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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엄과 낭만사이 Apr 20. 2023

그 바닥 고수를 찾아가다

01. 간절함

나보다 몇 개월 먼저 퇴사하신 이팀장님께 나의 퇴사 소식을 알렸더니 무심하게 페이스북 링크를 하나 보내주셨다.

"기가 내 교회 후배가 운영하는 카페인데 시간 되면 한 번 가봐"

 내가 사는 곳과 60km 거리에 있는 김포의 한 플라워카페였다.


그때까지 내 경험은, 학원에서 배웠던 꽃, 매주 같은 패턴의 실내 웨딩홀 꽃장식, 길거리에서 맨땅에 헤딩하며 장사한 경험이 다였다. 실제로 플라워 샵에서는 어떤 색감의 꽃을 사용하고, 어떻게 포장하고, 얼마를 받는지, 인기 상품은 무엇인지 ⁴등 모든 기초적인 것들이 너무 궁금했다. 더 볼 것도 없이 바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방문 약속을 잡았다.



방문 당일

가게 앞에 도착해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너무 바빠 보인다. 하필 5월이다. 화훼업계의 성수기 5월. 하지만 1시간 거리를 달려왔고,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다. 

허름한 식당을 가게 되면 왠지 '이 집 맛집일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그녀의 손목보호대 아래로 겹겹이 붙어 있는 파스로 보아 이바닥 고수향기를 풍기고 있다. 궁금한 걸 다 물어보고 가야한다. 주문받은 꽃다발을 먼저 만들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나는 잠시 앉아 기다리며 그녀의 꽃다발 만드는 모습을 전투적인 눈빛으로 본다.


꽃바구니, 을 넣은 꽃다발(일명 돈꽃다발),  용돈박스, 액자 등..  주문 내역서는 다양하다.

그녀는 마치 어느 자리에 꽃이 들어가는지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싱싱한 카네이션들을 툭툭 넣어 금세 핸드타이드를 완성하고 무심하게 쓰윽 자른 포장지 위에 꽃을 놓는다. 한 번에 휘리릭 감싸고 리본으로 마무리한다. 이 모든 과정이 미끄러지듯 자연스러우며  마치 기계처럼 손이 움직인다.

'뭐야.. 왜 이렇게 쉬워 보이지?.. 포장지는 어떻게 저렇게 치수를 재지도 않았는데 딱 필요한 만큼  자른 걸까?

"꽃을 왜 하려고 해요?"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이었다.

"좋아서요.."

"진짜 좋아하는 거 아니면 힘들어요. 전공 때부터 치 꽃을 한 지 15년 됐나. 이제서야 자리 잡아가는 것 같은 느낌인데요 뭘"


웬만큼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정말 힘든 길이니, 애초에 접는 게 좋다는 이야기였다. 진짜 힘든 길인 건 맞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꽃이란 특별한 날에만 사는 것이고, 특별한 날에도 꽃다발보다는 현금이 낫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5년 반의 HR 경력을 접고 아예 다른 길로 온 내가 그 말을 듣고 포기할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겼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서사를 쭉 말씀드리고, 길거리에서 얼떨결에 하게 된 장사 이야기와 그때 만든 제품들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진으로 보여드렸다.

그녀는 '노력은 가상하네' 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손님은 계속 들어왔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민폐인 것 같아  급히 자리를 떴다. 주차장까지 배웅을 나온 그녀에게 진짜 궁금한 걸 물었다.


"근데요.....한 번에 포장지를 자르시던데, 특별한 법칙이 있나요?"

"어....... 음........ 법칙이랄 건 없고 많이 해보면 돼요."


그녀는 분명 당황했다. 정말 많은 경험 끝에 자연스럽게 되는 부분이었을테니. 모든 게 신기하고 궁금했던 나는 어린 아이 같은 질문을 했던 것이었다.


"이번주 주말에 호텔 웨딩이 있는데 아르바이트하러 올래요?"


나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읽으셨던 건지, 어이없는 질문을 하는 내가 측은했던 건지 모르지만 굳이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호텔야외웨딩을 같이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우리들의 밤샘작업 나날들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간절함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TIP. 팁

꽃다발 포장은 상품으로 나가기 위한 마지막 과정입니다. 포장은 쉬워 보이지만 엄청난 경험으로 다져진 스킬이에요. 꽃을 감쌌을 때 적당하도록 크지도 작지도 않은 부피감을 감안하여 포장지를 잘라야 하고, 리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 없이 자르게 되면 막상 꽃을 감았을 때 포장지가 작거나 크게 되지요. 작으면 추가로 포장지를 잘라 덧대주야야 하고, 크다면 남는 부분을 다시 잘라내는 2차 작업이 필요한데 이 경우 불필요한 공정이 한번 더 추가됨으로써 제품 제작 시간이 길어지게 됩니다. 손님이 지켜보고 있다면 프로의 느낌을 줄 수 없겠지요. 초보 플로리스트들에게는 핸드타이드 연습 못지않게 포연습도 정말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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