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침대의 로망
매일 낯선 창문으로 비치는 햇빛을 바라보며 눈을 뜨는 순간. 나의 오랜 로망 중 하나다. 낯선 침대, 낯선 천장, 낯선 창문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 일상의 지루함을 어디 안 보이는 구석에 쳐박아두기에 이 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바깥 소리가 다 들리는 낡은 홑겹 창문일 수도 있고, 완벽하게 소음이 차단된 거대한 고급 통창일 수도 있고, 일출이 보이는 방향의 창일 수도 있고, 울창한 정글숲이 보이는 창일 수도 있다.
침대의 상태도 다양하다. 이케아 조립식 이층침대부터 코끼리가 뛰어놀아도 안 무너지는 스프링 좋은 더블침대, 한 사람 겨우 누울 정도로 좁디좁은 침대까지 각양각색이다.
내가 마주할 수 있었던 낯선 침실들의 풍경. 이게 가능했던건, 일상이 지루해질 때마다 집을 떠났기 때문이다. 여행은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것인 동시에 낯선 침실을 탐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그림같은 집에서 살고자 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가능한 건 아니다. 직장생활 십수년을 해도 원하는 집을 사는 건 남의 나라 일처럼 멀고도 먼 일이다. 한 50년쯤 월급을 모으면 가능할까? 젠장. 그래도 불가능하다. 이쯤되면 자발적 포기 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나는 평생 아침마다 이 집구석에서만 눈을 떠야하는가. 그렇다면 내 인생이 너무 서글퍼질터. 여행이 그 탈출구가 됐다. 하루 만원짜리 방부터 하룻밤에 무려 100만씩하는 방까지 다양한 침실에서 아침을 맞았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간단하다. 서울에서의 시간도 일상이고 여행에서도 시간도 나의 일상이다. 여행이 곧 일상이고 일상이 곧 여행이다. 굳이 경계선을 긋지 않는다. 여행지의 침실에서 맞는 아침도 내 매일의 아침 중 하루일 뿐.
그렇게 관점을 바꾼뒤로 놀랍게도 좌절감이 사라졌다. 대부분의 하루를 지금의 원룸에서 시작하지만, 어떤 날은 라스베이거스의 일출을 바라보며 기상하고, 어떤 날은 시끌시끌한 맨해튼 거리의 소음에 깨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후지산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눈을 뜨기도 한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아침이다.
지금은 눈 또 쌓인 설국의 아침을 맞으러 비행기표를 끊는 참이다. 창밖을 바라보며 침대에서 뒹굴거릴 나를 상상하니 벌써부터 입꼬리에 미소가 스물스물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