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인 Sep 08. 2019

외국인 공포증 극복기


나의 5개월 간 게스트하우스 생활을 한 단어로 요약해보자면, '단편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새로운 에피소드가 기다리고 있듯이, 한 명의 사람을 떠나보내면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다. 모두가 서로 다른 이유로 이 곳에 머무르면서 삶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찰나의 시간이지만 그들과 함께 하며 많은 것들을 얻고 배울 수 있었다.



외국인 공포증을 가진 내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한 이유

난 part time job 으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했다. 당시 외국 생활 3년차였음에도 불구하고 피부색 같고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만 체류해와서인지 여전히 나에겐 서양인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다. 중국어하는 사람들하고는 재잘재잘거리며 금방 친해질 수 있었는데, 상대방이 영어만 쓰면 그대로 얼어서 심히 숙연한 성격이 되어버리곤 하는 나였다. 난 이 점이 정말 답답하게 느껴졌다. 영어문법 틀리는 게 무서워서 말 한마디 잘 못 하는 내가 어떻게 인생의 중요한 도전들을 해낼 수 있겠나? 하면서 이 두려움에 제대로 부딪혀보고자 하여 선택한 게 게스트하우스 아르바이트였다. 결과적으로는 그 육개월이 살면서 내 영어실력이 가장 눈에 띄게 좋아진 기간이 되었다.



#Episode 1 : 미국에서 온 의대생, Keel

내 게하생활에서 나의 절친이 되어줬던 친구다. 사실 아직까지도 내 친구의 나이를 잘 모르겠다.........  사실 외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이를 그렇게 따지는 편이 아니라서 한 번도 나이를 물어볼 생각도, 알려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키가 거의 190cm의 Brown skin을 가졌고 체격이 큰 편이라서 처음에 다가가기 좀 어려웠지만 나중에 친해지고 나니 귀엽고 순진한 애였다. 세상 어느나라에 있는 개그욕심 투철한 그런 아이랄까. 미국에서 우연히 알게 된 대만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되어서 대만으로 와버렸고, 나를 만난 당시에는 그 여자아이와 연락이 끊겨서 슬퍼하던 시기였다. 나랑 순두부찌개를 먹으면서 Unconditional love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했고, 비 오는날 노란 우비를 쓰고 같이 등산도 했다. 대체 어디서 배운건지 모를 정체모를 한국어들을 , 너무나 신기하게도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 능력이 있었다.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으면 옆에 가서 어눌한 발음으로 "chin cheong hae(진정해..)" 라고 하질 않나, 루로우판을 너무 맛있게 흡입하고 있으면 옆에 와서 "toe-ji(돼지)"라고 한다. 그 친구는 미국에 돌아갔지만, 얼마 전 까지도 그 대만 아이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으려나? 서양인들은 쿨한 연애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내게 순정남의 면모를 보여주며 서양인공포증을 한 차례 깨준 친구였다.


#Episode 2: 세계를 여행하는 영국 세일즈맨, Jason

Jason과의 대화는 항상 무게가 있었다. 나는 매일 퇴근하면 남아서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는데 , 그 때마다 Keel은 문학소녀냐며 킥킥댔지만, Jason은 자신의 명상경험을 들려주기도 하고, 어떤 내용을 일기에 쓰는 지 물었다. 나에게 할 말이 있더라도 내가 일기를 다 쓸 때까지 기다린 후 말을 하는, 그런 배려심을 가진 진지한 친구였다. Jason은 강도높은 업무량 때문에 몇 번이나 일하던 도중 기절을 했고, 한 번은 정말 위험천만하게 죽을 뻔한 일을 겪은 후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일을 그만 두고 세계 일주를 떠나게 되었다. Jason은 새벽에 종종 비명을 지르면서 깨는 일이 있었다. 젠틀하고 자신감 있어보였지만 마음 속 깊이 Jason만이 이해하는 어두움과 불안함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인 듯 보였다. 세계일주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새 엄마를 방문해서 사랑한다고 말하며 포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랫동안 품어온 아버지를 향한 원망을 관대함으로 바꾸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내적 갈등과 자책, 어려움이 있었을 지 느껴져서 괜시리 한 번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함께 시간을 보낸 건 많지 않지만 몇 번의 대화의 진심이 오가면서 그 친구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나의 서양인공포증을 깨준 친구였다. 지금은 영국으로 돌아가서 오랜 꿈이었던 음악을 시작했고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여행이 Jason에겐 큰 터닝포인트였던 듯 싶다.


#Episode 3: 우리 게스트하우스의 전담 요리사

이 친구는 우리 게하에서 딱 하루 숙박했던 게스트인데 엄청난 친화력으로 하루만에 거의 모든 직원들과 안면을 텄다. 그 후로 이 공간이 맘에 들었는지 종종 한 가득 장을 봐와서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곤 했다. 난 그게 정말 신기했다. 몇 번 본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비를 들여 재료를 사오고 요리를 해준다는 것이... 

맑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호의를 베푸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파스타, 부대찌개, 볶음밥.... 그 친구가 게하를 방문하는 날이면 항상 빵빵한 배를 부여잡고 퇴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젊은 사람답지 않게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하는 친구였는데, 영어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너무나 유쾌하게 서양 친구들과 손짓 발짓으로 대화하는 걸 보면서, 대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뛰어난 영어실력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느껴지는 선한 아우라와 진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마음은 통한다라는 것을 일깨워주며, 나의 서양인공포증을 깨준 친구였다.


#Episode 4: 붉은 해처럼 뜨거운 열정을 가진 Summer

summer는 로비가 울릴 정도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를 가진 대만친구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거침없고, 조금도 숨길 줄 모르는 그런 투명한 친구였다. '아니 이런 얘기까지 해...?' 싶을 정도로 비밀이 없었고 자기 내면에 은밀한 감정들까지도 아주 솔직하고 명확하게 표현한다. 가끔은 직설적인 성격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summer의 이런 성격이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일곱 살 무렵,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울고, 보고싶으면 보고싶다고 말할 수 있던 우리 인생의 가장 순수한 순간의 모습을 여전히 잃지 않고 살아가는 느낌이랄까?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독립영화관을 찾아내서라도 꼭 보고야 마는 의지, 퇴근 후에는 무용 명상에 참가하며, 남자친구와 서점에서 데이트하면서 책에 파묻히는 것을 즐기는 친구였다. 한 번은 내가 출근하자마자 '너 오늘 완전 행운의 날이야!' 라고 하길래 왜냐고 물었더니 "오늘 호텔스닷컴에서 우리 게스트하우스에 방문하기로 했거든. 호텔스닷컴이 꽤 유명한 외국계기업이잖아? 너를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야"라고 했다. 사실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summer에게는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어보였다. 




이 외에도 프랑스, 일본, 벨기에, 태국, 대만원주민, 싱가폴, 말레이시아, 헝가리 등등... 한 명을 맞이하고 한 명 보낼 때마다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은 내게 '이 세상엔 육십억개의 서로 다른 인생이 있구나.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 없다' 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외국인 공포증은 거의 사라졌고 (하지만 여전히 서양인 무리에 먼저 다가가는 것은 겁난다)

영어실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외국인 공포증 그거 뭐 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세계를 무대로 일하고 싶었고 글로벌하게 살고 싶다고 꿈꿔왔던 내게는 꼭 타파해야 할 과제 중 하나였다.

과제의 크기와 관계없이 내가 나의 두려움을 깨기 위해 적극적으로 부딪혔던 것, 그것이 내게 큰 의미가 있다.

두려움은 '미지(未知)' 로부터 온다. 보도섀퍼의 <돈>에서 좋아하는 개념이 있다.


모든 문제는 성장의 기회를 동반하며, 그 문제를 극복함으로써 나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남보다 더 많은 문제에 부딪히고 더 넓은 나의 관리영역을 구축한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번다.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움직이자, 부수적으로 훨씬 많은 혜택이 내게 따라 왔다.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얻은 영어 실력은 자연스럽게 외국계 기업과의 면접 기회로도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매일 매일 수십 명의 스승을 만나면서 나의 사고 영역 또한 넓어졌다. 사고 영역이 넓어지면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책을 읽은 후 일어난 변화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마치 나비 효과처럼 내가 온전한 책임을 가지고 내렸던 그 결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주고 있다. 가장 두려운 선택이 가장 필요한 선택임을 절감한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대만 가기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