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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닐 Jun 09. 2021

무작위의나날 02

내가, 직장인이라니



얼렁뚱땅 신입사원이 된 지 벌써 3달이 돼간다. 그간 새로운 삶을 살아냈기에 매일은 아니어도 꽤나 꾸준히 일기 비슷한 것을 서랍에 적어왔는데 요즘은 통 쓰질 못했다. 아이고 불만스러워라. 


왜 그런가 하면 요즘 나는 정말로 일에 치여 살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하는 건지 일이 나를 굴리는 건지 이제 분간도 안된다. 가장 자주 하는 말이라 함은 개피곤하다, 아이고 어깨야, 죽것다, 다음 주엔 진짜 죽것다, 같은 것들이다. 건축설계 일이 다 그렇겠지마는 특히나 우리 회사는 자주 사람을 넉다운 시킨다. 나는 원체 나만의 시간이나 여유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 야근이 잦을 때나 주말 출근이 이어질 때면 굉장히 심통이 난다. 입이 댓 발 나오는 것이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감정 기복이 심해짐을 느낀다. 회사 사람들은 또 다들 좋고 편해서 같이 놀? 때는 방방 뛰고 얼싸안고? 웃음이 멈추질 않는데 내 계획과 달리 일이 자꾸만 길어지거나 청천벽력 같은 통보 등을 듣고 나면 온 몸 구석구석에서 침울한 기운이 아주 폴폴 풍긴다. 괜찮은 척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상황에도? 나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지 않는다. 별로 내색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기분을 위해 억지로 내 안색을 위장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는 내가 조금 철없는 것일까 생각되기도 한다. 모두가 힘든 건 똑같고 게다가 일개 신입사원인 나보다 과장님들은 훨씬 업무강도도 높고 거의 사무실에서 사는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 이번 주말은 쉬나요 저희 언제까지 바쁜가요 다 같이 롯데월드는 언제 가나요 등 칭얼대는 말을 자주 늘어놓는 내가 좀 웃기다. 물론 신입을 이렇게나 굴리는 회사도 딱히 근사하진 않지만. 


아무튼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그것이 삐죽거리는 말이라 해도 입 안에 묶어두지 못하고 바로바로 내뱉어버리는 것 같다. 물론 듣는 사람에게 어떤 불편한 감정을 전달하거나 불만을 표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그 어떤 의도도 없이 말해버리는 것이다. 회사 사람들도 이젠 내가 그런 애인걸 다 알지만서도 과장님은 아직도 내 눈치를 자주 본다. 과장님을 눈치 보게 만드는 신입사원이라니. 정말 막 나가는 거지. 불쌍한 우리 과장님.. 내가 돌연히 도망이라도 갈까 봐 노심초사한다. 


근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느 순간 도망갈까 봐 걱정되긴 한다. 이 걱정이 드는 이유는 단순히 일이 힘들거나 쉬지 못해서가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인데, 이 일이 도통 재밌고 설레지가 않는 것이다. 과중한 주제에 다급하기까지 한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머리를 감싸고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 그 까닭일 것이다.  하쒸...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같은 마음의 소리가 저절로 뻐렁친다. 그 마음의 소리가 사무실 전체를 관통할 것만 같다. 그것이 내가 요즘 가지는 큰 걱정거리다. 작년에 뭔가에 홀린 듯이 (큰 고민 없이) 준비를 시작했고 운 좋게 국가자격증도 다 손에 쥐었고 정신 차려보니 입사를 해서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2021년 5월의 나. 

이 일련의 과정들이 지금 복기해도 이상하리만큼 일사천리였기에 과연 나의 운명인 것일까, 하고 일에 치여서 좆같은 날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그런 것일까.. 그랬던 것일까..,

의뭉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키보드위에 마치 우리 2팀원들 처럼 널부러진 하리보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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