 듯한 환경이었다.
두 번째가 바로 오늘 이야기할 숙소이다. 아이슬란드의 주거 문화는 그곳의 거친 환경과 대조적으로 포근하고 따뜻하고 안락했다. 아마도 거칠고 무시무시한 자연에 대응하기 위해 아이슬란드인들이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세 번째로 감동받은 것은 아이슬란드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양(羊)이다. 지구촌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이처럼 평범한 동물에게서 어떻게 감동을 받을 수 있었는지는 아이슬란드에 가 본 사람만 알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회가 될 때 이야기 해보겠다.
우리는 아이슬란드에서 총 9개의 숙소에서 숙박했다. 그중 2개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했고, 나머지는 부킹닷컴을 통해서였다. 이전까지 유럽 여행을 할 때면 언제나 부킹닷컴을 이용했는데, 부킹닷컴의 아이슬란드 숙소는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알아 본 것이었다.
에어비앤비가 부킹닷컴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숙소의 위치를 대략적으로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리뷰와 사진을 보고 예약을 하면, 호스트가 정확한 숙소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에어비앤비는 부킹닷컴과 달리 호스트가 게스트를 평가(리뷰)하는 시스템이 있어서 평이 좋지 않은 게스트의 경우 추후 이용이 제한될 수도 있다.
에어비앤비는 주로 가정집의 일부를 이용한 숙소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호스텔을 예약하는 것도 가능하다. 게스트의 사진을 업로드 해야 하는 등 예약 과정의 수고로움만 제외하면 부킹닷컴과 큰 차이가 없다.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숙소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머문 9박 중 기업형 숙소에서 6일, 가정형 게스트하우스에서 3일을 숙박했다. 기업형과 가정형을 나누는 것이 조금 작위적이긴 한데, 가정형은 가정집의 일부를 이용한 숙소를 말한다. 가정형은 숙소의 사정에 따라 하나의 숙박시설만 있는 경우부터 여러 층으로 나뉘어 여러 개의 방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기업형 숙소는 좁은 방에 두 개의 철제 2층 침대가 놓여 있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형태가 전형적이었다. 주방에는 사람들이 붐벼서 요리할 공간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개의 독립형 건물로 이루어진 숙소도 있으므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기업형이든 가정형이든 우리 가족만 단독으로 숙박한 날이 두 번 있었다. 사람들이 주로 관광하는 남부 지역을 지나 동남쪽으로 가면서부터 – 특히 빙하지역으로 유명한 요쿨살롱을 지나면서부터 – 급격히 인적이 드물어졌다. 그런 낯설고 외딴 곳에서 우리 가족만 숙박하면서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리뷰와 사진을 열심히 봐도 직접 가보기 전에는 숙소의 현황이나 상태를 완벽하게 알기는 어려웠다. 우리의 숙소가 주인집 바로 옆에 붙어 있는지(주인이 동양인을 혐오하는 연쇄 살인마라면?), 넓은 2층집 숙소에 우리 가족만 덜렁 있는지(너무 황량해서 무섭기까지 하다), 아니면 험한 인상의 외국인들과 주방이나 화장실을 공유해야 하는지(그들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다 해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그날 밤이 되어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저 조심하면서 사람들을 믿는 수밖에. 그리고 그런 왠지 모를 걱정과 두려움은 다음날 아침 해가 뜨면 완벽하게 사라지고, 푹신한 침대의 감미로움만 남았다.
다른 사람들과 주방이나 화장실을 공유하는 불편함과 낯선 곳에서 숙박해야 하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 전역의 숙소는 ‘견고함’과 안락함’이라는 두 단어로 압축할 수 있었다. 아내와 나는 매일 숙소를 옮길 때마다 건축 자재의 견고함과 주거 환경의 안락함에 감탄하곤 했다.
우리가 머무는 기간 동안 아이슬란드의 기온은 영하 2도에서 영상 5도 정도였다. 아이슬란드에는 평소에도 바람이 많이 불지만, 우리가 있을 때는 호스텔 관리인조차도 “이런 날은 거의 없다”고 말할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숙소의 벽과 창문은 외부의 차가운 공기와 소음을 완벽히 차단했다. - 독일의 건축 자재 역시 우수했지만 아이슬란드는 그보다 더 뛰어났다. - 숙소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그저 영화 속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아이슬란드에는 외벽에 철판을 덧댄 건물들이 많았다. 그만큼 바깥의 환경이 가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계절 내내 그치지 않는 강한 바람을 견디려면 그만큼 건축물이 더 튼튼해야 한다.
외부의 험한 자연으로부터 차단된 숙소 내부는 언제나 따뜻했다. 차가워진 몸을 녹여주는 포근함과 따뜻함이었다. 건물 내부가 워낙 따뜻하다 보니 창문을 열어 놓고 잠을 자도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화장실과 주방에는 유황이 섞인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그 물에 샤워를 하면 피부가 촉촉하고 매끄러워졌다. 어디나 조리 도구와 식기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북유럽과 가까워서인지(혹은 북유럽 나라들 중 하나라서) 가구들은 북유럽 식으로 심플한 디자인이면서도 실용적이었다.
지열 발전으로 전력량이 넘쳐나는 아이슬란드에서는 온수와 전기를 사용함에 제한이 없었다. 우리나라 국민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지 몰라도,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온수와 전기를 제한적으로만 쓸 수 있는 곳이 제법 많다. 이런 곳에서는 일정량 이상의 전기를 사용하면 두꺼비집이 내려가 전원이 차단된다.
숙소 내부의 시설 중 가장 감동스러웠던 것은 침구였다. 침대가 푹신해서 편안한 것은 물론이고 시트와 이불은 깊은 잠에 빠져들기에 최상의 조건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모든 숙소의 침구 커버는 린넨으로 보이는 얇고 까슬까슬한 천으로 되어 있었다.
따뜻한 숙소의 푹신한 침대에 누워 까끌까끌 거리는 감촉을 느낄 때의 편안함과 감미로움이란! 아내와 나는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침구를 린넨으로 장만하자고 계획하기까지 했다.
아이슬란드의 숙소들은 최고의 휴식처이자 재충전의 장소였다. 춥고 바람 부는 날씨에 매일 적지 않은 거리를 걷고 이동했음에도 우리는 언제나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다음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 여행을 해 본 사람이면 여행에 있어 숙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우리가 묵었던 9곳의 숙소가 전부 괜찮았지만 그 중에서도 두 곳이 특히 인상 깊었다. 하나는 에길스스타디르(Egilsstaðir) 시내에 있는 호스텔이고 다른 하나는 북부의 흐얄테이리(Hjalteyri, 정확한 발음을 찾을 수 없다)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에길스스타디르는 동부 지역의 중심지로 많은 관광객들이 거치는 도시이다. - 실제로 가보면 도시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고 한적하다. -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북부의 높은 산악 지형이 시작된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TEHuSID’라는 호스텔이었는데, 침실은 좁았지만, 거실과 주방은 공간이 넓고 필요한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여행객들은 거실의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보드게임을 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아늑한 조명에 소박한 카페 같은 분위기였고, 여행의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시간만 있다면 그곳을 거점 삼아 동부지역 관광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흐얄테이리는 고래 관광으로 유명한 북부 해안의 달비크(Dalvik)라는 도시에서 남쪽으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쿠아레이리라는 북부 최대의 도시이자, 아이슬란드 제2의 도시에서 숙박하지만, 우리는 이동 경로와 숙박비를 고려하여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흐얄테이리의 숙소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외딴 집으로 친절한 덴마크인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2층 집에 대략 7-8개의 방이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아이들의 편의를 위해 화장실이 딸린 방을 내주었다. 그곳에는 지름이 2m가 조금 넘는 자쿠지가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깜깜한 밤에 실외욕을 즐기면서 오로라를 보았다. - 도심지의 숙소에서는 거리의 조명 때문에 오로라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밖에도 저마다 특색 있는 숙소들이 많았다. 숙소 앞의 농장에서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곳, 빼곰히 열린 주방 창문 앞 바위에 작은 인형들이 놓여 있는 곳, 커다란 창문 밖으로 해안절벽과 초원이 그림처럼 펼쳐진 곳 등등. 여러 숙소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누리는 것은 아이슬란드 여행의 재미 중 하나였다.
숙박비는 수도인 레이캬비크와 남부의 중심지인 비크 지역은 4인 가족, 1박에 120유로 정도였지만, 동부의 에길스스타디르부터는 1박에 60유로 정도면 충분했다. 북부 지역을 지나 다시 레이캬비크가 가까워지면 숙박료가 비싸졌다.
9박 동안 평균 숙박료는 하루에 80유로 정도였다. 적은 금액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소문으로 들었던 아이슬란드의 살인적인 물가에 비하면 선방한 셈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슬란드에서 별로 돈을 쓰지 않았다. 앞서 보았듯 평균적인 숙박료가 서유럽보다 저렴했던 것이 한 가지 이유겠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식사비를 많이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