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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Apr 17. 2020

동그랗고 울퉁불퉁한 초록빛 맛, 쑥개떡

쌉싸르한 쑥개떡의 향이 봄의 초록을 떠올린다.  



"시에나 이것좀 먹어봐."


차장님(매일 나와 30분 남짓의 티타임을 가지는 단골손님, 회사에서의 직급이 차장님이라 나도 차장님이라 부른다, aka 모닝커피 메이트)이 내게 초록뭉텅이를 넘겨주셨다. 



"이게 뭐예요?"

"어~ 쑥개떡. 와이프가 했는데 한번 먹어보라고."

"아하! 와 쑥개떡 보니까 외할머니 생각나요."

"먹어보셔! ^^"

"네"






 반가운마음에 서둘러 열어본 폴리백안에는 손바닥 2/3크기로 동그랗게 빚어진 쑥개떡이 여덟개쯤 들어있었다. 떡집에서 가끔 봤던 쑥개떡은 덩치가 큰 고학년 형님이라면, 차장님 사모님이 빚으신 쑥개떡은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처럼 작고 얄판하고 귀여웠다. 장난삼아 양볼에 연지곤지를 찍듯 척-하고 얹어도 얹혀질듯 소박한 초록빛 동그라미였다.(물론 양볼이 초록으로 뒤덮힐 것이다.) 



 한입 베어물자 쫀쫀한 식감이 씹는 즐거움을 일으켰다. 신이나서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자 입안 가득 쑥향이 밀려든다. 



'와- 봄이다. 봄이야.'







쑥처럼 온전히 향과 색을 맛처럼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쑥의 내음은 쌉쌀하면서도 향긋하고, 또 그 끝에서는 흙내음이 난다. 흙에서 자란 것이니 당연하겠지만, 음식에서 흙내음이 나는 걸 싫어했던 적도 있다. 거부감을 극복하게 해준 것은 외할머니의 손맛이었다. 


 봄이 오면, 할머니는 집 마당에 고개를 내민 쑥으로 쑥개떡이나 쑥버무리를 해주셨다. 굽은 등과 말라비틀어진 고목같은 손으로 직접 쑥을 캤다. 드문드문 초록으로 물든 마당에 알록달록한 고쟁이를 입고 등돌린채 나물을 캐는 할머니의 곁으로 하얀색 배추꽃 나비가 날아들면, 꼭 동화속의 한장면 같았다. 내 기억속 봄 풍경중의 하나다.  



 할머니는 열심히 캔 쑥을 몇번이고 깨끗하게 씻어서 쌀가루와 함께 치대거나 버무려 찜통에 쪄냈다. 할머니의 손힘이 점점 약해지며, 최후에 자주 먹은 것은 쑥버무리다. 오래 치대야지 쫄깃한 맛을 살릴 수 있는 쑥개떡은 할머니에게 점점 힘든 요리였을 것이다. 



 봄이 오면 자연스레 쑥개떡과 쑥버무리를 먹으며 자란 시골아이였지만, 할머니가 떠난 후로 오래 이 맛을  잊고있었다. 오랜만에 동그랗고 울퉁불퉁한 초록빛 쑥개떡을 씹고 있자니, 할머니가 해줬던 쑥개떡과 쑥버무리가 생각난다. 동그랗게 어느정도 평평하게 모양을 잡느라 자연스레 계속 주물럭거리고 치대다보면 작은 초록빛 원에는 손으로 누른 자국이 고스란히 남는다. 쑥이 몰린 부분과 몰리지 않는 부분이 연초록과 찐초록으로 나뉘고, 중간중간 하얀 쑥의 실타래가 보이기도 한다. 직접 만든 쑥개떡은 매끄러운 구(球)모양은 아니지만, 그 모습에 더 정이 간다.  


 쌉쌀하면서도 조금 씹다보면 맵쌀의 베이스의 달큰함이 혀끝에 느껴졌다. 그와중에 달라붙지 말라고 공들여 바른 참기름의 고소함도 혀와 코끝에 달라붙는다. 쫀쫀한 식감에 온전히 보존된 쑥의 향을 맛본다. 어린시절에는 씹다보면 달아지는 맵쌀의 미세한 달콤함보다는 설탕을 찍거나 뿌려 먹는 강한 단맛을 좋아했었다. 우물우물 쑥개떡의 쑥맛을 음미하는 어른들의 입맛을 이해할 수 없을 줄 알았다. 이제는 조금은 알것 같다. 쌉쌀한 쑥의 향속에서 쌀떡의 단맛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우리 할머니도 할머니의 엄마나 할머니가 해준 봄의 맛을 기억하고 나에게 쑥개떡이나 쑥버무리를 해줬던 걸까?

나도 언젠가 먼 훗날 내 손녀에게 작고 동그란 초록빛 봄을 맛보게 해줄 날이 올까? 

오늘밤에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할머니의 레시피를 한번 더듬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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