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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의미 Jun 01. 2024

오롯이 나로 살 수 있었던 세부 3박 5일 후기

여행준비부터 여행마지막까지 빈틈없이 행복했던 3박 5일이었다. 대문자J와 소문자J 동생과 같이 준비했었기에 서로 상호보완적이었다고나 할까. 우리의 일정에 빈틈이란 있어서는 안됐다. 둘다 5일 휴가 내고 가는거라 가성비를 뽑고 와야겠다 생각했었던. 여행 가기전 후로 일하느라 듀티(근무)가 빡빡했다. 세부 비행기는 보통 밤비행기였으므로 시간을 아끼기 위해 도착하자마자 투어일정을 택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모알보알이니 오슬롭이니 하러 가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지 않은 여행사를 선택했는데 나는 소규모라서 오히려 좋았다. 여자사람 8명이 참석했는데 차량은 두 대로 나뉘어 타고 다녔다. 차량으로 이동시간이 굉장히 많았는데 누가 운전해주는 차 타고 다니는 것도 편했다. (한국에서는 주로 내가 운전을 하고 다니니까. ) 투어 일정은 빡빡하면서도 적절했고 가이드들도 친절했다. 비용은 20만원 정도 들었는데 결과적으로 만족. 팁은 물론 별도지만 한국물가 기준으로 얼마 안하기에. 논외로. 투어 종료후 호텔까지 드랍해줘서 진짜 편했던. 그렇지만 필리핀 도로 정말 별로라서 엉덩이 지진 및 고난은 예상하셔야 한다.





오슬롭 모알보알 투어 19만원대 시티투어 19만원대 항공권 36만원대 2박 호텔 8~9만원대
환전 35만원 -> 이안에서 각종 입장료, 팁, 식대, 마사지, 교통비, 각자 기념품 추가.
이중에서 각자 기념품 제외. (각출), 우리는 공금을 따로 운영했고, (몇페소였는지는 기억이 안남).
1인당 기준이며 몇 천 원 단위까지는 생략하겠다. (기억도 안나므로)





첫 날 오슬롭 모알보알 투어일정은 빡빡했지만 재미있었고, 지금이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인가 싶은 시간이었다. 남편과 아이들 없이 이렇게 와본 게 언제인지. 물론 같이 가족이 와도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아마 나 자신에게보다는 아이들에게 집중했을 것이다. (막내가 어리다보니 그럴수밖에 없는 상황이랄까.) 그리고 아예 일정 자체가 달라졌을 듯하다. 아마 아이들 위주의 일정이었을 것이다. 결혼하고 9년 순삭.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이렇게 수학여행 하듯이 놀러다니고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냥 그 순간이 감사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게 현실감이 없다고나 할까. 물놀이하고 남이 차려주는 밥 먹고 남이 운전해주는 차 타는 것 만으로도 주부몬에게는 감동 그 잡채였다. 항상 내돈내먹, 셀프 운전, 셀프 요리하는게 일상이었으니까. 같이 간 동생과 깊은 이야기도 하고 자다깨다 하면서 차에 탔다 내렸다하니 어느새 투어가 끝나있었다.





둘째날에는 본격 자유여행 일정이었는데, 우리끼리 택시타고 다녀서 더 긴장백배였던 여행. 택시 아저씨가 돌아간다거나 요금이 바가지는 아닌지 긴장하면서 다닌 것 같다. 그래서 늘 구글맵스를 켜고 다녔다. 처음에는 택시를 어디서 어떻게 잡아야 하지 싶었는데 현지인들 관광객들 타고 다니는 걸 보며 베트남에서는 그렇게 많이 불렀던 카카오 택시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현지 택시 타는 기분이랄까. 바가지 요금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택시는 돌아가기도 하고 변태 택시 아저씨를 만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아. 이거야 말로 로컬 찐 여행이구나 싶었다. 필리핀에 오니 어쩔수 없이 영어를 써야 했는데 낯선 곳에서 언어까지 다르니 내 생존 능력은 최대치까지 올라갔다. 언어가 안됐지만 세부 자체는 처음이었기에 모든 것이 낯설었고 현지인에게 물어봐야 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하다못해 음식 주문을 하더라도 말이다. 물티슈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없다고 한 가게도 있었다. (ㅋㅋㅋ) 그들은 내 발음을 못 알아듣기도 했지만 뭐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쉬운 단어로 말하려고 노력했으며 그 사람들도 내 수준에 맞춰서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름 말 안통하는 것도 재밌었고, 머리를 쥐어짜서 어떻게든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표현하려는 그 과정 자체가 재밌었다. 20대 한참 영어공부 할 때가 생각나면서 이래서 영어 노출, 환경이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학연수 보내는 엄마들이 이해되는 순간 이었다. 모순적이게도 친구랑 즐기러 온 그곳에서도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몬 DNA 소환) 이런 환경에 살다보면 한국에서처럼 입시하듯이 영어공부 하지 않아도 될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국해서 남편에게 말했더니 자기는 한국에 남아 돈을 벌거라고 했다. 해외로 보내줄테니 아이들 데리고 나가서 살라고 아주 간단하게 말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면 한국이든 해외든 같이 살아야 한다는 주의라 그건 보류. 그리고 나가서 우리가 뭐해서 밥해먹을지 뚜렷하지 않은 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가 이민 생활의 많은 것을 결정할테니 말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동생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말이다. 대학-졸업-취업-결혼 이라는 4단계를 숨가쁘게 달려오고 다시 임신-출산-휴직-복직-육아 라는 달리기를 하고 있는 나에게 이번 여행은 쉼이었다. 잠깐 멈춰설 수 있게 하는 휴게소 같은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허투루는 살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놓치고 있는 무엇인가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남편이나 아이들보다 현재 나에게 맞닥뜨리는 세부에서의 삶에 더 집중했다. 그럴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했다. 





지금 이순간, 동생과 먹고 마시는 것. 보는 것. 누리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행했다. 그 과정에서 진심으로 누렸고 눈에 담았고 마음으로 그곳을 담았다. 그곳이라 하면 내가 보았던 풍경들 만났던 사람들, 그순간의 감정과 마음들이라고나 할까.  이제 몇 시간 뒤면 한국으로 돌아가겠지만, 잠시후면 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그 느낌, 그 감정은 내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있을테니까. 낯선 곳에 나를 놓아보니 나도 잊고 있었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혼 하기전 나는 모험하는 것을 좋아하고 낯선 곳에서도 적응 잘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하고 말이다.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사느라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했을 뿐, 갈고 닦다보니 늘어나는 건 요리 스킬과 육아 전담 멀티 태스킹이었을뿐.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지금은 아이들을 서포트하고 남편을 서포트 해야할 때라는 걸 알아서 더 슬픈. 이 시간이 지나가면 엄마도 성장할 수 있는 시기가 올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남편이 있어서 싱글로 살았다면 알 수 없었던 것도 누리고 있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작가의 말: 그럼에도 엄마도 엄마로서 살아갈 시간 필요하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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