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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May 14. 2023

단골의 변심? 카페라떼 할아버지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3

누구든지 카페에 들어오면 곧바로 키오스크 앞에서 직접 주문을 한다. 나는 주문이 들어온 메뉴를 확인하고 제조한 뒤, 대기번호를 호출해 음료를 픽업해 가도록 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손님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무슨 주문을 했는지 다 알 수도 없지만 사실 기억할 필요도 없다. 요즘은 카페에서도 사람 냄새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카페라떼 할아버지는 좀 달랐다. 매일 같이 따뜻한 카페라떼를 테이크아웃 해가는 단골손님. 언제나 비슷한 오후 시간에 할아버지는 뚜벅뚜벅 걸어서 키오스크가 아닌 내 앞에 오셔서 메뉴를 주문하신다.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우신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시는지 아무튼 매번 직접 주문을 하신다. 사실은 주문 내용을 듣지 않아도 될 만큼 언제나 같은 것만 드시는데, 그래서 나는 그를 카페라때 할아버지라고 기억한다.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우유를 따뜻하게 스팀 해서 일회용기에 담아드린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매번 똑같이 컵의 뚜껑을 열고 스틱설탕을 뜯어 반쯤 넣고 저으신다. 그다음 뚜껑을 다시 닫은 뒤에 갖고 나가신다. 언제나 한결같은 패턴. 키오스크 대신 직접 주문, 같은 메뉴, 취향대로 제조.


한두 번은 같은 메뉴를 시키시는 것만 알아채다가 나중엔 꼭 설탕을 넣으시는 걸 알고는 뚜껑을 닫지 않고 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탕과 저을 수 있는 스틱도 같이 내어드렸다. 할아버지가 나의 이런 조용한 센스를 알아차리시나 궁금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그저 덤덤하시다. 언제나 당신 갈 길을 가신다.


그렇게 여러 번 뵈어 익숙했던 카페라떼 할아버지가 문득 떠오른 오후. 오늘은 오시지 않으시나 싶었는데 카페 바깥 편에서 할아버지가 걸어오시는 게 보였다. 참고로 내가 일하고 있는 카페는 통유리창으로 뻥 뚫려 바로 앞 사거리가 다 보일 정도로 시야가 트여있다. 이제 오시는구나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니 글쎄! 카페를 지나쳐 저쪽으로 걸어가시는 거다. 순간 생각했다.


‘단골 카페를 옮기셨나?’

‘더 맛있는 곳, 더 저렴한 곳을 찾으신 걸까?’

‘내가 잊고 있던 사이 다른 곳에 마음을 붙이셨나?’


궁금함과 서운함을 오가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할아버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평소와 똑같은 메뉴를 똑같은 방식으로 주문하셨다. 다만, 그의 손에는 햄버거 봉지가 들려있었다. 집에 가서 드시려는지 햄버거를 먼저 사고, 따뜻한 카페라때를 포장해 가려는 계획이셨다.


‘아, 역시 그럴리가 없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어르신 단골손님들은 보통 지나칠 만큼 한결같다. 마음 가는 장소를 바꾸는 일은 거의 없고, 매일 같이 마시는 음료 하나도 웬만하면 바뀌지 않는다. 아마 나이가 들면서 모험심보다는 익숙한 편안함과 더 친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자연스러운 순리일 것이다. 나 또한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들어 할머니로 불리는 날이 찾아오겠지만, 그때가 되면 새로운 것에 설레기보다 안심할 수 있는 것들을 가까이하게 될 테다. 아직은 새로운 메뉴를 먹어보기도 하고 새로운 장소에도 맘껏 가보는 것이 어울리는 때일지 모른다. 익숙하지 않아도 낯선 것들을 시도하고 도전해 보는 시기. 그래도 되는 때, 그런 것이 더 어울리는 때. 오늘의 나는 머뭇거리지 말고 조금 더 시도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익숙한 것들만 찾는 때가 오기 전에.


카페라떼 할아버지의 한결같음을 잠시 의심했던 날 반성한다. 변하면 내가 변했지, 어르신들은 그대로인데. 나도 그의 한결같음을 따라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을 만들고는 언제나 그랬듯 뚜껑을 열어서 내어드렸다. 물론 설탕과 함께.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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