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학교 생활과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아이가 사용한 '어휘'에 깜짝 놀랄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 바른 언어 습관이 곧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터라 아이에게 꾸준히 교육을 해왔고 아이 역시 한 번도 실망시킨 일이 없었는데, 어제는 범죄자들에게 쓰는 용어를 친구를 묘사하면서 쓰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표현을 아무렇게 않게 쓰는 건지 너무 놀라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아이를 혼냈습니다.
청소년기 아들을 둔 친구가 몇 해 전, 아이가 방에서 큰 소리로 욕하는 걸 들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이야기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친 언행'의 청소년들이 생각나면서 '아차' 싶더라고요. 집에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지만,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동안에는 내가 모르는 모습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요.
그리고 오늘 아침, 학교 가는 길 차 안에서 관련해 '일장연설'(이라기엔 짧은)을 늘어놓았죠.
물론, 어젯밤 야단을 맞으면서 반론 없이 듣고 있는 아이 태도를 보니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라 그에 대해 길게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고, 무엇보다 제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오늘 아침'으로 미뤄둔 것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야단을 치는 상황은 특히나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오늘 아침, 일장 연설을 할 때도 지킨 규칙들은 있습니다.
1. 비난하지 않아요. 아이를 혼내는 것은 행동의 변화를 위해서이지 비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2. 말할 때 톤에 더욱 신경 씁니다. 평소의 다정하고 따뜻한 어투가 좀 단호하고 냉철한 어투로 변하는 건 분명하지만, 깊이 고민했고 너를 위해 하는 말이라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더 세심하게 신경 씁니다.
3. 마무리를 잘합니다. 혼을 내는 상황, 야단맞는 상황으로 일방적으로 끝내지 않고 반드시 서로 대화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엄마가 어젯밤에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미 알지?
너도 알겠지만 엄마가 언어 습관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잖아. 그래서 네가 어젯밤 그런 표현을 썼을 때 너무 놀랐어. 사춘기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자기들끼리 거칠게 말하고 욕도 하고 그러는 거 엄마도 알고 또 많이 듣기도 했어. 너랑 나랑 그런 상황에 대해서 대화한 적도 많이 있었던 것, 아마 기억할 거야. 내 기억으로 그때 너도 왜 엄마가 그 사람이 쓰는 말이 중요하다고 말하는지 이해했던 걸로 알아. 네가 어제 욕을 한 건 아니지만, 친구 사이에서의 일을 그것도 네 딴에는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려고 했던 상황에서 그런 범죄자에게나 쓸 법한 비유를 하는 건 절대로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표현이었다고 생각해.
어쩌면 너는 그게 그렇게 큰 문제냐고, 친구들끼리 그냥 농담으로 하는 말이라고, 엄마가 너무 예민하다고 불만일 수도 있지만, 생각 없이 사용하는 언어를 한 두 번, 서너 번 계속하다 보면 그런 언어 습관이 자기도 모르게 배이는 거야. 너 엄마나 아빠나 나쁜 말 하는 거 들은 적 있어? 엄마가 항상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말해왔잖아.
청소년기, 사춘기의 뇌가 확장 공사 중이고 리모델링 중이고 그래서 우리가 알던 아이들의 모습과 다를 때가 많다는 거 엄마도 잘 알아. 하지만 '사춘기니까 저런 언어를 쓰는 것도 이해해 주자', 엄마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 혼란스러운 것과 잘못 공사를 해서 엉망진창이 되는 것은 너무 다른 문제니까. 엄마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 아들이 그런 사람으로 자라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어.
그래, 친구들끼리 있을 때는 부모랑 같이 있을 때 하고 다른 모습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엄마는 네가 최소한 네 스스로 생각하는 너라는 사람의 가치관과 기준을 지켰으면 좋겠어. 어쩌면 네 친구들이 그런 너를 보면서 '야, 쟤 뭐냐?' 라거나 '범생이 같다'라고 놀릴 수도 있지만, 엄마는 그런 놀림을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해. 그 친구들도 속으론 아마 '아, 쟤는 우리가 어떻게 해도 자기중심이 확실한 친구구나' 하고 오히려 리스펙 하는 마음도 들걸? 네 친구들 겉으론 장난 많이 치지만 다들 괜찮은 아이들이잖아. 너의 태도를 존중하는 마음을 분명히 갖고 있을 거야.
어떤 엄마들은 공부만 잘하면 나머진 다 괜찮아, 이해할 수 있어,라고 말하기도 한다지만 엄마는 아냐. 학생 시절에 공부는 너무 중요하지만, 극단적으로 공부와 인성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엄마는 후자야.
엄마가 왜 너랑 토론하고 대화하고 이거 한번 생각해 봐, 하면서 끊임없이 너한테 뉴스나 책 내용 같은 거 공유해 준다고 생각해? 너 똑똑해지라고? 배경 지식 많이 쌓으라고? 많이 알면 있어 보이니까? 아니, 절대 아냐. 나는 네가 세상에 관심을 갖고 따뜻한 마음과 시선을 갖춘 사람, 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너 3학년 때 MK라는 친구 기억나지? 그때 엄마가 학교에 선생님이랑 상담하러 갔을 때, 담임 선생님이 엄마한테 물어봤잖아. 네가 왜 MK랑 친하게 지내냐고 선생님도 이해 못 했지. 그 친구는 학교에서 제일 말썽을 부리는, 모두가 좋아하지 않는 태도를 갖고 있는 아이였으니까. 그때 네가 엄마한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 네가 그 친구를 한 번 바꿔보고 싶다고 했었지? 그리고 실제로 그 친구는 3학년 말이 됐을 때 반에서 '성실한 친구'로 변해 있었고. 그때 엄마랑 아빠랑 네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 아 우리 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아이구나, 누구랑 같이 있어도 믿어도 되겠다. 하고 말이지. 너 그때 진짜 멋있었어.
우리 아들은 여전히 엄마한테 너무 멋진 아들이고, 다정하고, 엄마가 배우는 것도 많고, 별로 걱정할 것 없이 엄마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거 너무 고맙게 생각해. 앞으로도 계속, 부탁해도 되지?
아,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은데, 엄마도 항상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바른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할 거고 자신 있어. 오늘 너한테 이런 말 할 수 있는 것도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야.
이렇게 말하는 엄마가 너무 예민하거나 엄격하다고 생각하니?"
아이는 "엄마가 엄격한 때도 있지만 지금 한 말에 대해선 엄격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밤 이미 잠들기 전에 자신이 잘못 말했다는 것을 알고 반성했다고도 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인데 생각해 보니 하면 안 되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고 말이죠.
고마웠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다시 엄마가 '일장연설'을 하는데도 짜증을 내거나 그만하라고 하거나 건성으로 듣지 않고 새겨 들어준 것도,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해 준 것도 말입니다.
사춘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없으리란 법은 없겠죠.
하지만 우리는 그간의 대화 내공을 통해 서로 진지하게 말하는 법, 경청하는 법,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조율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일이 벌어져도 다시 깊은 대화로 풀어가게 될 겁니다.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일장연설 할 일이 많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 역시 아이의 사춘기는 엄마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성장하게 하네요. 전 어디까지 성장하게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