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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Sep 21. 2020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 준단다.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슬픈환생                

                            이운진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 준단다.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궁금하다

내 꼬리를 잘라 준 주인은 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

가만히 꼬리뼈를 만져 본다

나는 꼬리를 잃고 사람의 무엇을 얻었나

거짓말 할 때의 표정 같은 거

개보다 훨씬 길게 슬픔과 싸워야 할 시간 같은 거

개였을 때 나는 이것을 원했을까

사람이 된 나는 궁금하다

지평선 아래로 지는 붉은 태양과

그 자리에 떠오르는 은하수

양 떼를 몰고 초원을 달리던 바람의 속도를 잊고

또 고비사막의 밤을 잊고

그 밤보다 더 외로운 인생을 정말 바랐을까

꼬리가 있던 흔적을 더듬으며

모래언덕에 뒹굴고 있을 나의 꼬리를 생각한다


꼬리를 자른 주인의 슬픈 축복으로

나는 적어도 허무를 얻었으나

내 개의 꼬리는 어떡할까 생각한다.






 





 이 시는 초여름쯤 SNS를 통해 우연히 본 시였다. 나 역시 아리와 뽀리를 키우고 있고, 이미 15살 12살의 적지 않은 나이이기때문에 더욱 와닿았던 기억이 난다. 시를 다 읽고 언젠가 다가 올지 모를 우리 아이들의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볼수록 하기 싫은 일이라 덮어두었다.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하면서.




이런 나에게 아리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최근의 나는 마지막 글에서처럼 더 잃을 것도 바닥을 칠 것도 없다고 체념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큰 기쁨은 커녕 작은 기쁨이나 낙도 없는 생활은 나를 더 피폐하게 만들었고, 크고 작은 노여움, 지침, 사소한 웃음을 흘려보내며 여름날을 나고 있었다. 더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더이상 바닥 칠 곳도 없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퇴근을 하고 미리 예약해둔 강아지 미용실에 아리를 먼저 데려다주고, 뽀리는 근처의 병원에서 검사할 것이 있어 조금 늦게 데려다 주었다. 나오려는 찰나 노령견 미용 서약서를 쓰라고해서 썼고, 아리의 컨디션이 염려되었다.  마음에 걸려서 아리가 미용을 먼저 마치자마자 내 차로 데려와 뽀리의 미용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뽀리를 기다리는 사이 타지 생활을 하느라 오래 아리와 뽀리를 보지 못한 언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아리를 보여주고, 얼음물도 주었다. 할짝이며 끝을 모르고 물 먹는 모습에 목이 타는 가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차에 오줌을 쌀까봐 그만주었다.


 

*아리의 마지막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아래 단락은 스킵해주세요.


 미용을 마친 뽀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고, 야근한다는 아빠를 기다리며 먼저 밥을 먹고 아리와 뽀리에게 밥을 주었다. 아리가 최근에 밥을 잘 안먹으려고해서 잠시 지켜보는데, 밥을 먹기 시작한 아리가 픽 쓰러지려고 했다. 아리 몸을 부축하고 보니 사례가 들린건지 사지가 차가워지며 힘이 점점 빠지고 호흡이 안되길래 아리의 이름을 외치며 얼른 아리의 혀를 입밖으로 쭉- 빼주고 입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그 사이 오후에 뽀리 진료를 봤던 수의사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울며 아리의 상태를 말씀드리는데, 아리는 온몸에 힘이 빠져 오줌을 싸고 말았다.


 모든 일이 순간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리는 겨우 겨우 숨을 쉬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 난리속에 아리의 딸인 뽀리도 위기상황을 직감한 건지 시끄럽게 짖으며 나와 아리 곁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리를 방석에 잠시 뉘여 다독이고, 설거지를 마쳤다. 느리지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여, 뺐었던 밥 그릇을 아리 앞에 놔줬다. 혹시나 또 사례에 걸리거나 목에 걸릴까봐 사료에 물도 조금 말아줬다. 아리는 빠른듯 천천히 밥을 다 먹고 바로 옆의 방석에 몸을 뉘었다. 걱정스러워서 아리를 잠시 보는데 다시 아리가 숨을 못쉬었다.

 

 이번에는 재빨리 혀를 빼줬는데, 그럼에도 숨을 못 쉬었다. 동물병원 선생님께 울며 전화했고, 그 사이 집에 도착한 아빠도 달려와 아리의 작은 가슴팍을 잡고 주물렀다. "깨깽!!" 놀란듯 크게 숨을 들이쉰 아리의 눈동자가 점점 풀렸다. 몸도 차가워졌다. 난 믿을수가 없었다. 아무리 아리의 혀를 잡아 빼도, 아빠에게 소리 지르며 가슴을 압박하라고 해도 아리의 숨은 돌아오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아리의 이름을 부르며 가슴 악박을 더 해보라고 소리치며 울기 시작한 내 모습에 아빠는 이제 안된다며 단호하게 소리를 지르면서도 계속했다. 아리의 몸이 차게 식었다.



차게 식기 시작한 아리를 안고 지난 모든 내 모습을 원망했다.

몇주간 미루던 미용을 엊저녁 갑자기 예약하고, 아리가 다시 숨을 쉰다고 바로 밥을 주고, 얼마 전부터 아리가 깨깽! 하고 놀라도 잠시 다독이고 괜찮다고 간과한 그 모든 일들이..  아리의 길어진 낮잠을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라며 납득했던 것도 뽀리와 달리 모든 걸 귀찮아하고 혼자 방석에 자주 누워있던 아리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던 것도, 아리와의 모든 순간이 후회됐다.



가족 채팅 방에 아리의 소식을 전하고, 남자친구에게도 말했다. 주중에는 서울에서 지내는 엄마가 부랴부랴 집으로 왔고, 남자친구 역시 와주었다.  




꿈꾸듯 잠든 아리를 보며 엄마는 말했다.


"아리야 그동안 고생많았어. 이번 생에 우리를 만나서 모든 걸 다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고마웠어. 다음 생에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서 사랑 많이 받고 부귀영화 누리면서 살아."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 생에 강아지로 태어난다고 믿는 엄마다운 말이었다.




"강아지가 16년이면 오래 살았어. 병으로 괴롭게 앓다가 가지 않고, 네가 보는 앞에서 갔으니 호상이야. 아리가 나쁜 건 다 가지고 갔으니까, 슬퍼하지마." 엄마는 날 위로하려 애써 말했지만, 위로는 커녕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겨우 3킬로가 넘는 하얗고 보드랍고 따뜻했던 작은 아리가 왜 나쁜 것까지 다 가져가야할까.



 얼마 전부터 아리는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호흡이 안되 놀란 두눈을 크게 뜨고 낑낑 거렸었다. 최근에는 느릿느릿한 걸음도 더욱 느려져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조금만 힘들게 하거나 불편하게 해도 입질을 하던 아리였는데, 아리를 다시 살려보려 입안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남은 이가 몇개 없었다.




아리가 이제 내 곁을 떠났다. 실감은 나지 않았다. 미용을 마치고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그저 잠든 것 같았다. 가여운 내 강아지...





아리를 산이나 마당에 묻어주자는 아빠와 화장하고 뿌려주자는 엄마.

아리를 묻어줄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결국 강아지 장례식을 진행했다.

아리의 유골이 나왔는데, 어찌나 작은지... 이 작고 예쁜 아이가 나에게 줬던 위로와 사랑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과연 그 사랑에 걸맞는 사랑을 줬던 사람이었을까..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빌어주었으나 네 꼬리는 잘라주지 못했는데 어떻하지?

엄마가 너무 많이 울면 네가 편하게 갈 수 없다고 해서 실컷 울지도 못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네가 날 기다려줄꺼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없어. 언니가 미안해

벌써 많이 보고 싶어. 아리야.






아리엘 (~20.09.08 저녁 7시 52분)


삼가 고(故) 아리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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