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근엄과 낭만사이 May 01. 2023

시간의 자유를 누리는 기쁨

04. 살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4일차)


여수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침 알람 끄기였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늦게까지 잘 수 있다는 안도감은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나를 행복하게 한다.

9시니 출근하고, 12시니 점심을 먹고, 6시니 퇴근하는 사회생활. 나는 없고 오롯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출퇴근해 오던 10년간. 그뿐인가. 6살 때쯤부터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 시간제약은 시작된다. 저녁형 인간인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정말 힘들었다. 학창 시절 엄마가 10번 정도는 깨워야 일어났다. 이게 우리 집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걸 결혼하고 알았다. 남편도 죽어라 안 일어났다고, 억지로 깨워 학교에 데려다주는 차에서 양반김에 밥 싸서 먹였다고, 시어머니께서 자주 이야기 하신다. 아무튼 시간이라는 사회적 규율은 나의 생체리듬에 따른 찰나의 욕구들을  오롯이  빼앗아갔다. 6살 유치원 때부터라 치면 3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여수에 와서 가장 좋은 건 시계를 안 봐도 된다는 거다. 숙소에 시계도 없을뿐더러 바쁜 연락 올 곳 없으니 핸드폰을 열지 않아 시간을 모른다.

내가 눈을 뜨는 시간이 하루의 시작이고, 배고프면 먹는 그 시간이 점심시간이다. 나른해지면 낮이라도 그냥 눈을 감는다. 단잠에서 깨면 내가 몇 시간을 잤는지 계산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의 생채 리듬으로만 생활하는 자유는 아주 달콤하다.




오늘 갔던 검은 모래해변에서도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엄마. 지금 나는, 내가 여수에 내려와 산다면 어떨까를 상상해 보는 시간인 것 같아 “

“엄마, 저기 커플이 펼치고 있는 흰 파라솔이 예뻐. 탐나네

다를 보니까 생각이 난다, 엄마가 40대 때였나. 고모네 집에서 일할 때, 다 같이 바다에 놀러 갔는데, 그때 짓궂었던 J 가 나를 번쩍 들고 바다에 빠트렸거든.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안 그래도 물을 무서워하는데, 몸에 힘이 얼마나 들어가던지 “


바다를 보면서 스치는 단상들을 이야기하며 몇 시간을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시계를 보지 않았다. 어느 한 사람도 빨리 집에 가자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다. 흘러가는 이 시간에 나를, 우리를, 그냥 맡겨본다.

솔솔 부는 바람에 눈도 감아본다.



어떤 것도 더 필요하지 않은 완벽한 휴식이다.


 만석리 검은모래해변
엄마의 뒷모습


내가 서울에 있었다면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이라는 구절을 나태하게 있지 말고 오늘 해야 할 일을 꼭 하면서 열정적으로 살라.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쯤으로 도시적인 해석을 했을 것 같지만 여기, 여수에서는 좀 다르다.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으니 현재 내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것을 해주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오늘 바다멍을 하던 순간에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내가 하고 싶을 때까지' 이 순간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냥, 이제 집에 가고 싶으니까'라는 생각이 들면 가면 된다. 시간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닌,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에, 하고 싶은 만큼  수 있는 것. 이것이 완벽한 자유가 아닐까.


나는 내 마음이 원하는 게 뭔지 온전히 집중하는 것에 항상 서툴렀지만 이 또한 연습하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라는 걸 안다.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같은 마음이 들면  여기에 있는 동안은 맘껏 들어주려고 한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내일 또 하루가 주어지면 신께 감사할 일이다. 내일도 그 다음날이 없는 것 처럼 살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 있을 때 아프셔서 다행이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