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아 Aug 23. 2024

아이 생일에 너무 유난 떠네요.

우리는 이 유난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내가 아이의 매 년 생일마다 의식처럼 유난을 떨며 챙기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아주 오래전, 부모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이 생일에는 무조건 이렇게 해주어야지 하고 몇 년에 걸쳐 생각하고 고심한 끝에 내린 의식이다. 물론 남편도 이 가치관에 동의했고 합의하에 매년 진행하고 있는 연례행사다.


첫 번째는 아이의 생일파티. 첫돌에는 코로나로 간단하게 출장뷔페를 주문하고 돌상을 대여해 집에서 양가 어른들을 불러 간소하게 돌잔치를 치렀다. 그다음부터는 틈틈이 일 년 전부터 생각날 때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아이의 생일상을 꾸밀 만한 것들을 하나씩 구매해서 모아두기 시작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유니콘 풍선이라던가, 생일축하용 가랜드라던가, 생일날 쓸 고깔모자 등등을 사서 창고에 넣어둔다. 그리고 생일날이 되면 소중하게 모아 온 보물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셀프 생일상을 차린다. 세상에 하나뿐이고 이 날 한 번뿐인 생일 데코를 위해 틈틈이 인터넷으로 보고 캡처해 둔 생일상을 참고하기도 한다. 생일 참석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 등 가까운 가족에 한정된다. 아이가 더 자라 친구들과의 생일파티를 희망한다면 구성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케이크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매년 좋아하는 캐릭터나 색깔이 달라지는데, 아이 생일이 다가오기 두 달 전부터 함께 밥을 먹으며 의견을 물어보기 시작한다. 우리 OO 이는 요즘 무슨 캐릭터가 제일 좋아? 무슨 색깔이 좋아? 그럼 OO이 생일에 이렇게 이렇게 이쁜 케이크를 만들면 어떨까? 질문을 던지며 아이의 선호를 파악한다. 원하는 디자인을 요청하면 맞춤 케이크를 제작해 주는 가게가 집 근처에 있어 일 년에 한 번씩 날짜를 맞춰 최소 한 달 전에 주문예약을 넣어둔다. 집 근처 케이크집은 예쁘게 잘 만들어서 티켓팅이 나름 치열하다. 발 빠르게 예약을 해서 다행히도 아직까지 한 번도 주문을 놓친 적은 없었다.


세 번째로는 선물이다.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평소에 사달라고 해서 무조건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을 다 사주지는 않기 때문에, 아이 생일 즈음 가지고 싶다고 졸랐던 장난감을 심사숙고해 남편과 함께 고른다. 뜯는 재미를 위해서 허접한 솜씨로 엉성하지만 나름 깔끔하게 선물상자를 포장하고 꼭꼭 숨겨둔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말이다. 포장하며 선물을 뜯어볼 아이의 표정과 반응을 상상한다. 새 장난감에 대한 아이의 새로움은 며칠 가지 못하겠지만 찰나 스쳐가는 아이의 얼굴의 미소는 내 마음속에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포토북 앨범이다. 우리는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인데, 일 년에 한 번씩 그 해의 생일파티 사진을 모아 아이의 성장앨범을 만든다. 제일 큰 사이즈로 페이지 장수를 최대로 추가해서 큰 사진책을 만드는데, 먼저 남편과 내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옮기고 외장하드에 시기별로, 이벤트별로 정리한다. 그리고 온라인 사진 출력 서비스 사이트에서 사진첩 페이지를 구성하고 사진을 배열한다. 일 년 치 사진첩을 만들 때 아이를 재우고 밤부터 새벽까지 몇 날며칠을 작업하는데 이때 물리적인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다. 용량이 너무 많아서 포토북 프로그램이 버벅거리거나 화면이 멈추면 절망하기도 한다. 언제 오류가 나서 그간 작업한 게 날아갈지 모르니 틈틈이 중간저장도 놓치지 않는다. 회사에서 내준 그 어느 프로젝트보다 더 꼼꼼히 나누어 작업을 수행하며 완벽을 가하느라 스트레스를 자초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업무지만 성장앨범을 보며 좋아하는 아이 모습을 상상하며 노트북 앞에서 렉이 걸리는 포토북 프로그램과 고군분투하곤 한다.


생일쯤 시기가 맞는다면 약간의 스케줄 조정과 꼼꼼한 리서칭을 통해 경치 좋은 곳으로 호캉스를 다녀오기도 한다. 아이 생일 기념 부모의 욕심 채우기다.


아, 너무 유난이다. 이러니 애 키우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지.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맞다. 너무 피곤하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고 욕심이다. 아이의 삶을 보살피는 이 페이 없는 노동에 스스로 초과근무를 하는 셈이다.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고작 일 년의 하루를 위해 며칠의 시간을 낭비하고 일 년 내내 가슴 한편 아이의 생일이 다가올 시기를 가늠하며 고려해야 할 것들에 대해 신경을 쓴다. 누군가에게 귀찮고 피곤한 삶이 바로 내가 선택한 삶이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간대도 나는 반드시 이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생일의식에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낭비할 것이다. 내 아이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어려서 달력을 볼 줄 몰라도, 생일 날짜를 기억 못 해도 내 아이는 알아야 한다. 우리 가족은 셀럽도 아니라서 뉴스에도 신문에도 나오지 않을 것이고 굳이 의식하지 않는다면 주변사람 아무도 우리 가족의 이벤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 아이의 마음에는 남아야 한다. 우리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너는 이 세상에서 태어난 것 자체로 축복받고 환영받을 존재라는 것을.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생일 날짜를 몰라도 엄마아빠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지는 느낄 수 있다. 그게 꼭 생일이 아니어도 평소에 느낄 수 있다. 사실 아이가 어리다면 얼마나 화려한 생일파티를 했든 성인이 되어서도 기억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남기고 앨범을 만든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내 아이가 알아볼 수 있게. 내 욕심이 담긴 사랑의 흔적을 남긴다. 일 년에 한 권씩이니 아이가 성인이 되면 벌써 스무 권이다. 이 세상 어느 서점에도 팔지 않는 세상에 하나뿐인 책이 매년 한 권씩 출시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 아이가 소중한 기억들이 담긴 사진들을 넘겨보며 행복해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역사와 희로애락도 담겨있다. 우리 집 책장의 베스트셀러다.


나는 내 아이가 나처럼 자라지 않기를 바란다. 내 아이는 나처럼 생일날 숨죽여 서럽게 울지 않기를, 생일날은 맞지 않기를, 왜 태어났냐는 돌림노래로 조롱당하지 않기를, 엄마도 아빠도 기억해주지 않는 생일을 언급했다고 타박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 같은 아이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일날 스스로의 존재를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 아이에게 생일은 슬픈 날이 아니기를 바란다.


생일을 떠올리면 내 아이는 씁쓸함이 아닌, 마음속에 행복으로 충만하기를 염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도 준비고 해치워야 할 수많은 생일파티가 우리에게는 더 많이 남아있다.


내 남편과 나의 이 장기 프로젝트는 아직도 절찬리에 진행 중이다. 그리고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 아이 어려서 아직 날짜 개념을 모른다. 그렇지만 벌써부터 본인의 다음 생일이 언제냐는 질문과 함께 내년에는 티니핑 캐릭터에 이런저런 장식을 넣어 케이크를 만들어달라는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받고 있다. 주말 대형마트 장난감코너를 지날 때, 다음 생일에 꼭 이것 이것을 사달라는 주문을 접수받고 있다.


나는 내 아이가 당당하게 생일선물을 요구하는 것이 좋다. 본인의 태어남을 축하해 달라며 더 횡포를 부려도 좋겠다. 언제든 받아줄 생각이다. 이 갑질은 당연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일에 대한 내 유난스러움이 좋다. 일 년에 한 번뿐인 날을 위해 푸닥거리하는 이 모든 일들이 전혀 귀찮지 않다. 나는 이 모든 의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행복하다. 지난봄, 아이의 세 살 생일을 기념하며 썼던 축하 편지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오늘은 너의 탄생을 세 번째로 축하하는 날이면서 우리 가족 완성의 시작을 축하하는 특별한 날이기도 해. 평균 수명이 130세까지 늘어난다고 하는데, 너의 100살에도 엄마가 옆에서 함께 웃으며 놀이기구를 타고 초에 불을 붙여주며 함께 축하하면 좋겠다. 완벽한 엄마는 아니지만, 항상 덜렁대고 정신없고 가끔은 너무 엄격한 엄마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해. 생일선물도 유니콘케이크도 무지개도 네가 좋아하는 색색의 풍선들도 언젠가 빛바랜 추억이 되겠지. 그렇지만 엄마아빠가 너를 사랑하는 이 마음은 바래지 않고 네 마음에 따스함으로 오래도록 남기를. 일 년 중 평범한 하루였던 오늘도 그저 행복했기를, 이런 하루하루가 쌓여서 네가 엄마아빠 딸로 태어난 평범한 이 삶을 사랑하기를 바래. 너의 모든 순간을 사랑한단다. 우리에게 와주어서, 태어나줘서 고마워.


- 너를 만나기 위해 태어난 엄마가.


이전 07화 어차피 애는 기억도 못해요, 다 부모 욕심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