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도연 Dec 22. 2023

겜알못의 게임로그 #5,6:<바이오하자드 RE:2&3>

Resident Evil 2 (2019), 3 (2020)

|타이틀| 바이오하자드 RE:2 (Resident Evil 2), 바이오하자드 RE:3 (Resident Evil 3)

|최초출시일| 2019년 1월 25일, 2020년 4월 3일

|개발사| Capcom

|유통사| Capcom

|구입처| Steam

|사용기기| M2 맥북 에어 기본형/A12Z 아이패드 프로/아이폰 13 프로 (w/ 지포스 나우),  엑스박스 시리즈 X|S 컨트롤러, 백본 원 컨트롤러


<바이오하자드 빌리지(Resident Evil Village, 2021)>를 아주 인상 깊게 즐긴 이후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2023년 12월 20일에 공개 예정이던 <바이오하자드 RE:4>의 MacOS 버전도 큰 기대를 하게 되었고요(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이미 공개되었지만요).


하지만 이 시리즈에 관심이 커질수록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과거 작품들 모두가 윈도우와 콘솔에서만 가능하다는 거였어요. 윈도우&콘솔 게임인 <옵저베이션(Observation, 2019)>은 크로스오버를 통해 맥에서도 어떻게든 돌릴 수 있었지만,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크로스오버에서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게임을 위해 별도의 윈도우 PC나 콘솔을 사는 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다른 작품들을 해보는 건 그냥 포기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얼마 전 맥에서 <옵저베이션>을 플레이 할 방법을 찾으면서 클라우드 게이밍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지포스 나우(GeForce Now)라는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를 발견했고, 스팀 계정 연동을 통해 <바이오하자드 RE:2 (Resident Evil 2, 2019)>, <바이오하자드 RE:3 (Resident Evil 3, 2020)>, 그리고 <바이오하자드 7: 레지던트 이블 (Resident Evil 7: Biohazard, 2017)>을 맥뿐만 아니라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스팀에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전체를 반값 이하로 할인하고 있더군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지요.

맥북과 아이패드, 아이폰에서 지포스 나우를 통해 실행한 <바이오하자드 RE:2>

클라우드 게이밍 경험 자체에 대한 자세한 나중에 여담으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지요. 결론만 미리 이야기하자면, 게임의 품질에서 어느 정도 타협점이 있기는 하지만, 게이밍 PC나 콘솔이 없는 사람에겐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정도가 되겠네요. 그럼 이제 <바이오하자드> 이야기를 이어 갑시다.


이번 글에서는 두 게임을 함께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바이오하자드 RE:2(이하 RE:2)>와 <바이오하자드 RE:3(이하 RE:3)>입니다. 원래는 <RE:2>만 하려고 했었어요. 곧 공개되는 <바이오하자드 RE:4(Resident Evil 4, 2023)>의 본편 주인공이 <RE:2>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레온 케네디였고, DLC의 주인공은 역시 <RE:2>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에이다 웡이었거든요. 이 두 사람은 <RE:2>에서 처음 만나 복잡 미묘한 감정선을 그리고 그 관계는 <RE:4>에서도 이어진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RE:4>의 스토리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RE:2>를 먼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RE:2>를 클리어하고 보니 <RE:3>는 아주 짧은 게임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지포스 나우는 1개월만 구독하고 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기왕이면 <RE:4>가 나오기 전에 <RE:3>까지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RE:3>은 정말 짧더라고요.


그렇다면 왜 따로 쓰지 않고 하나의 글에 묶어서 쓰는가. 두 게임이 사실상 하나의 게임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이 상당 부분 겹치는 데다 스토리의 전개나 게임의 미션들이 거의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었어요. 실제로 고작 1년 간격을 두고 발표되기도 했고요. 물론 각자의 개성이 있기는 하지만, 앞에서 말한 이유와 <RE:3>의 짧은 볼륨 때문인지 두 개의 게임을 했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네요. 그런 만큼 두 게임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도 비슷비슷하다 보니 그냥 글 하나에 묶기로 했습니다.

<바이오하자드 RE:2>와 <바이오하자드 RE:3>

<바이오하자드 RE:2>

<RE:2>는 1998년에 나온 <바이오하자드 2 (Resident Evil 2, 1998)>의 리메이크입니다. 사반세기 전에 나온 유명한 세미 클래식 게임을 현대적 그래픽으로 다시 만든 걸 즐긴다는 경험은 원작을 해 본 적 없는 제게도 신기하게 다가왔어요. 그래픽뿐만 아니라 스토리는 물론이고 게임의 조작법이나 대상과의 상호작용도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니, 영화의 리메이크와는 다른 게임만의 확장과 재해석이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E:2>의 주인공은 클레어 레드필드(Claire Redfield)와 레온 케네디(Leon S. Kennedy) 두 명입니다. 빨간 가죽 재킷을 입고 모터사이클로 빗길을 달리며 등장하는 클레어 레드필드는 1편의 주인공 중 하나였던 크리스 레드필드의 동생입니다. 오빠와의 연락이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자 수상함을 느끼고 오빠가 근무하는 라쿤시티를 직접 찾아오는 엄청난 행동력을 가진 대학생이지요. 레온 케네디는 라쿤 시티의 신참 경찰입니다. 첫 출근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라쿤시경(R.P.D.; the Raccoon Police Department)과의 연락이 두절되어 역시 수상함을 느끼고 직접 라쿤 시티로 향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클레어와 레온이 주유소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라쿤 시티에 도착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RE:2>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와 ‘두 번째 시나리오’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각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 누구를 고르냐에 따라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그리고 두 스토리를 모두 클리어해야 진짜 엔딩을 볼 수 있고요. 예를 들어 ‘첫 번째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먼저 경찰서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마빈 브래너 경감과 엘리엇 에드워드를 만납니다. 반면 조금 늦게 경찰서에 들어간 ‘두 번째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마빈과는 만나지 못하고 대신 좀비가 되어버린 엘리엇과 조우하게 됩니다. 마지막에 최종 보스를 쓰러뜨리는 건 ‘두 번째 시나리오’의 주인공이고요.

<바이오하자드 RE:2>의 시나리오 선택 화면

그런데… 그게 다였어요. 클레어가 주인공일 때는 어린 소녀 셰리 버킨(Sherry Birkin) 그리고 경찰서장 브라이언 아이언스를 만났다가 셰리로 플레이를 하는 부분이 있고, 레온이 주인공일 때는 어딘가 수상한 FBI 에이다 웡(Ada Wong) 그리고 총포상 주인 로버트 켄도(Robert Kendo)와 만나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또한 에이다로 플레이를 하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건 ‘첫 번째 시나리오’ 혹은 ‘두 번째 시나리오’를 누구로 플레이 하느냐와 상관없이 그냥 주인공에 따라 고정이에요.


주요 배경이 경찰서, 지하 시설과 하수도, 그리고 비밀 실험실인데 앞에서 말한 부분을 제외하면 두 시나리오는 그냥 같은 게임을 다른 캐릭터로 하는 수준이었어요.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풀었던 퍼즐을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다시 풀어야 하는데 심지어 답도 똑같았고 분명 쓰러뜨렸던 적도 같은 방법으로 다시 대적해야 했지요. A가 여기서 이것을 하고 있을 때 B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평행우주에 가까운 구성이었습니다. 처음과 중간, 그리고 결말에서 두 우주가 잠시 겹쳐지는 순간이 있기는 하지만요. 1998년의 원작에서는 재핑 시스템이라고 해서 부분적으로나마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한 행동이 ‘두 번째 시나리오’의 전개에 영향을 미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원작의 팬들도 이 부분을 많이 지적하더라고요.


‘첫 번째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데 12시간 넘게 걸렸어요. 보통은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고요. 거의 같은 게임을 한 번 더 반복하기에는 이미 많은 시간을 써 버린 느낌이 들어서 결국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빠른 진행을 위해 보너스 무기가 포함된 DLC를 구입했습니다. 무한 탄약과 로켓 런처로 방해물들을 빠르게 처리하며 진행했어요. <RE:2>를 플레이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일단 <RE:4>를 위한 과거 스토리 습득이었으니까요. 아주 강력한 보너스 무기를 사용했음에도 ‘두 번째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데 6시간이 걸렸어요. 역시 저는 게임 흙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2>는 재미있었습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조금 비겁하게 보너스 무기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첫 번째 시나리오’와 같은 곳에서 같은 적과 대적하더라도 조금 다른 분위기로 즐길 수 있었고요.


미스터 X

<RE:2>에는 미스터 X 혹은 타이런트라고 불리는 종류의 생체생물병기(B.O.W.; Bio Organic Weapon)가 주요 적으로 나오는데요, 일단 등장한 다음부터는 주인공을 끈질기게 쫓아와 강력한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힙니다. 그런데 게임 후반부의 특정 순간이 아니면 결코 죽지 않아요. 권총이든 기관총이든 수류탄이든 상처 하나 낼 수가 없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특전 무기인 로켓 런처로도요. 그래서 미스터 X와 만났을 때는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가거나 헤드샷 여러 번이나 폭발성 무기로 잠시 경직만 시켜서 옆으로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저벅저벅 거리는 커다란 걸음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내며 주인공을 긴장시켜요. 그런 면에서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의 제노모프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다만 미스터 X는 언제나 걸어 다니기 때문에 피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리지>의 베이비 때와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것만으로도 사실상 게임 오버인 제노모프의 무시무시한 압박감에는 미치지 못했어요. 예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지만 이게 다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 때문입니다. 그래도 미스터 X는 짧은 등장으로 끝났던 <빌리지>의 베이비보다는 훨씬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클레어 레드필드

클레어 레드필드는 설정은 일단 평범한 대학생인데 오빠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다양한 종류의 화기를 다루는 훈련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이 시점에서 이미 평범한 인물이 아니지요. 좀비 사태에서도 이성을 유지할 만큼 정신력이 강하고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걸 제외하면 흔히 말하는 멋진 누나/언니 같은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잘 웃고 호탕하며 친절한 데다 언제나 남을 도우려고 하는 성격입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무력(!)과 인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거죠. 대사를 보면 레온에게 은연중에 호감을 품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했어요. 방금 전까지 좀비에게 쫓기다가 철창 너머의 레온을 발견하자 환하게 웃으며 “우리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건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하는 장면이나, 혹시 둘이 연인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레온이 아니라고 하자 클레어는 “하지만 엄청난 첫 번째 데이트였어.”라고 하는 장면 등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클레어가 그냥 그런 표현을 잘 쓰는 성격일지도 모르죠. 또 들리는 소문으론 레온은 등장할 때마다 여심을 홀리는 동시에 에이다 웡 일편단심이라고 하고요. 아무튼 친구로든 연인으로든 레온과 클레어는 참 잘 어울린다는 한 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왼쪽: 클레어와 셰리, 오른쪽: 리플리와 뉴트

클레어의 이야기에서는 셰리 버킨(Sherry Birkin)이라는 소녀가 등장합니다. 셰리는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서장에게 납치를 당하기도 하고 바이러스에도 감염되기도 하면서 많은 위기를 겪는데요, 처음엔 그저 경찰서를 탈출하려고 했을 뿐인 클레어는 이런 셰리를 만나면서 이 아이를 지키고 구출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됩니다. 난폭한 괴물들 사이에서 끔찍한 경험을 겪은 어린 소녀와 이 아이를 보호하려는 강력한 여성이라는 부분에서 <에이리언 2>의 리플리와 뉴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실제로 게임 속 많은 부분에서 <에이리언> 시리즈의 영향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있었고요.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에이리언> 시리즈를 너무 좋아하는 저로서는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레온 케네디

레온 케네디는 1998년 게임에선 실연의 상처로 술을 퍼마시다가 지각한 조금 얼빠진 신입 경찰로 나왔다고 하는데요, 여기선 신입임에도 늠름하기 그지없는 멋진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RE:4> 예고편이나 CG 영화 클립 영상 등을 봤을 땐 잘생긴 아저씨라는 느낌이었는데 여기서는 잘생긴 청년 느낌이 물씬 풍겼어요. 대학을 갓 졸업한 티가 뚝뚝 떨어져서 내가 유튜브에서 보았던 그 레온이 맞나 싶었습니다. 심지어 목소리도 여리여리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제부터 레온의 삶을 지배할 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며 선 굵은 베테랑 전사가 되어가겠구나, 싶었습니다. 원래 자신이 출근했어야 할 경찰서 사무실에 갔을 때 레온을 맞이해 준 건 천장에 달린 “환영해, 레온”이라는 장식과 상사가 장난기 어린 말투로 남긴 편지였어요. 그 편지의 마지막 페이지 구석에는 ‘신입, 오늘 네가 여기 없어서 다행이야’라고 덧붙여져 있었고요. 게임 속에서 레온은 이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마 머릿속에선 정말 많은 감정과 생각이 지나갔겠지요.


레온의 이야기에서는 인상적인 인물이 두 명 등장합니다. 한 명은 앞으로도 긴 인연을 이어나갈 속을 알 수 없는 여자 에이다 웡(Ada Wong)이고 다른 한 명은 경찰서 인근에서 총포상을 운영하는 남자 로버트 켄도(Robert Kendo)입니다.


에이다 웡

일단 에이다 이야기를 먼저 하죠. 에이다는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등장인물 중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듯합니다. 유튜브에서 관련 검색을 할 때마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단발머리의 아시아 여성이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에이다입니다. 그래서 <RE:2>를 해보기 전에도 에이다의 존재는 알고 있었어요. 메인 캐릭터가 아님에도 유명하다는 건 그만큼 매력과 존재감이 있는 캐릭터라는 얘기겠죠. 실제로 게임 속 에이다는 등장부터 퇴장까지 인상적이지 않은 순간이 없었습니다. 차갑고 도도한 요원인 듯하다가 은연중에 부드럽고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방금 만났을 뿐인 레온을 믿고 의지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레온을 이용한 것이긴 했지만, 그 뒤에 어떤 감정을 숨겨두고 있다는 인상을 남겨서 더욱 기억에 남아요. 덕분에 후속작에서 에이다가 다시 등장해 레온과 만나는 순간을 기대하게 되었고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일단 <RE:2> 플레이의 1차적 목표는 이루었습니다.


왼쪽: 로버트 켄도, 오른쪽: 마빈 브레너

로버트 켄도는 엄밀하게는 주연도 조연도 아닙니다. 그저 레온과 에이다가 지나가는 길에 들린 총포상의 주인일 뿐이죠. 하지만 <RE:2>를 플레이했다면 로버트의 존재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음모와 욕망이 불러일으킨 재앙 속에서 희생된 평범한 소시민의 비극을 짧지만 아주 무겁게 보여주거든요. 문을 닫고 사라지는 켄도의 모습을 본 레온은 절실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고 그 배후를 저지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저런 사람을 돕기 위해 경찰이 되었다고 덧붙이면서요. 하지만 레온은 몰랐겠지요.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만. 아무튼 레온에게 로버트 켄도는 경찰이 된 첫날이자 마지막날에 지켜내지 못한 시민으로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경찰서의 마지막 생존자 마빈 브래너(Marvin Branagh) 경감을 만나는데요, 저는 ‘첫 번째 시나리오 - 클레어, ‘두 번째 시나리오 - 레온’으로 했어요. 그래서 제가 플레이한 레온은 마빈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RE:4>에서 레온이 마빈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는 하더군요. 그래서 ‘첫 번째 시나리오 - 레온’, ‘두 번째 시나리오 - 클레어’가 정사(正史, Canon)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애초에 정사가 존재할 수가 없는 시스템이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RE:4>를 플레이할 때 레온이 마빈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오면 클레어의 기억을 잠시 빌려와야겠어요.


게임 속 퍼즐도 재밌었어요.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한눈에 답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퍼즐의 존재가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어 있어서 좋았습니다. 역시 퍼즐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툼 레이더>의 경우엔 동료와 친구들이 죽어가는 와중에 뜬금없이 아무래도 좋을 비밀 무덤에 들어가서 퍼즐이나 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야기에 대한 몰입이 깨지고는 했거든요. 반면 <RE:2>에서는 좀비와 타이런트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퍼즐을 풀어야 한다는 동기가 이야기와 잘 연동되어 있었어요. 단점이라면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똑같은 퍼즐을 다시 풀어야 했다는 거고요.


공포감도 좋았습니다. 첫 게임이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이었다 보니 어느 정도 면역이 생겨버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RE:2>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었어요. 최근 몇 년 동안은 노골적인 공포 영화는 재미있을 수는 있어도 무섭지는 않아서 무서운 영화를 보고 싶을 땐 조용히 은근하게 무서운 걸 주로 찾아보는데요, 게임에서는 역시 공포의 대상과 직접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보니 영화 속에선 더 이상 무섭지 않은 좀비와 괴물들이 오랜만에 정말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그럼 이제 <RE:3> 이야기를 해보죠.

<바이오하자드 RE:2>와 <바이오하자드 RE:2>의 메인 캐릭터들

<바이오하자드 RE:3>

<RE:3>의 주인공은 라쿤시경 소속 특수전술구조대 대원이자 1편 <바이오하자드(Resident Evil, 1996)>의 주인공 중 한 명이기도 했던 질 발렌타인(Jill Valentine)입니다. 질 발렌타인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영화 버전의 배우 시에나 길로리에 대한 여담을 하면서 잠깐 이야기했었는데요, 그래서 질이 주인공인 <RE:3>에도 큰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RE:2>보다 몇 시간 이른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장소는 역시 라쿤 시티에 있는 질의 아파트고요.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깨었더니 갑자기 네메시스라고 불리는 거대한 타이런트가 등장해 쫓기고 쫓기다가 엄브렐라 사의 용병 카를로스 올리베이라를 만납니다. 질은 라쿤 시티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런저런 미션을 수행하는데 그 와중에 네메시스는 지겹게 쫓아옵니다. 그러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위기에 빠지지만 카를로스의 활약으로 다시 회복해요. <RE:2>의 이야기는 질이 바이러스 감염 이후 의식이 없는 동안 일어난 일이고요. 질이 회복하고 깨어났을 땐 클레어와 레온이 라쿤 시티를 떠난 다음 인 거죠. 의식을 되찾은 질은 도시를 구할 백신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다가 여전히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네메시스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되고요. 중간에 배신자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나쁜 놈이 끝까지 나쁜 놈이라서 딱히 특별하진 않고요. 질의 이야기는 이게 전부입니다. <RE:2> 역시 요약하고 나면 그리 풍부한 스토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RE:3>은 그보다 더 단출했어요.


그리고 이 빈 곳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건 카를로스 올리베이라(Karlos oliveira)입니다. 카를로스는 질과 함께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였어요. 질이 처음 전철을 타고 라쿤 시티 탈출을 시도하는 동안, 시점은 카를로스로 바뀌고 플레이어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RE:2>의 첫 무대였던 라쿤 시티 경찰서를 방문합니다. 클레어와 레온이 방문하기 몇 시간 전인 만큼 많은 부분이 <RE:2>와 연결됩니다. 경찰서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마빈 경감은 왜 부상을 입은 채 로비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RE:2>의 주인공에게 준 조언이 어떻게 나오게 된 건지도 알 수 있었어요. 또 경찰서 복도 구석에서 끔찍한 몰골이 되어 있던 경찰들이 어떻게 죽은 건지도 직접 목격할 수 있었고요. 재미있는 연결점이었습니다.


카를로스 올리베이라

카를로스는 이후 본편 시리즈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게 너무 아쉬울 만큼 매력 넘치는 캐릭터였어요. 차갑고 시니컬한 성격의 질을 상대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유머와 자신감 가득한 대사를 시종일관 이어나가며 분위기를 밝혀줬습니다. <RE:2>에선 클레어가 레온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면, <RE:3>에선 카를로스가 질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역시 클레어가 원래 그런 성격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여기서도 카를로스가 그냥 원래 그런 성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역시 그렇기에 친구로든 연인으로든 잘 어울리는 한 쌍인 것 같고요.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카를로스의 본편 등장은  <RE:3>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지요. 스핀오프에서는 잠깐 나온다고 하지만요. <RE:3>의 카를로스는 더벅머리 수염 미남인데 1999년의 원작 게임에선 생긴 것부터가 좀 능글능글해 보여서 별로 인기가 없었던 걸까요?


<RE:2>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로버트 켄도가 <RE:3>에서도 다시 한번 나왔습니다. 시간적으로는 레온과 에이다가 총포상을 방문하기 전이었어요. <RE:2> 속 레온 스토리에서 질이 로버트에게 남긴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내용을 읽어 보고도 무슨 말인가 했었는데 <RE:3>에서 보니 질과 로버트는 원래 아는 사이였더군요. 질은 로버트에게 같이 떠나자고 말하지만 로버트는 <RE:2>에서 레온이 목격했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요. 그래서 질이 쪽지를 남긴 거였습니다. 이야기가 이렇게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건 참 좋았어요.


게임 속 좀비들은 헤드샷을 맞고 쓰러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깨어나는데요, 그래서 같은 공간을 여러 번 방문하거나 지나가야 하는 <RE:2>에서는 이미 지나온 길이라고 안심했다가 공격을 받는 일이 제법 있었습니다. 심지어 창문을 통해 조금 전엔 없던 새로운 좀비가 들어오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시 와야 할 것 같은 곳이라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좀비를 완전히 쓰러뜨리거나 다리를 끊어놓아서 기습을 하지 못하게 해둬야 했어요. 나무판자가 있다면 창문도 막아둬야 했고요. 게임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요소였죠. 하지만 <RE:3>에서는 같은 곳을 방문할 일이 거의 없었다 보니 탄약이 좀 부족하다 싶을 때는 그냥 빠르게 피해 가는 게 좋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좀비의 존재감이 <RE:2>에 비하면 많이 옅었던 것 같네요. 여기에 짧은 볼륨까지 겹치면서 내가 좀비 사태 속을 헤쳐 나온 게 맞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만큼 공포물로서의 분위기도 많이 줄어들었고요.


네메시스

반면 <RE:3>의 타이런트인 네메시스의 존재감은 <RE:2>의 미스터 X보다 더 컸습니다. 미스터 X가 무적인 데다 공격력은 높아도 항상 걸어 다니기 때문에 피하는 게 어렵진 않았는데요, 네메시스는 달리는 건 물론이고 뛰어들기도 하고 원거리 무기도 사용하더군요. 네메시스는 이후에 두 차례 변이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럴수록 위압감은 오히려 줄어들었어요. <RE:2>의 미스터 X나 변이 전 네메시스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있었는데 변이를 하고 나서부터는 그냥 정해진 때에 정해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질이 최종보스가 된 네메시스를 쓰러뜨리는 장면 자체는 굉장히 멋졌지만, 이렇게 끝인가?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RE:3>의 이야기와 게임 진행은 <RE:2>에 비하면 아무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었어요. 절대적인 분량부터가 부족하니까요. <RE:2>가 비슷한 이야기를 두 캐릭터로 반복하는 구성이라 실제 분량은 보이는 것보다 좀 더 짧은 편이기는 하지만, <RE:3>는 그보다도 짧았습니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매력 중 하나인 퍼즐도 <RE:3>에서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던 것 같네요. 게다가 경찰서 스테이지는 <RE:2>의 공간을 재방문하는 것 이상의 재해석이나 새로운 요소가 없었고, 연구소를 돌아다니면서 백신을 찾거나 합성하는 전개와 오수로 가득한 지하 공간을 돌아다니는 전개 역시 <RE:2>와 많은 부분 겹치다보니  <RE:3>만의 요소는 더욱 부족하게 느껴졌고요.


하지만 이런 단점을 깔끔하게 잊게 해주는 게 바로 주인공 질 발렌타인의 매력이었습니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과 외모는 물론이고 괴물을 앞에 두고 시니컬한 농담과 걸걸한 욕설을 날릴 줄 아는 말투, 포기와 타협을 모르는 완고하고 단호한 성격이 굉장히 멋졌어요. 네메시스가 기습을 할 때마다 귀찮은 남자를 만난 것 같은 대사를 뱉다가 최종전에서 마지막 일격을 날리며 “다음에는… 싫다고 하면 알아서 꺼져(Next time… take the fucking hint).”라고 말하는 장면은 어찌나 멋지던지.

질 발렌타인

그리고 게임 도입부에서 질의 아파트 내부를 볼 수 있는데, 은근히 먹는 걸 좋아하는지 식탁에는 동료가 보내준 엑스트라 라지 메가 미트 수프림 피자가 놓여있고 부엌 구석구석에는 도넛 가게 광고지와 쿠폰이 있더라고요. 게다가 사무실 책상에는 귀여운 강아지 사진이 놓여있고요. 사소하지만 질의 소박한 인간미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RE:2>와 <RE:3>

결과적으로는 둘 다 재미있게 플레이했습니다. 이런저런 단점은 있었지만 즐거움을 희석시킬 정도는 아니었고요. 8편인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이하 빌리지)>와 비교하면 주변 인물이나 캐릭터의 동기를 다루는 방법이 많이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RE:2>와 <RE:3>에서 여러 인물들의 동기는 조금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주인공과의 상호작용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겉만 핥고 가는 느낌이었고요. 좋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장르물’에서는 인물을 도구적으로 다루는 게 아주 흔한 일이니까요. 오히려 과거의 주인공들을 내려놓고 평범한 일반인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7편과 8편이 유독 눈에 띄는 것에 가깝겠지요. 특히 8편 <빌리지>는 인물들의 동기와 서로 간의 상호작용이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어졌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빌리지>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시작했으니, 게임 분야에서 좀비 호러 장르의 정석을 다진 초기작을 바탕으로 만든 <RE:2>와 <RE:3>에서 조금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빌리지>에서는 적들 대부분이 인간의 모습을 거의 남기지 않고 있었던 반면 <RE:2>와 <RE:3>에서 일부 괴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인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아, 바이오하자드는 원래 좀비물이구나’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빌리지>에서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없는 적들을 쓰러뜨릴 때와 <RE:2>와 <RE:3>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좀비들을 쓰러뜨릴 때의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좀비물이 인기 있는 이유는 그들이 죽여도 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 게 기억이 나네요. <RE:2>와 <RE:3>에서 어떤 의미에서든 더 무게 있는 타격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게 이것 때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두 게임 곳곳에서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의 흔적을 찾을 때마다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것 속에서 역시 좋아하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때의 즐거움이라는 게 있지요. <에이리언> 외에도 이스터 에그로 <터미네이터>, <탑건>, <그것> 등을 찾을 수 있었어요.

제노모프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포스터들
<에이리언 2 (Aliens, 1986)>을 떠올리게 하는 실험실 모습

다음 게임은 당연히 레온이 다시 등장하는 <바이오하자드 RE:4>입니다. 앱스토어에 예약을 걸어두고 있다가 발매하자마자 다운을 받아뒀어요. 에이다 웡이 주인공인 DLC <세퍼레이트 웨이즈>도 같이 구입했고요. 다음 게임으로 뭘 하겠다고 써놓고 지킨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엔 정말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에 확실합니다.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는 언제나처럼 모르겠지만요.

<바이오하자드 RE:4>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겜알못의 게임로그 #4: <옵저베이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