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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무드 Mar 08. 2020

슬럼프인가 봐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마무드에세이, 8]

 

 ‘슬럼프면 어떠한가. 이 참에 아무것도 하지 말지 뭐.’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쓸모없이 느껴지는 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아무래도 지금 나는 인생의 슬럼프인가 보다.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다. 3일 전만 해도 운동을 2번씩 다녀오고 글도 쓰고 열심히 놀았는데 지금은 그냥 누워서 천장 보는 게 내 생활의 전부가 됐으면 좋겠다. 아, 그 와중에도 길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츄르를 주는 것은 귀찮지 않다. 잠깐의 힐링타임이다.


 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고 누워있자니 뭔가 무책임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힘겹게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오랜만에 옷도 차려입고 화장도 하고 차를 끌고 나왔다. 서울 근교까지 드라이브하고 카페에 와서 무작정 노트북을 켜고 ‘아무 글이나 쓰자’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그 조차 1분 만에 관두고 밖에 산책 겸 나갔다가 길고양이 두 마리를 만나 츄르를 하나씩 주고 왔더니 기분이 또 좋아졌다. 이럴 때 보면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 치고 복잡한 사람이 아닌 듯하다.

 그러고 다시 카페로 돌아와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려보지만 이게 좋은 글이 될 리가 없다는 생각에 약간은 좌절하지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기에 실망하지 않기로 한다. 별로 쓰고 싶은 내용이 생각나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잡념을 생각이 나는 흐름대로만, 그것도 아주 마음으로만 쓰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순간의 글이 언젠가 또 이렇게 무기력해진 나를 다독이고 일으켜줄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본다. 이 와중에 별생각 없이 그저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그대로를 키보드로 뚜드리는 일을 해보니 조금은 재미가 붙는 것 같기도 하다.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내가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내가 그렇게 쓸모없지는 않지 않을까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덕일까. 이러고 있자니 머리에 ‘번쩍’하고 생각이 떨어진다.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 윽. 역시 사람은 지능 높은 동물에 불과한가 보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씩 시작하면 되지 않나? 무기력해서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을 때 먹고 싶은 게 생각났으면 곧 하고 싶은 것도 떠오를 것 같다. 역시 무엇 하나 쉬운 일은 없다. 어차피 기억에는 한 번밖에 없는 인생 심심하지 말라는 신의 나름대로의 배려인가. 생각과 마음이 롤러코스터처럼 위아래를 마음대로 오가고 그 무엇 하나 쉽지 않게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뭐, 그래서 인생 심심하진 않고 때로는 재밌기도 한 거겠지 하고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넘긴다. 깊이 생각하기에는 나는 아직 너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걸.


 이왕 글을 쓰고 있는 김에 슬럼프, 그 무시무시한 동굴에 대하여 얘기해볼까 한다. 슬럼프를 겪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갑자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빡!!’하고 찾아오는 것이 슬럼프다.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가만히 누워있다가도 언제든 나에게 찾아올 수 있는 것. 슬럼프란 그런 것이다. 누구나 열심히 달리다 보면 숨이 차서 잠시 멈춰 주저앉기도 하고 허리에 손을 받치고 서서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그런 슬럼프를 굳이 미워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동굴 안에 조금 들어가 있으면 어떠한가. 햇빛이 싫을 때도 있어야지, 어떻게 햇빛이 늘 좋을 수만 있을까. 다만 그 동굴이 너무 깊지 않고 너무 오래 머물 수 있을 만큼의 조건을 덜 갖췄기를 바랄 뿐이다. 오랜 슬럼프로 햇빛을 못 보면 비타민D가 부족해지니까. 그러다가 우울증이라도 걸리면 큰일이지 않은가. 하하하 웃자고 얘기해봤다.


 나는 이렇게 슬럼프를 넘기려고 노력해본다. 이게 나의 방식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부터 그냥 해본다. 집에 있을 때면 괜히 깨끗한 책상 한번 더 정리하고 집 전체 구석구석 물티슈로 닦아보기도 한다. 오늘은 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화장을 하고 나오는 것부터 시작했다. 나는 슬럼프를 넘기려고 할 때 그렇게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꽤 쓸모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작, 겨우 그 작은 것 하나 했다고. 나름의 좋은 성과이다. 그렇게 하나씩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열심히 달리던 나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내가 보이는 듯싶다. 그렇게 다시 열심히 달리던 나로 돌아간다. 그러다 보면 다시 슬럼프가 오고 또 오겠지.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꽤 쓸만한 사람이고 그만큼 슬럼프는 나를 잠식시키지 못할 테니까.

 

 나는 이 글 하나로,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써온 지금 이 글로 나는 다시 뛸 준비를 하고 거의 마쳤다는 생각이 든다. 자, 이제 다시 뛸 준비를 마치고 즐겁게 달려볼 시간이 온 것 같다. 니체가 말했던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해 줄 뿐이라고. 슬럼프라는 작지만 큰 고통은 우리를 죽일 수 없다. 절대. 물론 나는 강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하던 대로만 해도 대단한 것이지, 뭘 더 강해질 필요까지 있나. 그러니까 또 이상한 패배감이나 좌절감은 덮어두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와 당신, 우리 모두가 슬럼프라는 동굴로, 그 힘겨운 싸움에 잠식되지 않고 잘 버티고, 다시 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오늘이다.

 별 것 아닌, 작디작은 미약한 생각과 행동이 창대한 확신을 가져온 오늘이다. 당신도, 이렇게 이겨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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