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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겨찾기 May 21. 2020

9박 10일 아이슬란드 가족여행(4) : 식사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아이슬란드 여행

 아이슬란드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가장 고민했던 것은 날씨도 아니고, 숙소도 아니었다. 9박 10일 동안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큰 고민이었다.     


 여행이 내게 주는 즐거움 중 절반은 먹는 즐거움이다. 어느 곳에서 어떤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곳을 여행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여행장소는 독특한 풍경뿐만 아니라 잊지 못할 음식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그러한 즐거움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관광지든 목적지든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고, 둘째, 아이슬란드 하면 떠올릴 만한 음식이 도저히 없으며, 셋째, 물가가 비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게다가 아이슬란드에서는 도심지라고 하더라도, 주류를 구매하기 매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케플라비크 공항에 도착한 사람들은 맥주와 와인을 박스 단위로 구매한다.    

아이슬란드 여행에 필요한 주류와 식료품을 사두기 위해 줄 선 사람들(케플라비크 공항 안에 있는 마트)

 

 어쨌거나 9박 10일 동안 식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결국 세 번째 이유와 부딪혀야만 했다. 여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으면서도 비싼 물가에 맞서 식비를 절약하는 것이 중대한 과제였다.  

   

 더구나 배고픔을 잠시도 참지 못하는 두 아이가 있었기에 –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배가 고프면 어떤 식으로든 짜증을 낸다 –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아이슬란드는 높은 물가로 악명이 높다. 아이슬란드는 유럽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농사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보니 물자가 부족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35만 명밖에 되지 않아서 1인당 운송비(이런 용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가 많이 든다. 물가가 높은 게 당연하다.


 2019년도 아이슬란드 여행책자에 따르면, 빵 하나가 350아이슬란드크로나(ISK, 간단히 ‘크로나’라고 하자)이다. 현재 시점의 환율(1크로나 = 약 8.3원)로 계산하면, 2,905원이다. 핫도그가 450크로나(= 3,735원), 석유 1리터가 230크로나(= 1,909원),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스웨터가 최소 20,000크로나(= 166,000원)이다.  

    

 우리가 아이슬란드에 갔던 지난 10월에는 1크로나가 약 9.5원이었다. 지금보다 10% 이상 환율이 높았던 셈이다. 더구나 위에서 말한 가격은 마트 물가일 뿐 식당은 훨씬 비싸다. 우리가 아이슬란드에 갔을 때를 기준으로 하면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1,400크로나(= 13,300원), 커피 한 잔이 500크로나(= 4,750원), 맥주 한 잔이 1,000크로나(= 9,500원)이다.  

아이슬란드에는 몇 개의 대형마트 체인이 있는데, 그중 보너스(BONUS)가 그나마 제일 저렴하다.

   

 사실 우리나라 물가에 비해 기절할 만큼 비싸지는 않다. 커피나 우유 같은 제품은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싸다. – 독일에 있던 나는 우리나라의 장바구니 물가가 이렇게 올랐는지 몰랐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물가는 독일에 비하면 현격하게 높았다. 매일 최소한 한 끼(점심)를 밖에서 먹을 생각을 하니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먹고 쓰는 게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지만 우리는 호화롭게 여행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아침과 저녁은 숙소에서 해결했고, 점심은 핫도그로 때웠으며, 열흘 동안 딱 한번 외식을 했다.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하는 재미도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장만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 고기류와 샐러드, 길쭉한 소시지 5개짜리 묶음, 핫도그 빵 역시 5개짜리 묶음을 샀다. 고기류와 샐러드는 저녁식사와 다음날 아침 식사용이고, 소시지와 핫도그는 다음날 점심 도시락용이었다. - 가격은 우리나라 대형마트와 거의 비슷하거나 조금 비싸다고 생각하면 된다.      

 저녁 무렵 숙소에 도착하면 쌀을 씻어 솥밥을 하거나, 파스타를 만들었다. 쌀과 파스타면은 독일에서 가져갔기 때문에 따로 구입하지 않았지만 파스타 소스는 마트에서 사야했다. 후라이팬이나 오븐에 고기(돼지고기 아니면 양고기였다. 소고기는 어디서나 비싸다)를 요리했고, 샐러드에는 숙소에 구비된 올리브와 발사믹을 뿌렸다.

마트에 가면 오븐에 요리할 수 있게 만들어진 양고기가 있는데, 아이들이 좋아해서 저녁으로 종종 먹었다

     

 그다지 균형 있는 식사가 아닐 수는 있지만 쉽게 준비할 수 있어 편리했고, 하루 종일 아이슬란드의 거친 비와 바람에 맞섰기에 안락한 숙소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레이캬비크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숙소에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주방이나 식탁을 이용하는 데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은 전날 저녁에 남은 음식을 먹었다. 밥이 남았으면 물을 부어 누룽지처럼 만들었고, 파스타가 남았으면 오븐에 데워 먹었다. 아침식사용 반찬으로는 김과 참치캔과 계란이 제격이었다. - 김과 참치캔은 짧은 경험상 최고의 여행용 반찬이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짐정리를 함과 동시에 빵과 소시지를 구워 핫도그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케첩만 뿌리다가 다음날에는 겨자(머스타드) 소스도 같이 넣었고, 그 다음날에는 튀긴 양파를 뿌리기 시작했다. - 아이들은 겨자 소스와 튀긴 양파를 좋아하지 않아서 두 개만 그렇게 만들었다.    

여행 내내 이런 도시락통을 가지고 다녔는데, 핫도그 5개가 딱 들어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핫도그 5개가 점심식사였다. 물론 4인 가족에게 풍족한 양은 아니었다. 가족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아들(당시 만 6세)이 핫도그 2개를 먹었기에, 나머지 가족들의 몫은 핫도그 1개씩이었다. - 아내와 딸아이는 하나면 충분했기 때문에 나만 부족했다. - 어쩌다가 주먹밥이나 삶은 계란, 아니면 먹다 남은 케익이나 과자라도 있으면 그야말로 호화로운 식사였다.     


 궁색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름 즐거운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차로 이동하다 배가 고파지면 경치 좋은 길가에 차를 세운 다음 산과 바다를 보면서 핫도그를 먹었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바람에 흔들리는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식사를 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오붓하고 풍요로운 순간이었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점심을 먹었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슬란드 곳곳에 있는 관광지인 폭포나 주상절리, 빙하 근처에는 식당이 없다. 해가 진 후, 아니면 이른 저녁에 숙소가 있는 목적지에 도착해도 식당을 찾기는 쉽지 않다.      


 아이슬란드에는 도시라고 부를 만한 곳이 거의 없다. 전체 인구가 35만 명이지만, 그중 대부분은 수도인 레이캬비크 주변에 살기에, 레이캬비크 주변을 벗어나면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부 최대 도시라는 아쿠레이리의 인구는 약 19,000명이고, 동부 최대 도시인 에길스스타디르의 인구는 무려 2500명이다. 식당이 거의 없고, 어쩌다 식당이 있어도 저녁이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  

   

 그렇게 7일째 여행하던 날이었다. 그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이슬란드 여행의 정점이었다. 한 가지 이유는 그날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유일하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는 것이다.   

   

 장소는 아이슬란드 북부 해안 지역에 있는 달비크(Dalvik)라는 곳이었다. 고래 관광으로 유명한 마을인데, 우리가 여행한 10월은 고래 관광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숙소에 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고, 아이슬란드의 북쪽 해변을 구경해 보고 싶어서 들르게 되었다.

    

 달비크는 인적이 드문 조용한 마을이었다. 마을 중심부에 있는 삼거리에서 아스팔트 공사를 하고 있던 인부들을 빼면 사람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마을과 바닷가를 한 바퀴 둘러 본 후 주차장으로 돌아가던 우리는 삼거리 주변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놀라운 문구를 발견했다. - “OPEN” - 다른 상점을 모두 문을 닫았는데, 그곳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웬지 편안하게 느껴진 식당 내부. 직접 만든 스웨터도 팔고 있었다.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호기심에 이끌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기자기하고 따뜻해 보이는 테이블과 실내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거리의 모습과 달리 식당 안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는데, 그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 식당에서 우리는 인생 최고의 생선수프(Fish Soup)를 먹었다. 여느 서양음식과 달리 약간 얼큰하고 알싸한 맛이 태국 음식을 먹는 듯했다. 오통통한 생선살과 매콤달콤하게 기름진 국물이 서양 요리에서는 보기 드물게 감칠맛이 났다. 지금은 맛있었던 기억만 남아 있을 뿐 그때의 맛과 풍미를 정확히 떠올릴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아이슬란드 하면 떠올릴 만한 음식이 생기게 되었다. - 가격은 약 15000원이고 한번 리필할 수 있다.  

나에게는 아이슬란드의 대표 음식

 그날 우리는 따뜻한 저녁 햇살을 받으며 평생 잊을 수 없는 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날을 절대 잊을 수 만든 또 다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날 밤에 본 오로라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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