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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섭 Dec 11. 2018

직장인의 여행법_#7

도쿄의 밤, 골목식당 투어

딱 10년 만이다. 다시 도쿄행 비행기를 탄 것은.


도쿄행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후지산

생애 첫 도쿄는 동생과 함께 간 도깨비 여행이었다. 밤 12시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해 새벽 비행기를 타고 다음날 새벽부터 여행을 소화하는 상당히 빡센 일정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춥고 #배고프고 #피곤하다 정도랄까. 하루 숙박비를 아낄 수 있으니 가성비는 좋긴 하지만 하루 종일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두 번째 도쿄는 바로 한 두 달 뒤 촬영차였다. <토크앤시티>라는 트렌드 정보 프로그램이었는데, 일본 거대 화장품 회사의 협찬으로 도쿄의 메이컵& 패션 트렌드를 소개하기 위한 거였다. 협찬사는 물론 다이칸야마, 롯폰기의 고급 편집숍을 돌며 도쿄 여성들의 취향을 카메라에 담았다. 하루 10시간 이상 촬영하고 밤엔 호텔방에서 다음날 촬영할 동선 체크하느라 3시간도 겨우 잤다. 이때의 기억은 도쿄는 #드럽게 넓고 #비싸며 역시 #피곤하다라는 것!  


10년만의 도쿄 #직장인 라이프 #맛있는 술과 밥


그리고 거의 10년 가까이 지나 다시 도쿄 여행을 떠나게 된 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도쿄의 인상은 #도쿄 직장인 라이프 #맛있는 술과 밥 #대만족쯤으로 말할 수 있겠다.

 

좁다란 골목길에 빽빽한 골든가이 술집들

때는 불금. 도쿄의 직장인들이 양복차림으로 삼삼오오 떼 지어 다니는 술집 골목, 골든가이로 갔다. 2-3평 남짓한 초미니 술집들이 밀집한 허름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어찌나 인기가 좋은지 자리잡기가 쉽지 않다. 예상대로 몇 번의 퇴짜를 맞았지만, 운 좋게 2층 다락방 자리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몸을 꾸깃 접고 좁디좁은 계단을 올라가 천장이 낮은 방바닥 구석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퇴근하고 불금을 즐기러 온 젊은 직장인들이 맥주 한잔 마시며 온통 수다 삼매경이었다.. 화려한 대도시인 도쿄 신주쿠에 이런 소박한 매력이 숨어 있다는 게 놀랍다. 맥주와 안주가 대체로 저렴해서 부담 없이 한참을 늘어져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이 어린 정장 차림의 남녀들이 속닥속닥 나누는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아마 이런 내용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스미다상 얼굴만 봐도 짜증난다요!”

“우리 부서가 좃도 더 심하다데쓰”

한잔씩 골라마시는 재미가 있는 사케바

불금의 핫플레이스는 또 있다. (사실 여기부터 가려고 했으나 만석이라 골든가이로 옮긴 거였다) 원래 스탠딩바(bar)로 유명한 술집인데 서점과 콜라보로  새롭게 오픈한 know by moto가 바로 그곳! 원하는 사케를 한잔씩 골라마실 수 있는 사케바로 퓨전으로 나오는 안주가 죽여준다. 한쪽 벽면이 온통 술과 관련한 책들로 가득해, 따듯하고 아담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술과 안주를 즐길 수 있다. 퇴근하고 둘이 다정히 대화하기 딱 좋은 장소다. 사케바를 삽으로 푹 떠서 서울에 그대로 옮겨 심고 싶은 심정이었다.


혼자 사는 직장인 입장에서 늘 간절하게 생각하는 게 하나 있다. 집 근처에, 조미료는 사양하는 가정식 요릿집 하나 있었으면 하는 것.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들려 가볍게 집밥을 먹을 수 있는 작은 가게. 이렇게 상상만 하던 꿈의 식당을 신주쿠의 한 골목에서 발견했다.


가정식 요리집의 멋쟁이 여주인

쿠사야 야요이 미술관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가정식 요리라는 간판이 있는 작고 허름한 집에 시선이 꽂혔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식당. 슬쩍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역시나 범상치 않았다. 기모노에 일본 만화에서나 보던 ‘입는 앞치마’를 두르고, 참빗으로 곱게 빗은 머리를 골동품같이 오래된 핀으로 고정한 정갈한 헤어스타일의 그녀. 무표정이  아주 매력적인 주인아주머니는 아주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우릴 맞이했다. 번화가도 아니었고 동네 주민 상대로 하는 소박한 가정식 요릿집이었으니, 외국인 관광객의 출입이 신기할 만도 할 듯.

카레, 생선구이, 오뎅탕 깔끔한 한끼

주인아주머니는 오뎅탕에 카레밥, 생선구이 등 지극히 평범한 밥상을 정성스레 준비했다. 차려진 밥상에서 먹고 싶은 걸 말하면 1인분씩 담아 데워주셨다. 눈 돌아갈 만큼 맛있는 요리는 아니지만, 일본 가정집에 초대받아 밥을 얻어먹는 기분이 들었다. 내 옆 자리엔 퇴근하고 저녁 한끼하러온 아저씨가 언제나 그렇다는 듯 익숙하게 앉아 메뉴를 주문했다. 주인아주머니는 긴 말이 필요 없다는 듯 눈빛으로 주고받고는 생선구이에 맥주 한잔을 내왔다. TV 프로그램을 멍하니 바라보며 천천히 식사하는 모습이 참으로 부러웠다. 내가 딱 그리던 모습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면, 누가 차려주는 집밥을 TV나 보며 나른하게 먹는 순간


캬...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최고의 소확행이다. 거대하고 복잡하고 붐비고 정신없기만 했던 도쿄의 재발견이다. 역시 여기도 지친 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사는 곳이다. 사람도 한번 만나서는 진가를 알 수 없듯 처음에 별 감흥 없던 도시도 세 번쯤 만나면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도쿄의 골목에서 만날 수 있었던 소박하고 사람 냄새는 풍경들이 그리워 또 한 번 도쿄행 비행기를 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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