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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섭 Nov 23. 2018

#4. 오타루의 완벽한 하루놀이

오타루의 완벽한 하루놀이 (feat.미스터초밥왕)  --- 삿포로 2편

호혜이쿄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노천 온천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하루 종일 있을 수만은 없다. 탱탱 불어 흐물 하물 해져 버리면 안 되니까. 대개 한 시간 정도 탕에 머물다가 맥주 한잔에 카레 또띠아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는 삿포로역으로 다시 출발한다.


온천까지 마쳤지만 시간은 겨우 오후 1시. 아직 반나절 정도가 남아있다. 삿포로역에 도착하자마자 기차 타고 680엔이면 갈 수 있는 근교 도시, 오타루로 향했다.  

엽서 풍경을 한 오타루의 밤


몇 해 전, 한 여름에 오타루에 갔던 기억이 있다. 여름의 오타루는 한적하고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소박한 도시였다. 한 겨울의 오타루는 또 어떤 모습일까 부푼 기대를 안고 갔는데, 역시는 역시! 오타루의 매력은 명불허전이랄까. 중요한 건 한여름보다 한겨울에 오타루의 매력이 터진다는 사실.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고 거리를 걷기만 해도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곳이 오타루다. 입장료 없이 들어가는 거대한 유원지 같은 느낌이다.  


2월의 오타루는 사람 반, 눈사람 반


2월의 오타루는 사람 반 눈사람 반. 식당 입구마다 눈사람이 사람 시늉을 하면서 손님을 맞았다. 삿포로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풍경에 초등학생의 심정이 됐다. 어지간한 테마파크보다 낫다.   


오타루 명물이 된 눈사람


오타루의 단점 하나만 꼽으라면 눈길이 청소가 안 되어 있다는 점. 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동네를 겨울왕국 분위기로 꾸미기 위해 일부러 눈길 청소는 안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숨 참아가며 어그부츠에 방수 스프레이 한통을 뿌린 노고가 여기서 빛을 발했다. 미끄럼 방지용으로 스노우체인도 챙겨갔는데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타루는 스케이트장을 방불케 하는 빙판길이었다. 같은 지점에서 장정 셋이 연속으로 엉덩방아 찧는 것을 목격했던 터라, 나의 철저한 준비성에 다시 한번 쓰담쓰담을 해줬다. (여행지에서의 부상은 그날 공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사전에 예방하는 게 필수!)



오타루에서 올라프를 만날 줄이야

직장인은 밥심으로 산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한 날은 흔한 자괴감에 빠진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나는 왜 제때 끼니도 못 챙겨 먹으며 돈을 벌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밥에 대한 욕심, 간절함이 있다. 이왕이면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것을 먹어야 하루가 뿌듯하다. 그런 관점에서 참 고민스러웠다. 반나절의 일정으로 간 터라, 오타루에서  먹을 수 있는 건 단 한 끼.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 것인가...

  

미스터 초밥왕 오타루 출신?


미스터 초밥왕의 모델이 된 식당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메인 스트리트에서 꽤나 떨어진 곳이었지만, 꾸역꾸역 빙판길을 헤쳐가며 찾아갔다. 오타루의 맹추위에  몸은 거의 방전 상태, 내 몸은 뭐든 최선을 다해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예약을 안 하고 간 터라, 한참을 기다려 바(bar) 자리를 하나 차지할 수 있었다. 미스터 초밥왕의 솜씨를 한번 감상해볼까나. 물론 만화의 그 주인공은 아니지만, 내 앞에서 현란한 손놀림으로 초밥을 만드는 저분은 미스터 오타루 초밥왕이었다. 쇼맨십이 대단하다. 여유 있게 사진 찍을 타이밍도 줘가며 순식간에 초밥 한 접시를 뚝딱 내놓는다.


'캬....초밥왕의 솜씨란 이런 건가'


미스터 오타루 초밥왕 셰프님

3000엔가량하는 별로 비싸지도 않은 한 접시였지만 입에 넣으면 녹아없어지길 반복했다. (스시에 꿀을 발라놨나...) 냉동참치가 될뻔한 온몸이 초밥 한 접시에 사르르 녹았다. 맥주 한잔으로 가볍게 입가심을 하고는 식당을 나선 나는 곧장 오타루 기차역으로 향했다. 혹시 폭설이라도 왔다가는 기차가 끊겨 삿포로로 못 돌아갈 수 있다는 전설을 많이 들은 터라, 서둘러 기차를 타고 삿포로에 있는 나의 보금자리로 달려갔다.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날렵한 자태


삿포로의 호텔에는 웬만하면 온천이 딸려있다. 내가 묵은 숙소는 루프탑에 노천 온천이 있는 곳이라 밤마다 별을 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오타루에서 언 몸을 녹이려 노천탕으로 스르륵 몸을 누이는데, 뻥 뚫린 천장에서 눈이 소복소복 내렸다. 까만 밤, 밖으로는 새빨간 삿포로 타워가 반짝이고, 삿포로 도심의 고층 빌딩들이 파노라맟럼 펼쳐지는 온천의 뷰, 여기에 뚫린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뜨끈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이 기분.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100%의 소확행이다.


퇴근하고 나면 항상 몸이 아프다. 누구한테 두들겨 맞은 것도 아닌데 삭신이 쑤신다. 육체노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정신노동도 사람 몸에 타박상도 만들고 멍도 만드나 보다. 그런 순간마다 삿포로의 루프탑 노천탕이 간절해진다. 특히 찬바람이 양볼 싸대기를 때리는 요즘에는 특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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