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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과 정치참여 교육, 이제는 학교에서부터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 민주주의분과 이혜리

청소년 때 정치를 가르치지 않는데, 20대의 정치참여는 왜 당연하죠?     

학교 교육에서는 정치를 접하기가 어려웠어요. 사회탐구 과목 중에 ‘법과 정치’가 있었지만 그건 정치 이론에 가까웠죠.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배울 수 없었어요.  그런데 스무 살이 된 이후 갑자기 너무 많은 책임이 부과된 것 같은 거예요. 혼란스러웠죠. 뉴스에선 20대의 투표율이 낮다고, 20대 정치의식이 문제라고 얘기가 들려오는데, 정작 저는 학생 때 그런 걸 배워본 적이 없거든요. 가령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 보면 투표용지의 개수만 해도 엄청난데, 이게 뭔지 누가 알려주지도 않잖아요. 스스로 알고 투표하러 가야 성숙한 20대라고 하고요.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등 유럽 국가에선 ‘정치적 시민교육’을 통해 초등학교 3학년부터 토론수업을 진행해요. 정책에 관해 토론하고, 총선 등 주요 선거가 열릴 때마다 실제 투표와 똑 같은 방식으로 초중고교에서 모의선거를 치른다고 해요. 선거 결과는 집계되어 발표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미래의 유권자인 아이들에게 정책을 알리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이기도 하지요. 우리도 교육과정에서 그런 경험을 접할 수 있다면, 정치와 사회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미러링, 젠더감수성… 왜 학교에선 배울 수 없을까요?      


젠더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페미니즘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도 작고,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젠더 갈등을 크게 느끼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대학에 오고 나니까 학교 커뮤니티에서 미러링이니, 백래시니 하면서 치열하게 싸우는 거예요.      

입학 전에는 대학이 ‘깨어있는 지성’의 현장일 것이라는 꿈이 있었는데, ‘그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부장제나 성차별의 문제는 우리 윗세대가 만든 거지 우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아니다.’ ‘우리 엄마 세대는 충분히 차별받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냐?’ 같은 이야기는 일상이었죠. 그런 명분을 가지고 ‘미투 운동’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았어요.     

저는 젠더 문제로 우리 사회가 이토록 시끄러운 이유가, 우리가 청소년기 학교에서 성평등이나 젠더 감수성에 대해 배우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학교 차원에서 젠더 교육이 이루어지기는 쉽지가 않죠. 교원 양성 과정에서도 젠더 교육을 찾기 힘들고,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분도 소수니까요.     

그래도 최근 들어선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있어요. 얼마 전엔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라는 곳에서 낸 <예민함을 가르칩니다>라는 책을 봤는데요. 고양시 내 초등학교에서 재직하시는 현장의 교사 분들이 쓰신 책이었어요. 실제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의 젠더감수성을 길러주기 위해 정말 다양하게 노력하고 계시더라고요. 성교육만 해도 실제 피임기구들을 보여주고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진행한다거나. 제가 학생 때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영상물 몇 개 틀어주고 끝나는 식이었거든요.          



교사가 가르치기 어려운 문제들, 시민사회가 가르친다면 어떨까요?     

물론 뜻 있는 교원 개개인의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커버하긴 어려운 상황이죠. 여전히 정규 교육과정 내엔 정치교육이나 젠더교육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들었어요. 교원 연수 과정에서도 그런 부분이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과 더불어서요. 저는 이런 문제의식을 안고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청정넷)’의 민주주의 분과에서 활동하게 되었어요.      

청정넷에서 활동하며 주목하게 된 사업이 ‘서울형혁신교육사업’이요. 서울형혁신교육사업이란, 민-관-학이 협력하여 학교와 마을을 연계함으로써 교육 공공성을 실현하고, 마을 주민들의 교육적 재능과 역량을 기르고, 그를 통해 학교를 돕고 지역 내 교육격차를 줄이는 ‘민, 관, 학 거버넌스 사업’이죠. 더 나은 교육을 위해 학교와 마을공동체가 협업하는 형태라고 생각하시면 편해요.     

서울형혁신교육사업을 보면서 든 생각이 있어요. 학교에서 가르치기 어려운 정치교육, 젠더교육을 마을공동체와 시민사회에서 가르친다면 어떨까? 방금 얘기했던 ‘아웃박스’같은 기존의 교사 네트워크도 마을공동체 내 소모임과 연계해서 확장될 수 있잖아요. 이런 내용을 담아 청정넷에선 ‘서울형혁신교육지구 내 교사역량강화'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어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울 수 있게 되길 바라요.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그 밖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이 누군지 알아가는 과정이 이뤄지는 거예요. 정치참여와 젠더를 배우는 것도 그 일부가 될 수 있고요.      

저는 대학 입학 전까지는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입학과 동시에 꿈이 바뀌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접할 수 없던 다양한 것들을 접하면서 꿈이 바뀐 거죠. 꿈은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건데, 입시를 준비할 때는 미래의 진로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애초 어떻게 그 시기에 ‘완벽한 진로 설계’를 할 수 있겠어요? 여태까지 배운 것보다 앞으로 배워 나갈 것이 더 많은 시기인데.       

더 나은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그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입시 위주의 공부 외에도 다른 방향이 있다는 것을.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의 방향을 고집하지 않았으면 해요. 이곳이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면 좋겠어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인터뷰 프로젝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서울청정넷)에서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를 통해 활동하고 논의해온 내용을 나눕니다. 서울청정넷은 청년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참여기구로 청년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발굴 및 제안, 캠페인, 공론장개최 등 다양한 사회적해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글. 은총/ 편집. 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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