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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무드 Mar 02. 2020

서로에게 위로가 된 나날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마무드에세이, 6]


2019년 12월, 나 혼자 떠난 여행은 나의 모든 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도저히 이렇게는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내가 있는 곳과 상황에서의 모든 일을 멈추고 바로 비행기표와 숙소를 잡아 10일 뒤에 떠나버렸다.


 떠나기 전 나는 너무 힘들었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모든 것이 지쳐있을 때 떠난 여행이었기에 ‘안정’과 ‘회복’을 목표로 하는 여행이었다. 새롭게 피어나고 싶었다.

 

 겨울의 파리는 춥고,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지기 때문에 한 달 중 일주일 정도는 정신적으로 너무 외롭고 우울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 나는 숙소에서 나가지 않고 계속 누워 밖을 보며 울고 싶은 만큼 울고 울적한 마음이 느껴지는 대로 전부 받아들이다가 진정이 되면 책을 읽고, 잠시 마트만 다녀와서는 한 끼 차려먹는 게 나의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런 하루조차도 여행이라는 명목 하에 그곳에 있었기 때문일까, 나의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을 파리에서 보내면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보통 혼자, 그것도 꽤나 오랜 기간 여행을 하고는 하는 나지만 타지에서 같은 한국사람을 찾아 만나는 일은 없었는데 생전 처음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찾아다니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이때 만난 사람들은 여전히 나에게 파리에서 상처가 아물던 그 시간을 회상하게 해 줘 좋은 인연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파리에서 한 달을 보낸 후 나는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 중 한 명이 유학 중인 이탈리아 꼬모로 갔다. 사실 이 여행 목적의 7할이 내 친구와 일주일을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친구가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온 날 저녁부터 친구가 먹고 싶어 했던 한식으로 매 끼니를 차려줬다. 집에 있을 때는 요리를 하고 끼니를 챙겨 먹는 것이 습관이 돼있지 않은 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 그것도 타지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나는 끼니를 챙겨주고 친구가 학교에 갔다 끝나면 데리러 가는 일 정도밖에는 해 줄 수 없었기에 나는 기꺼이 삼시 세 끼를 친구가 먹고 싶다고 하는 한식을 요리해 채워주었다.

 참 신기했다. 분명 내가 밥을 차리고 친구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 나의 친구를 위한 일이었는데 되려 나를 위한 일이 되었다. 나는 매 끼니를 친구와 함께 먹으면서 하루가 따스해짐을 느꼈다. 내가 원했던 ‘회복’과 ‘안정’을 느꼈다. 힘들었던 상황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나의 삶을 살자며 하루하루 조금씩 더 꽉 채워진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저녁 식사마다 한식에 갖가지 와인을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요리를 해주었으니 본인이 설거지를 하겠다며 나서는 친구 옆에서 조잘조잘, 친구가 한국에 있었던 때처럼 수다를 떨었던 것. 그리고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날이면 항상 번갈아가며 양치와 세수를 했던 것. 잠들기 전 각자 휴대폰을 보다가 재밌는 게 있으면 보여주고 함께 깔깔대며 웃었던 것. 그 모든 것을 그곳에서 했다.

 어렸을 적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못한 일이 돼버린 것이 쓰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온 것이 돼버리는 일은 우리가 어떻게 만질 수 없는 노릇이기에 이제는 당연하지 못한 일을 그렇게나마 그때의 우리처럼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서로 간의 온정을 느끼는 것이 나에게 안정을 주고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치유제가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 친구는 나에게 마음속 깊은 얘기를 꺼내놓아 주었다. 내 친구가 힘들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형태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만 알 수 없었던 전과는 달랐다. 친구는 본인 마음속 이야기를 하고, 나는 장황한 말의 위로보다 더 위안이 될 수 있는 포옹과 따스한 눈빛을 보냈다. 그것이 친구에게 내가 받은 치유제와 같이 작용했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적어도 나에게 위로가 된 나날들을 보내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우리가 함께했었던 전과는 같지 못하지만 그 추억의 힘으로 또다시 나아가는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위로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것이 무엇이든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길 바라고 내가 건네줄 수 있는 가장 온전한 마음을 줄 뿐이다. 그저 그것이 어느 순간이 될지 모르니 매일을 따스함으로 가득 채워 살아가길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난 이렇게 글을 쓴다. 따스함을 갖고. 나의 글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는 꽃망울을 움트게 하길 바라며. 당신과 나, 서로가 위로가 될 나날들을 위하여.

매거진의 이전글 글 쓰는 거, 이게 많이 어려운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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