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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무드 Mar 02. 2020

할머니, 우리 엄마가 많이 사랑한데

[마무드에세이, 7]


“할머니 편안하게 가셨어. 엄마한테 가서 같이 병원으로 와.”

“응.”


 손이 떨렸다. 덜덜덜. 그러고는 온 몸이 떨렸다.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는 아니었다. 그때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의 외할머니는 작은 거인이었다. 체형은 왜소하셨지만 할머니의 배짱과 살아온 방식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할머니의 삶은 아주 넓은 바다 같은 삶이었다. 할머니의 삶을 쭉 써내리 자면 그 옛날 장녀로 태어나셔서 고생하신 일, 끊임없는 걱정과 마음앓이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을 빼놓고는 별다르게 쓸 일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정도였다. 할머니의 삶은. 그러나 할머니는 항상 걱정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으시면서도 강단 있고 당당한,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계셨다.


 그런 할머니가 암 선고를 받으셨다. 19년 5월이었다. 허리 뒤쪽이 아프셨던 것뿐이었는데 췌장암 말기였다. 수술을 해 볼 기회도 없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로 나중에 돌아가시기 전 통증을 줄이는 것과, 조금의 수명연장이었다. 고통을 통해 후의 고통을 줄인다니. 인생 참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탄식하는 것이 무색하지 않을 일이었다.

 할머니는 항암치료를 하셨다. 그렇지만 완전히 낫게 하지 않는 항암치료는 할머니 본인과 주변 사람들 모두 보다 더 고통스럽고, 없는 희망도 뿌리까지 불살라버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멈추시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신 후 우리 할머니의 장례식은 19년 12월 31일에 끝났다. 암 선고를 받으신지 1년도 안됐지만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나는 내 주변 사람을 처음 잃는 일이었다. 그게 그렇게도 실감이 안나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자꾸만 임종 전날 할머니의 모습이 고장 난 DVD처럼 반복해서 떠올랐다. 의식이 거의 없으신 상태로 다른 모든 사람들을 보셨을 때는 가만히 계셨던 할머니가, 나를 보시고는 눈물을 흘리셨다. 나도 함께 눈물이 터져버려 울먹이며 할머니 귓가에

"할머니, 할머니 손녀딸이 할머니 아주 많이 사랑해. 우리 할머니 조금만 더 힘내 줘. 할 수 있지?"

라고 말했던 게 마치 1분 전 같았다. 그렇게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할머니의 입관이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내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일이었다. 나는 울다가 실신할 뻔했고, 우리 엄마는 눈물을 흘리다가 날 발견하고는 나를 진정시켜주느라 본인의 슬픔을 다 표현하지 못했다. 그렇게 입관, 발인, 안치까지 끝난 후에 나는 더 이상의 나올 수 있는 눈물이 남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나고는 하지만 울진 않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아프신 동안 계속 모시고 있었던 우리 엄마. 엄마가 오늘 울었다. 할머니 생각이 자꾸 난다며.

 우리 엄마는 장례식 때 생각보다 많이 울지 않았다. 엄마는 할머니 임종 직전까지 함께 있다 잠시, 아주 잠시 떠나 있을 때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너무나도 아파했다. 엄마의 소신을 갖고 잠시 떠나 있었던 일 중에는 할머니가 버티실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는데 야속하게 하필 그때에 가셨다.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고통에서 속박되어 여기에 묶여있으시지 않으시고 평안을 얻으신 것에 대해 감사해하고 슬프지만 할머니께는 다행인 일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가 유연하지만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렇게 나도, 우리 엄마도 할머니를 분명 잘 보내드렸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가고 있는 요즘 엄마는 더더욱 자신의 엄마가 생각이 난다고 한다. 엄마 생일에도 좋은 시간을 보내며 행복해하다가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나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그런 엄마를 토닥여주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나도 눈물이 났다. 할머니 생각이 아닌 힘들어하는 엄마가 너무 안쓰럽고 속상해서.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나의 엄마가 애틋한데 엄마도 그러겠지.'라고 말이다. 어쩌면 내가 우리 엄마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우리 엄마는 자신의 엄마, 할머니를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는 내가 삶의 낭떠러지 끝자락에 있을 때에도 엄마 생각을 하면 다시 한 걸음씩 안전지대로 걸어오게 만들어 준 게 생각이 났다. 그리고 지금도 내 삶은 그렇게 엄마로 인해, 그리고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로 인해 안전지대로 계속해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나에게 이런 힘을 준 우리 엄마.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아린 엄마도, 내가 있어 조금은 덜 아프고 마음의 낭떠러지에 있을 때 이쪽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랑이라는 것의 위대함을, 그 힘을 믿는다.

 

 할머니, 우리 엄마가 할머니 많이 사랑한데요. 나도 할머니 사랑해. 그리고 엄마. 딸이 많이 사랑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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