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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Jun 13. 2020

이성적인 나, 감성적인 나

최근 tvN의 예능 프로그램 <온앤오프>를 눈여겨보고 있다. 말 그대로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연예인들의 ON과 OFF 생활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 포맷이다. 사실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 등처럼 이미 익숙한 프로그램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타인의 온 앤 오프를 보며 느껴지는 것들이 참 많았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따위였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보통 이렇게 생각해왔다. 작사가, 배우, 음악인 등과 같은 예술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업무를 하는 ON 상태에서 '감성적'이어야 한다고. 반대로 말하면 일반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ON 상태에서 '이성적'이어야겠지?


우리는 '나'라는 외형적인 모습 안에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회사에서는 한없이 차갑고 냉철한 결정을 내리는 리더가 퇴근 후 감성적인 영화와 함께 와인을 곁들이거나 여느 아이돌의 열렬한 팬으로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장르의 음악에 심취할 수는 없겠지만 전혀 다른 영역에서 우리는 여러 가면과 내면을 탈부착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나의 온 앤 오프는 어떠할까. 



댄스 음악보다 차분한 멜로디의 발라드나 감성적인 가사를 좋아한다. 지하철 옆자리에서 에어 팟 가격을 물어왔던 생판 모르는 아저씨의 얼굴과 말투에서도 뭉클함을 느껴 일주일을 그 감정 속에서 헤매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모습들은 내가 'OFF'일 때 선호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ON' 일 때 많이 발생했다. 이성적으로 검토하고 판단을 내려야 할 때 'OFF' 성향이 불쑥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혼자 일을 해도 무방한 직업이 아니라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고민해야 하는데 외향적인 성격 뒤에 웅크리고 있던 감성적인 면들이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이런 것들이 주었던 곤란함과 난데없던 갈등은 안 그래도 감성적인 내게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쉽게 상처 받고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온 앤 오프를 오갈 수 있는 절대 버튼이 정작 내게 없었던 아이러니랄까.


폭풍 같던 시간과 감정의 잔해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어느 날, 홀로 바닷가를 찾은 적이 있다. 가는 길에는 업무 고민과 프로젝트 생각으로 'ON'이었는데 도착하고 나니 어느 순간 감성적인 나로 'OFF'되어 있었다. 파도가 잔잔한 바다 위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저 행복했다. 감성적인 나의 모습의 주인이 된 것만 같아 많이도 기뻤다. 내가 나로서 뭔가를 느끼며 살고 있다는 느낌.


우리 모두에게는 'ON'과 'OFF'가 있다. 바쁜 일상 속 내 모습과 타인과 멀어진 상태에서 존재하는 온전한 나. 이 두 가지의 모습을 오갈 수 있는 스위치가 온전히 우리들의 것이기를. 내가 나로서 잘 살아가고 있음을 느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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