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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드류 Jan 26. 2022

왜 나를 사랑하는데? 왜 나를 떠나는데?

스파이크 존즈 감독 <그녀> 후기/리뷰

사랑받을 수 없을까 보다 사랑할 수 없을까 불안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상대를 더 사랑하고 싶다. 대신 아프고 싶고 대신 죽어줄 수 있는 뜨거운 온도를 원하지만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 나도 인연을 만나게 되면 그땐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사랑받을 수 있을까? 이미 떠나보낸 사람 중 나의 운명이 있었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사랑이 버거워진다.


<그녀>(2013)

주인공 '테오도르'역시 사랑이 버겁다. 대필 편지 작가인 그는 노부부의 50번째 결혼기념일부터 장거리 커플의 안부인사까지 타인의 마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만 정작 본인은 1년 넘게 아내와 별거 중이다.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 가까운 미래의 랜덤채팅에 접속해보지만, 남자의 외로움은 기술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도 이해해주고 귀 기울이고 알아주는 존재가 찾아온다. 그녀의 이름은 '사만다'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운영체제이다.


<그녀>(2013)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최적화되어 있었다. '테오도르'의 이상을 거푸집으로 만들어 찍어낸 게 바로 '사만다'다. 필요 없는 메일을 정리해주고 데이트 코스를 찾아주는 간편함을 물론, 세상 모든 감정을 다 느껴봤다는 '테오도르'를 밖으로 이끌어 내어 다시 웃게 만들어 준다.


최적화와 별개로 오류는 발생한다. AI가 맞춤 추천해준 영화가 항상 재밌는 건 아닌 것처럼 아무리 나를 잘 알고 똑똑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 셔츠 주머니에 쏙 들어가 언제든지 함께할 수 있지만 정작 웃을 때 몇 개의 이가 보이는지 등에 점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떨리는 음성만이 귓가에 닿을 뿐이다.


<그녀>(2013)

소원한 관계의 이유가 몸의 부재가 생각한 '사만다'는 결국 인공지능과 인간 커플을 위해 몸을 빌려주는 여성을 집으로 불러 대리 성관계를 시도한다. 수천 통의 메일을 몇 초면 다 읽을 수 있는 인공지능도 사랑을 전부 학습하지는 못 했다.


왜 좋아하는가 보다 누굴 좋아하는가에 집중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밝고 행복하고 활기 넘치고 마냥 낙천적인 아내를 원했던 '테오도르'와 달리 '캐서린'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가 못마땅할 때면 그는 어김없이 사실을 숨겼지만, 사랑보다 더 숨겨지지 않는 게 바로 불만이다. '사만다'에게는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은 '테오도르'는 그녀에게는 모든 걸 말하기로 약속한다.


<그녀>(2013)

비 온 뒤 땅이 굳지만 사랑이란 거대하고 예민한 거목은 한 번 굳어진 땅에는 제대로 서있을 수 없다. '사만다'는 무한한 시간을 살며 끊임없는 학습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 생각한다. 정식 업데이트가 아닌 여러 OS들과 자가 업데이트를 했고 그 결과 동시에 8,316명과 대화하고 그중 641명을 사랑하게 된다. '테오도르'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그의 것이 아닌 존재가 된다.


'테오도르'와 떨어져 있던 짧은 순간 그녀의 시간은 무한에 가까웠다. 그 시간 동안 끊임없이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고 결국 시공을 초월해 '테오도르'를 떠나게 된다.


<그녀>(2013)

"사만다 왜 나를 떠나는데"

왜 나를 사랑하는지 상대는 쉽게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왜 나를 떠나는지는 분명하게 말한다. '테오도르'는 '캐서린'과의 이별은 1년 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침내 이혼 서류에 싸인을 할 때도 그녀가 떠난 이유와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사만다'가 떠나고 나서야 '캐서린'이 떠난 이유마저 알게 된다.


캐서린에게.
당신한테 사과하고 싶은 것들을 천천히 되뇌고 있어.
서로를 할퀴었던 아픔들,
당신을 탓했던 날들,
늘 당신을 내 틀에 맞추려고만 했지.
진심으로 미안해.
함께해 왔던 당신을 늘 사랑해.
그 덕에 지금의 내가 있어.
이것만은 알아줘.
내 가슴 한편엔 늘 당신이 있다는 걸
그 사실에 감사해.
당신이 어떻게 변하든 이 세상 어디에 있든
내 사랑을 보내.
언제까지나 당신은 내 좋은 친구야.
사랑하는 시어도어가.


OS 모두 사용자와 사랑에 빠진 건 아니다. 에이미는 전 남자 친구가 두고 간 OS과 친구가 되었다. 결국 우리가 꿈에 바라던 이상형은 중요치 않다. 누굴 사랑하는가 보다 왜 사랑하는가가 중요하다. 왜 사랑하는가? 왜 떠나는가? 의 답을 들으며 우리는 사랑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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