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가 또 한 번의 수상 기록을 늘렸다. 벌써 전 세계 영화제 28관왕이라나. 최근, BFI 런던영화제에서는 공식 경쟁 부문 중 하나인 데뷔작 경쟁 부문 후보에 올라 특별상을 수상했다. 독립 영화로는 정말 성공적인 흥행 스코어로 12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했다. 아직도 일부 상영관에서는 영화 <벌새>가 흐르고 있다.
영화 <벌새> : 나는 이 세계가 궁금했다
'1994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 ‘은희’의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라고 말하며 영화 <벌새>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소개한다. 영화가 한참 스크린에 걸려있을 때 이미 관람했지만, 조금 늦은 지금에서야 글을 적는다. 이제라도, 영화 <벌새>를 보게 될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분명, 영화 <벌새>를 뒤늦게 보고 싶은 이들이 많을 것 같기에) 다만, 이전에 적었던 영화 리뷰처럼 줄거리를 요약하기보다는 영화에 등장했던 몇몇 대사를 중심으로 주관적인 생각과 경험, 메시지 등을 다루고자 한다.
#1.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14살 중학생 소녀인 은희를 선배로 깍듯하게 대하며 '저는 언니가 너무 좋아요.'라는 말과 함께 그녀 주위를 맴도는 소녀 '유리'가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중학교 때 한 두 살 정도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시절에는 한 살 많은 선배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 거대하고 꽤 멋져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은희가 좋다며 따라다니는 유리 또한 그러했겠지 싶다. 유리는 선배 은희의 하굣길 어딘가에서 기다리며 선물 공세까지 아낌없이 다가간다. 이 소녀들의 감정에는 조금의 꾸밈이 없다. 그저 '좋은' 사람, 선배, 언니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은희의 세계가 정신없이 흔들리기 시작할 무렵 새 학기에 마주한 유리는 돌연 변심을 하게 된다. '너 나 좋아한다고 했잖아 유리야. 갑자기 왜 이래?'라는 은희의 외침에 유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내뱉는다.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소녀들의 마음이란 이러한 것일까. 유리의 차가운 한 마디에 마치 내 마음이 더 아프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 저번 학기와 이번 학기는 분명 다르지. 선배를 동경하고 따랐던 마음은 지난 학기의 것이고,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된 감정을 설명할 길이 소녀에겐 없어 보였다. 14살 소녀의 세계란 이러한 것이다. 주변의 사람 한 명 한 명이 무엇보다 크게 울리고 갈대처럼 흔들리는 시절. 사람의 마음이란 변할 수도 있고, 언제든지 말없이 떠나갈 수 있음을 깨달은 은희의 세계에는 감당할 수 없는 내면의 폭풍우가 불어오고 있었으리라. 항상 불안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소녀. 곁을 맴도는 작디작은 새의 날갯짓 하나로도 소녀는 몹시도 흔들렸다.
#2. 엄마, 엄마, 엄마...!
영화 <벌새>에 아주 짧고 강렬하게 흘러가는 단 한 컷을 뽑는다면 이 장면이 아닐까 싶다. 집으로 돌아오던 공원의 먼발치에서 은희는 엄마의 뒷모습을 마주한다. 그리고 힘차게 부른다. '엄마!'라는 은희의 외침에 엄마는 답이 없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은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듣고도 모른 척했던 걸까.
지금 쓰고 있는 글에, 이 짧고 묵직한 대사를 넣은 이유는 한 가지다. 누군가를 간절하게 찾고, 부르고, 기다리는 외침이 닿지 않는 공허함. 그것을 영화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공허함만이 가득 차 버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먼 거리감이다. 물리적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당장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나의 마음과 말 한마디가 전해지지 않는 안타까움과 좌절. 다 커버린 어른들만 겪는 감정이 아니라, 14살 사춘기 소녀에게도 충분히 느껴질 수 있는 명징한 감정이다.
#3. 함부로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잖아
은희의 한문 학원 선생님 영지가 했던 말이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다. 퇴근 후 아버지와 감자탕 집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집으로 함께 돌아오는 길이었다. 항상 그 자리에 앉아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동네를 배회하며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는 어르신이 계셨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한쪽 다리와 술에 한껏 취한 듯 풀려 있는 눈동자. 젊은 사람들이 어르신을 보고 표정을 찡그리며 피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나름 오랜만에(?) 집 근처에서 어르신을 마주했던 나는 무심코 아버지에게 말했다. '밤에 저렇게 휘청거리면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불편해할 것 같지 않아요? 항상 취해있으신 것 같은데 이 근처 사시면 가족 분들이 안 계시려나...'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하셨다. '함부로 불쌍하다고, 안쓰럽다고 동정하지 마라. 저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잖아.'
순간 멍했다. 나 또한 사람을 나만의 잣대로 평가하고, 동정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한문 선생님 영지가 14살 은희에게 했던 말. 어쩌면 스크린을 마주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4. 방학이 끝나면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
1994년. 대한민국 사회에는 커다란 사고가 있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 상부 트러스가 무너져 내렸고 이 사고로 17명이 다치고 32명이 사망하여 총 49명의 사상자를 냈던 우리네 사회의 슬픈 기억의 조각이다. 영화 <벌새>의 배경이 되는 1994년은 은희가 14살이 되던 해이다. 성수대교 사고를 접한 은희는 언니가 타고 있을 버스가 성수대교에 있음을 직감했고 급히 달려간다. 다행히 언니는 사고를 피했지만, 한문 선생님이었던 영지의 소식을 마주하게 된다.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언니가 사고를 피한 것은 은희에게 정말 다행인 일이었으나 선생님의 소식은 굉장히 좋지 않은 것이었다. 아주 나쁜 일이었다. 그렇다면 은희는 성수대교 사고를 어떻게 기억할까. 문득 개인적인 일로 한문 학원을 잠시 떠난다며 사라진 영지는 '방학이 끝나면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라는 편지의 한 구절과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 많은 생각이 들었던 편지의 한 줄이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 거대한 변화나 재난 사고가 터져도 그것을 잠시나마 동정할 뿐 마음에 크게 담아내지 않는다. 그것이 몹시도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장 내일 아침 눈을 뜨고 학교로, 회사로 향하는 일상에 조금의 영향도 주지 않기 때문이겠지.
이러한 측면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 거대한 사회에 몸을 담고 있는 개개인이지만 정작 자신의 세계에 닿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무감각한 생각과 감정들로 하루하루를 다시 걸어간다. 그렇다고 이러한 행동과 생각들이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감정 없는 냉혈한이라 할 수 있을까? 방학이 끝나면 모두 이야기해주겠다던 한문 선생님 영지가 사고를 피했다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또 다른 일상을 마주하고 있었겠지. 이렇듯 우리 삶은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원리들로 맞물려 있다.
#5.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결국 영화 <벌새>가 이르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영화에는 은희를 중심으로 한 세계를 아주 보편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별히 멋지거나 특별한 능력의 누군가가 등장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관객의 일상을 아주 자연스레 그려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제와 오늘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만났다면 새로운 사람이었을까. 그 혹은 그녀와 나눈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는 걸 우리는 당장 알지 못했다.
#6.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숨 막히게 14살 소녀의 세계를 짓누르는 압박 속에서도 은희는 세밀하고 빠른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벌새의 의미를 간단히 살펴보면 깔려 있는 의도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벌새'라는 이름은 생김새가 벌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에 있는 꿀을 먹고, 꿀벌보다 훨씬 더 많은 날갯짓을 한다(1초에 19~90번으로 알려져 있다).
방황할 수밖에 없던 사춘기 소녀에게는 부모님이 서로를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싸우지만 다음날 거실 소파에 다정하게 앉아 TV를 보며 웃는 모습은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이자 감정이었다. 자신을 좋아한다던 후배의 변심과 가족의 기대를 짊어진 오빠의 상습적인 폭력, 유일하게 마음을 알아주던 한문 선생님과의 이별 또한 다르지 않다. 14살 소녀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던 무게 속에서도 은희는 벌새처럼 끊임없는 날갯짓을 한다. 자신의 세계에 언젠가는 비추어질 빛을 찾는 시간과 노력들은한 사람의 내면을 온전히 완성해나가는 지난한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또한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통증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사는 게 맞을지, 사는 것은 무엇 일지를 고민하며 은희라는 한 마리 어여쁜 벌새는 눈부신 날갯짓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영화 <벌새>를 통해서 작은 영화관 안에서 1994년의 공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져지는 질문들로 생각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1994년처럼 지금 나의 세계에서도 수많은 것들이 붕괴되고 변화한다. 나 또한 14살 소녀의 마음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거대한 무언가의 흐름을 마주하는 것은 때로 겁이 난다. 그럼에도 슬픈 일과 기쁜 일은 함께 온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게 되어 있고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그로 인해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1994년에 14살이었던 은희는, 지금 39살이 되었겠다.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아마 지금도 벌새처럼 그녀의 세계에서 이전과는 다른 날갯짓을 하고 있겠지.
아 참, 한문 선생님 영지가 은희에게 했던 말이 하나 더 있다.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는 열 손가락을 펴보고 하나씩 내 마음대로 움직여보라고. 내 뜻대로 무엇하나 이루어지지 않아도 이 작고 섬세한 손가락 열개는 천천히,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