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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도연 Nov 05. 2023

겜알못의 게임로그 #2: <툼 레이더>

Tomb Raider (2013)

|타이틀| 툼 레이더(Tomb Raider)

|최초출시일| 2013년 3월 4일

|개발사| Crystal Dynamics

|유통사| Square Enix

|구입처| Steam

|사용기기| M2 맥북 에어 기본형, 엑스박스 시리즈X|S 컨트롤러


제가 <툼 레이더>라는 게임을 처음 알게 된 건 게임잡지 <게임피아>를 통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예전 글에서 말했듯 저는 오랫동안 게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게임피아>도 제가 산 게 아니라 친구나 가족 중 누군가가 가져온 거였을 거예요. 하지만 당시에 반쯤 활자중독이었던 저는 읽을거리가 눈앞에 있다면 일단 뭐든지 읽고 보는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집어 든 게 게임피아 1999년 1월호였습니다.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던 건 아니고 검색해서 알아냈어요.

왼쪽: 게임피아 1999년 1월호. 오른쪽: <툼레이더 3(Tomb Raider III: Adventures of Lara Croft, 1998)>

<툼 레이더>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에 대한 제 첫인상은 '뭐야, 이거, 무서워'였어요. 게임을 즐겨하던 사람들에겐 놀라운 캐릭터 모델링이었을지는 몰라도 그저 영화를 좋아하던 초등학생에겐 3D로 구현된 과장된 인체가 왠지 기괴해 보였거든요. 그래서 <툼 레이더>에 대한 첫 기억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물론 게임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라라 크로프트라는 캐릭터에 대한 것이었지요.


그러다가 안젤리나 졸리가 라라 크로프트로 출연한 영화<툼 레이더(Lara Croft: Tomb Raider, 2001)>가 나왔습니다. 2년 뒤에는 속편 <툼 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Lara Croft: Tomb Raider - The Cradle of Life, 2003)>도 나왔고요. 영화 자체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게임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가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다며 호평을 했지만 제겐 오히려 그렇기에 그다지 좋은 느낌이 아니었어요. 안젤리나 졸리는 이 영화로 인지도를 높이며 지금은 헐리우드의 최고 여배우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당시 제겐 어색하게 느껴졌던 3D 캐릭터가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영화는 아직도 보지 않았습니다. 15년이 지난 2018년에는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라라 크로프트 역할을 맡은 리부트 <툼 레이더(Tomb Raider, 2018)>가 나왔지요. 하지만 그때 전 <툼 레이더>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리부트 영화 역시 평가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영화로서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리부트 영화 역시 결국 보지 않았고요.

왼쪽: <툼 레이더(2001)>, 가운데: <툼 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2003)>, 오른쪽: 리부트 <툼 레이더(2018)>

하지만 사람의 시선은 언젠가 방향을 바꾸기 마련이지요.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이하 아이솔레이션)> 덕분에 게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뒤로 맥이나 아이패드에서 가능한 게임을 찾아보던 중에 <툼 레이더>를 발견한 겁니다. 그런데 게임 속 주인공을 보니 제가 알고 있던 기괴한 몸매의 라라 크로프트가 아니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새롭게 리부트 되면서 캐릭터 디자인이 완전히 달라졌고 현실적인 설정으로 변한 거였습니다.


이 변화가 제겐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비슷한 경험이 한 번 있었거든요. 바로 <007> 시리즈입니다. 저는 피어스 브로스넌 시절의 <007>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온갖 기상천외한 액션을 펼치면서도 기름기 도는 매끈한 헤어스타일에 깔끔한 정장 차려입고 매번 여자를 유혹하는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007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2006)>에서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무식해 보일 만큼 과격한 육탄전을 벌이며 옷과 피부 모두 가차 없이 찢어져도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그야말로 땀냄새와 피냄새가 강렬한 액션이었어요. 그때부터 <007> 시리즈를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리부트판 라라 크로프트를 보고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왼쪽: 피어스 브로스넌의 제임스 본드. 오른쪽: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제 개인적인 편견에 따라 선택된 이미지입니다.
왼쪽: 오리지널 시리즈의 라라 크로프트. 오른쪽: 리부트 시리즈의 라라 크로프트. 제 개인적인 편견에 따라 선택된 이미지입니다.

(사실 오리지널과 리부트 사이에 디자인이 크게 달라진 시기가 한 번 더 있었다고 하는데 <툼 레이더>에 대한 관심이 0에 수렴할 때 나온 거라 제게는 존재감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다가 기억을 되돌려보니 2020년에 있었던 애플의 WWDC 키노트가 떠오르더군요. 그때 애플이 인텔을 버리고 향후 M시리즈로 명명되는 애플 실리콘을 발표하면서 게임을 시연하는 내용이 있었거든요. 거기에 등장한 게 리부트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섀도 오브 툼 레이더(Shadow of Tomb Raider, 2018)>였어요. 키노트에서 보여줄 정도라면 잘 돌아가겠다는 생각에 두 번째 게임으로 리부트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툼 레이더(Tomb Raider, 2013)>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리부트 시리즈 첫 번째 작품 <툼 레이더>

처음에는 좀 어려웠어요. 기본적인 조작법도 <아이솔레이션>과 조금 차이가 있었고 가끔 등장하는 QTE(Quick Time Event)라는 조작법도 낯설었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참 여러 번 죽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일개 사냥감으로 전락하는(..) 늑대만 등장해도 긴장감 때문에 어깨에 힘이 들어갈 정도였죠. 게임의 매력 중 하나로 알려진 다양한 퍼즐도 처음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었습니다. <아이솔레이션>에는 퍼즐 개념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사실 우주정거장 세바스토폴에선 퍼즐 따위 풀 여유가 없기도 했고요. 하지만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잘 즐길 수 있었습니다.


<툼 레이더>는 아주 역동적인 게임이었습니다. 반면 <아이솔레이션>은 정적이었어요. 역동적인 순간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액션보다는 텐션에 중점을 둔 게임이었죠. 여러 가지 총기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소음을 내면 에이리언/제노모프가 찾아오기 때문에 정말 어쩔 수 없을 때가 아니면 쓸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 달리기만 해도 귀신 같이 쫓아오다보니 항상 걸어 다녀야 했어요.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몸을 웅크려 기어 다녀야 했고요. 하지만 <툼 레이더>는 기본 이동이 달리기였어요. 달리기만 할 뿐만 아니라 점프를 하며 장애물을 뛰어넘기도 하고요. <아이솔레이션>은 폐쇄된 우주정거장이 배경인 만큼 갈 수 있는 곳에 제한적이었던 반면, <툼 레이더>에서는 '잘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은 곳 상당수가 실제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었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설마 저기로도 갈 수 있을까' 싶은 곳에 갈 수 있을 때도 많았고요. 지붕과 지붕 사이를 넘나들며 기둥을 붙잡고 아크로바틱하게 몸을 날리는가 하면 뛰어올라 절벽을 기어오르기도 합니다. <아이솔레이션>에서는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가능하더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입니다.

통신탑을 오르고 줄을 타며 길이 아닌 곳을 자유롭게 다니는 라라 크로프트.

이런 역동적인 움직임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제가 하는 거라고는 책상 앞에 앉아서 컨트롤러를 만지작 거리는 게 전부였지만 손끝의 움직임을 따라 라라가 힘차고 빠르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다 보면 어느새 감각적 이입을 하게 되더라고요. 게임 클리어 후에도 섬의 다양한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재미있어서 섬을 몇 번 더 돌아다녔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조금 의외였던 점도 있었는데요, 시각적 잔혹성은 공포 게임인 <아이솔레이션>보다 <툼 레이더>가 더 높았습니다. <아이솔레이션>에도 시체가 몇 구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처참하지는 않은데 <툼 레이더>에서는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는 몰골의 시체가 잔뜩 등장해요. 그리고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의 사망 장면 역시 쉽게 지켜보기 힘든 수준이었고요. 특히 적에게 죽을 때보다 환경 때문에 죽을 때가 그렇습니다. 게임을 하면서도 적에게 죽은 것보다 떨어지고 찔리고 깔려서 죽은 게 훨씬 많았어요. 라라의 다채로운 사망 장면에 대해서는 미국의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의 리액션 영상을 보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저 영상에 등장하는 것조차 일부에 불과하지만요.


코난: "이 게임은 당신이 라라를 사랑하게 만들 겁니다. 그리고 라라를 잃고 또 잃고 또 잃고 또 잃게 만들겠죠."

또 하나 눈에 띄었던 점은 라라 크로프트라는 캐릭터의 변화였습니다. 처음부터 모험심 넘치는 강인한 캐릭터이기는 해도 결국은 일반인에 불과했던 라라가 첫 살인의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그야말로 학살을 벌이는 게 조금 어색했어요. 아무리 악독한 적이라고 해도 라라의 칼과 화살, 총에 처참하게 쓸려가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안타까울 지경이었어요. 끔찍하게 죽어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를 목격했으니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필사적으로 적을 죽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게임 속에선 딱히 그런 연출이 보이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중후반부에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나오는데요, 말 그대로 피웅덩이 속에 빠졌던 라라가 각성이라도 한 것 같은 눈빛으로 피웅덩이 위로 머리를 내밀며 빠져나오는 모습입니다. 아마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의 명장면을 오마주한 거겠죠.

왼쪽: 피웅덩이 속 라라. 오른쪽: <지옥의 묵시록>의 윌라드 대위

그런데 저 장면이 나오기 전부터 라라는 이미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수많은 적을 쓰러뜨렸거든요. 심지어 부상당한 적에게 접근해 총이나 칼, 화살로 결정타를 입히는 기술까지 익혔고. 그래서 저 각성의 순간을 조금 다르게 배치했더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섬에 도착하기 전 거울을 바라보는 라라와 산전수전 다 겪은 후 같은 거울을 바라보는 라라.

전체적인 이야기는 무난무난했습니다. 저주니 마법이니 하는 초현실적인 설정은 썩 좋아하진 않지만 결말부에만 조금 나오는 정도라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고요. 주변 인물들이 다소 평면적이고 도구적 활용에서 끝난 게 단점이라는 지적이 있던데 이게 고작 두 번째 게임인 제겐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대단한 이야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고요. 물론 이야기가 좋으면 더 좋았겠지요.


<아이솔레이션>에서는 우주정거장 세바스토폴의 디테일한 내부 디자인의 매력이 정말 대단했었는데 <툼 레이더>에서는 세부적인 부분보다는 원경이 아름다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풍경 사진 찍는 기분으로 스크린샷을 남기기도 했고요. 하지만 먼 경치의 매력인 만큼 야마타이 섬을 굳이 이곳저곳 돌아다닐 만한 끌림은 없었습니다. 훌륭한 포토스폿이 몇 군데 있는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앞에서 말했던 역동적인 동작의 즐거움 때문에 클리어를 하고 나서도 아이템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는 했지만요.


야마타이 섬의 풍경들

결과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공포와 긴장으로 가득했던 <아이솔레이션>에 비해 <툼 레이더>는 가벼운 마음으로 힘 있고 속도감 있는 액션과 탐험을 즐길 수 있는 만족스러운 게임이었습니다. 속편인 <라이즈 오브 툼 레이더(Rise of Tomb Raider, 2015)>를 얼른 하고 싶도록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라이즈 오브 툼 레이더>는 평가도 리부트 시리즈 중 가장 높다기에 더욱 기대가 되었고요.


하지만 바로 속편으로 넘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조금 시간을 두고 다시 찾아야 반가움이 더 커질 것 같아서요. 실제로는 3년의 간격을 두고 나오기도 했고. 물론 3년이나 기다릴 생각은 없고요.


그리고 <툼 레이더>를 클리어한 다음에 결국 영화를 봤습니다.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나온 리부트로요. 초반부에 라라가 포로 상태에서 도망치면서 외나무다리-강-폭포-비행기-낙하산-나무를 거쳐가는 일련의 고생 장면을 제외하고는 게임과의 유사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게임 속 이야기도 그리 깊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영화의 이야기는 더욱 얄팍했어요. 최종 보스라고 할 수 있는 히미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지극히 현실적인 동기로 움직였던 게임과 달리 영화는 히미코의 정체를 현실적으로 끌어온 반면에 정작 등장인물들의 동기가 세계 정복이니 뭐니 해서 좀 유치했습니다. 게임 원작 영화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라라는 게임 속 라라와 생각 이상으로 비슷해 보는 재미는 있었습니다.


다음 게임은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품고 있던 <바이오하자드 빌리지(Resident Evil Village, 2021)>입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이미 본편을 클리어했는데요,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놀라웠어요. 다음 게임로그에서 이야기합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Resident Evil Village (2021)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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