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라
부~우~웅 부~우~웅......
아, 이불을 뒤집어써본다.
연무방역 하는 소리다.
2~3일에 한 번씩 하는 거 같다.
비가 잦던 어느 날이었다.
아기를 안은 남자와 아이엄마가 함께 탔다.
그들은 몇 층을 눌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15층을 누르자마자 엘리베이터 안 구석을 살폈다. 사람들이 있는 상체 쪽보다는 하체 쪽으로 시야를 돌리니 과연 모기 서너 마리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그동안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기를 본 적이 없었는데 어제 인터넷에서 봤던 이야기가 맞았다.
숲이 있어서 시원하기도 하지만 주변에 나무와 풀이 많아 장마철이 되니 보이지 않던 모기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것이다. 그 녀석들은 바닥면에서 4-50cm가량 떨어진 구석진 사람들의 시야가 잘 가지 않은 곳에서 흡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중세시대 창을 들고 무장한 기사처럼 그렇게 당당하게 엘리베이터 안에서 공격 목표를 찾고 있었다.
나는 이것들이 사람들을 공격할까 봐 선수를 치겠다고 들고 있던 쇼핑백으로 이리저리 휘둘렀다. 한두 마리는 맞았나 싶었지만 알 수 없었다.
일행은 내 행동이 이상한 듯 보아서 모기가 많다고 말해주니 그들도 놀라는 듯 이리저리 살폈다.
보통 모기들이 날 수 있는 높이는 지상에서 7~8m 건물의 2,3층 이라는데 요즘 모기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닌다. 사람의 옷이나 소지품에 붙어서 함께 타고 올라가 주인이 청하지도 않은 집으로 들어간다. 모기는 불빛이 환히 켜져 있고 사람이 움직이는 동안은 그늘진 곳을 날아다니거나 어두운 곳에 슬쩍 숨어 있다. 모기가 숨을 곳은 얼마나 많은가.
드디어, 인간들이 자는 동안 모기는 소리를 내며 그 집안을 유유히 탐색한다. 술 냄새를 풍기며 코를 드르릉 거리며 자는 남자의 팔을 쿠-욱 찔러본다. "으-윽" 술 냄새를 맡으며 흡혈하고 나니 몸이 휘청거리며 날갯짓이 힘들다. 몇 번의 산란 경험이 있지만 여전히 술에 대한 적응은 힘들다. 천장에 붙어 쉬면서 숙취에서 벗어나야겠다.
알을 한 번도 낳은 적 없는 신출내기는 약간의 화장품 냄새를 풍기는 임신 중인 여자의 다리에 침을 꽂았다. "오호호호..." 여자는 다리를 쓱쓱 긁는다. "후유~ " 까딱 잘못했으면 여자의 손톱아래 긁힐 뻔해 재빨리 커튼 위로 날아올랐다. 피 속의 단백질을 소화시켜야만 다시 날 수 있다. 처음 피 맛을 본 모기는 저 쪽 방에서 자고 있는 통통한 아이의 엉덩이를 살짝 꼬집어 줄 생각에 벌써 신이 난 판이다.
내일 이 부부의 모기 퇴치 비상시국(非常時局)이 펼쳐질 줄은 알려나 모르겠다.
올해는 이른 여름부터 모기한테 시달렸다.
모기 한 마리가 방안을 들어왔는지 보이지 않다가 눈만 감으면 애-앵하고 귓가에서 들렸다.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불을 켰으나 잘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살펴도 이 녀석이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아, 모르겠다 하고 눕는데 왠지 팔 여기저기가 간지러웠다. 물린 것 같지는 않은데 모기가 스치고 지나갔나
싶어 물파스를 발랐다. 그래도 자꾸 따가운 듯 간지러워 비눗물로 팔을 씻고 들어와서 헤어드라이기로 뜨거운 열기를 쐬었더니 조금 가라앉았다. 한여름도 아닌데 한바탕 소동을 끝내고 자리에 누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둘러쓰고 두 팔을 얌전히 이불속에 넣었다.
갑갑해서 다시 이불을 들치고 팔을 내놓았다.
조금 지나니 “너 술래 준비됐어?” 하는 듯
‘애-앵’하고 소방차 출동하듯 모기 소리가 났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불을 켜고 천장에 붙었는지 커튼 뒤에 숨었는지 여기저기를 살폈다. 모기약이 없으니 잡아야겠다는 생각뿐 작은 모기는 피곤한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를 몇 차례하고 나니 잠이 오질 않았다.
자야 할 시간을 놓치고 나니 눈과 몸만 피곤할 뿐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웠다.
아침 7시쯤에 잠이 들어 10시경 일어났으니 잠순이한테는 참으로 고역인 시간이었다.
모기한테 백기를 들었다.
아점 준비를 하다가 천장을 쳐다보니 모기 한 마리가 붙어있다. 어젯밤 그 녀석이 분명한 거 같은데 저대로 뭉개면 하얀 천장이 피로 물들 것 같다. 그래도 잡아야지, 그런데 “어떻게 잡지? “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유유히 자리를 뜨는 데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도 도대체 어디로 숨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드니 화재경보기 안쪽으로 머리를 박고 있다. 드디어 ”이 녀석 잡아야지 “ 하는 내 마음을 알아챈 듯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메롱’만 남겨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녀석.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밤새도록 숨바꼭질을 해서 어지럽고 눈과 몸이 너무 무거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불을 끄고 눈을 감으려는데 ‘애앵’ 소리가 났다.
하하하
우스웠다. 내 아까운 시간을 모기랑 밤새도록 씨름하고 못 잡고 지금도 이러고 있으면서 정작 모기 퇴치제를 구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잠이 쏟아졌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오늘은 저 모기한테 질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이것저것을 찾아보았다.
스프레이 맨소래덤을 찾아서 팔에 뿌리고 주변을 뿌렸다.
그런 다음은 모르겠다.
어라? 잠에 얼마나 빠졌던지 거의 10시간이나 지났다.
어제 뿌린 맨소래덤이 효과가 있었나?
음 근데 그 녀석이 죽었나? 살았나?
근데 모기라는 녀석은 수명이 하루살이처럼 며칠 못 사나?
이런저런 궁금증이 생겼다.
암컷모기는 산란기가 되면 동물성 단백질과 철분이 들어있는 사람과 동물의 피를 찾는다. 그들을 흡혈한 모기는 알을 낳기 위해 한두 번의 흡혈을 한 뒤 일주일 정도 있으면 알을 낳기 시작한다.
성충이 되고 난 후에 모기수명은 1~2개월 정도 생존(빨간 집모기는 조금 더 길다)하면서 10~13번 정도 알을 낳고, 한 번에 약 150개 이상 알을 낳는다니 대단한 번식력이다.
올해 장마는 유난히 길었고 비도 많았다.
동남아 기후처럼 갑자기 소나기를 퍼붓다가 햇빛이 나는가 싶더니 다시 비가 쏟아지는 상황이었다.
이렇다 보니 하천이나 물웅덩이는 많을 테고 풀밭에는 모기 같은 해충이 많을 테고....
도심지역 옥내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모기가 빨간 집모기로 공동주택의 정화조나 하수관의 고인 물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늦가을이나 한겨울에도 하수도관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내 피를 흡혈한 모기는 어디서 알을 낳을까? 물기 있는 욕실, 싱크대 그리고 베란다에 수초를 기르는 수반에 어제 물을 갈았는데... 어디서 찾아야 하나. 우리 삶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법한 일들이 은근 신경 거슬리게 하는 일들이 있다. 모기가 그렇다. 작은 일을 소홀히 하면 큰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하는 일이 있다고 하니 염려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
그나저나 모기는 언제부터 발현되었을까?
세상에나!!!
모기는 1억 7천만 년 전 쥐라기후기부터 인류보다 훨씬 더 먼저 지구에서 살아왔다. 공룡이 멸망해도 인간과 동물의 피를 빨아 그 생명을 유지시켜 오고 대부분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모기로 사망한 유명인은 18세에 요절한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이 있다. 그는 유전적으로 면역체계가 취약했던 차에 말라리아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정복 왕 알렉산더의 죽음이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 때문이라는 학계의 연구 발표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모기가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은 경우도 있었다.
1789 서인도제도 아이티 프랑스에서 강제 이주된 흑인노예들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이에 나폴레옹은 2만 5천여 명의 무장한 진압군을 파견하지만 대부분의 군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남은 몇 천 명만이 살아 돌아온다. 원인은 황열병(yellow fever)으로 모기가 옮기는 아르보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출혈열 때문이었다.
황열병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 흑인노예들은 살아남았고, 또한 이들은 변변한 무기도 없이 프랑스를 물리친 후 오늘날의 아이티공화국을 세웠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모기 때문에 발이 묶이기도 하고,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모기와의 전쟁’이었다는 에피소드가 이해가 된다.
이 작은 생명체가 긴긴 역사 속에서 무명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모기, 그 작은 생명체는 아직도 건재하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매년 7억 명 이상은 모기로 인한 질병에
시달리고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니 그 위력이 대단하다.
모기가 생태계에서 하는 역할은 다른 작은 동물들의 먹이로 작용한다.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단계이지만 위험을 넘어선 해충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감염병 전문가 에이미 하트먼 교수는
“기후변화로 감염질환이 더 빠르게 확산되고, 더 위협적으로 다가올 것이다.”라고 했다.
바이러스성 모기 매개 감염병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세계화와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온이 상승할수록 모기는 더 빨리 번식한다. 서식 범위도 넓어지고, 개체의 급변으로 잠재적 확산 위험이 늘어난다. 해외유입 바이러스성 모기는 매개감염병관리대상으로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질병관리청에서는 국내 유입 예방 및 유입 시 신속한 대응을 통해 국내 모기감염 및 바이러스 토착화 방지가 목표라고 한다. 바이러스성 모기매개대상감염병으로 열대열 말라리아, 삼일열 말라리아, 황열, 뎅기열, 웨스트나일열, 치쿤구니야열, 지카바이러스감염증 등이 있다.
특히 지카바이러스는 임산부가 감염되면 소두증의 아이를 낳는다는 등 사람들에게 대단한 공포의 대상이다.
모기 퇴치 및 예방은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하고 모기로부터 보호하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주기적인 연무소독방역과 전통적인 모기장에서부터 피우는 모기향, 버그킬러, 모기스프레이, 각종 전기모기향, 천연방향제, 모기퇴치기, 전자 포충기, 전자 모기채, 몸에 직접 바르는 온갖 모기 퇴치제, 식물 방충제, 기피제 등...
인간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서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쉽지 않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 했던가. 백악기 공룡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수많은 동물들을 괴롭혀 온 모기.
공룡은 사라져도 모기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아이들 어릴 적에 읽어준 동화가 생각난다.
이솝 이야기에 나오는 ‘사자와 모기’라는 이야기다.
세상에서 무서울 것 없는 동물의 왕인 사자가 딱 하나 성가시고 괴로운 것이 있다. 사자가 피해 다니는 게 뭐냐면 바로 모기다. 손톱보다 작은 모기한테 물린 사자는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발톱을 곤두세워 자기 얼굴을 박박 긁어서 큰 상처를 냈다는 이야기다. 우쭐해진 모기는 백수의 왕인 사자를 이겼으니 자신이 왕이라는 착각에 빠지고...
아뿔싸!
모기의 생은 알 수 없는 것. 거미줄에 걸려 그냥 거미의 밥이 되었다는 이야기.
코끼리와 거머리, 전갈과 파리... 그뿐만이 아니겠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니 어쩌니 하며 잘난 척 해도 작은 모기가 주는 파괴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곤충들 중에 모기, 파리, 벼룩, 회충, 좀, 진드기, 바퀴벌레 등의 해충이 있다. 그중에서 모기는 인간과 동물에게 직접 피를 빨아먹고 바이러스를 옮기고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생명 탄생 이래로 자연이라는 거대한 질서 속에서 인간은 그 작은 존재를 적대시하며 공존해 왔다. 어쩌면 인간과 모기, 모기와 인간이 벌이는 숨바꼭질은 영원할 것 같지 않은가.
사람들보다 먼저 생겨난 생명체의 선배로서 말한다.
까불지 마라!
아직도 건재하다! 고.
이 세상에 만만하게 볼 것은 결코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