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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Nov 11. 2022

나를 표현하면 생기는 일

비폭력대화- 부탁할 때는 자신의 마음(느낌, 마음)도 함께 표현하기



"네가 마무리해라."

오늘 점심때 일이다. 나와 엄마는 커다란 양푼이 그릇에 비빔밥을 슥슥 비벼 맛있게 나눠 먹다가 '조금 양이 많은데...'싶은 찰나, 오여사가 내게 던진 한 마디였다. 사실 도무지 못 먹을 정도의 양도 아니고 몇 숟가락 더 먹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었지만, 갑자기 숟가락을 놓고 싶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오여사의 강요하는 듯한 말투가 귀에 거슬렸다. 엄마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같은 방식일 테니, 분명 내가 변한 것일 게다. 나는 오늘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잘난 척'하는 딸이 되었다.

"엄마,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한 숟가락도 더 먹고 싶지가 않아."

"마저 먹으면 음식쓰레기도 안 나오고 좋으니까 그렇지! 싫음 내가 먹음 되지!"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더 배불러서 더 먹기 싫은 상태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본인이 다 정한 듯 말해버리니까 오히려 반감이 생긴다는 소리야. 다 먹을 수 있냐고 먼저 물어보면 달랐을걸?"

"피곤하게 어떻게 다 그런 식으로 말하노~ 지금까지 이렇게 말하고 살았는데!"



결국 남은 비빔밥은 오여사가 처리했다. 늘 그렇듯 남겨진 음식은 오여사의 위로 들어갔다. 그러면 꼭 하는 말. "아, 그걸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배가 너무 부르다." 후회를 내뱉는 것 까지가 한 끼 식사의 마지막 코스다. 나는 또 그 소리냐는 한 마디를 목구멍까지 솟구쳐 오르는 걸 꿀꺽 삼켰다.



"나 목욕 갔다 올 동안 여기 정리 좀 해라."

"안 그래도 할 예정이야~ 오늘 창고 정리도 한 곳 해야 하고."

나는 식사를 마치고 요즘 즐겨보는 넷플 드라마 <이제 서른> 한 편만 보고 나서 정리를 할 참이었다. 엄마는 사우나 가방을 손에 들고 TV 앞에 앉은 나에게 다시 와서 말했다.

"내가 갔다 오면 정리가 다 돼 있도록 하라고~ 또 드라마 본다고 주야장천 소파에 앉아있지 말고~!"

나는 한순간 '주야장천 소파에 앉아있는 딸'로 만들어버린 엄마의 말 한마디에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비폭력대화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 아닌가.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셨다. 깊~게. 그리고 길게 내뱉기.



후우................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은 우리 느낌의 자극이 될 수는 있어도, 원인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은 충족되지 않은 자기 욕구의 비극적인 표현이다.'

-마셜-



지난주에 표시해둔 글귀를 떠올리며 나는 현관으로 걸어가는 오여사를 붙잡고 물었다.

"엄마, 혹시 사우나 다녀와서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거야?"

"... 갔다 와서 너랑 동네 한 바퀴 걸을까 했지. 집을 미리 치워놔야 바로 나갈 수 있잖아."

오여사의 마음속 바람은 사우나 후 딸과 산책을 나가는 것이었다. 진작 그런 욕구를 이야기해줬으면 내가 원하는 만큼 TV를 보는 것 대신 엄마와 함께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더 일찍 정리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오여사 자신의 마음 표현은 건너뛴 채 나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했으니, 나로서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던 것.



"아~ 엄마가 사우나 다녀와서 바로 나가고 싶었던 거구나! 진작 그렇게 이야기하면 엄마 말이 더 잘 들렸을 거야."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니?"

"당연하지~ 말 안 하면 어떻게 알아? 비폭력대화가 제일 싫어하는 광고 카피가 있다면 아마 그걸껄? 그 뭐더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나는 엄마를 놀리듯 오래전 광고 카피를 흥얼거렸다. 그러자 좀 전의 무거웠던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신발을 신고 나서려는 오여사에게 말했다.

"엄마, 있다가 사우나하고 와서 하고 싶은 거 있나요~?"

"방금 말했잖아~"

"다시 듣고 싶어~ 얘기해봐요~~"

오여사는 잠시 머뭇거렸다. 어이가 없다는 것인지 내가 피곤하다는 의미인지 알쏭달쏭한 눈빛을 내게 쏘았다.

흐흐~ 씨익.

나는 싱긋 웃었다.

"진아~, 엄마가 사우가 갔다 와서 너랑 같이 데이트 나가고 싶어~ 그러니까 미리 집 정리 좀 해 줄 수 있을까?"


엄마는 대본을 읽듯이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역시 미워할 수 없는 내 사랑, 귀여운 오 여사다.

"응 엄마! 지금 TV 끄고 당장 할게!"

현관문이 열렸다 닫혔다. 나는 유튜브에서 '청소할 때 듣는 음악'을 검색하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가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정리를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타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 - 캐서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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