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 내가 프랑스 유학을 가게 된 이유
29살, 난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우리나라에서 29살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나이다. 특히 여자에겐 더더욱 그렇다.
물론, 내 삶에서 결혼, 출산, 육아를 없앤다면 29살은 큰 의미가 없는 숫자이겠지만,
이 3가지 키워드를 떠올리는 순간, 29살이란 나이가 내 인생 전체를 억누르는 느낌이 들어 숨이 막혔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였다. 29살이란 나이가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만 같았다.
30대를 워킹맘으로 살 것이냐, 골드미스로 살 것이냐.
아직 펼치지 못한 내 꿈은 영원히 접어둔 채 1-2년 뒤면 주변 여자 선배들처럼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고,
가정-커리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워킹맘으로 힘겹게 살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당시 나의 인생 최우선 가치는 오로지 '커리어 하이' 였고, 워킹맘 롤모델도 없었기 때문에 눈 앞이 정말 캄캄했다.
29살, 당시에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30대를 만족스럽게 살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마지막 기회인거 같은데 직무전환을 할까?
박사학위를 취득해 볼까?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할까?
어차피 할 거 지금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그런데, 어쩌면 '유학'을 갈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이지 않을까?
그로부터 약 1년 후, 30살이 되던 해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개인적으로 "30살인데, 34살인데 유학가도 괜찮을까요?"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농담처럼 답한다. "그럼요, 괜찮죠. 30대에 못 하는 건 아동복 모델 밖에 없어요."
친구들에게 유학을 가겠다고 말한 날의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나: "나 얼마 전에 퇴사했어. 이제부터 유학 준비하려고. 내년에 떠날거야."
친구들: "석사도 했으면서 무슨 공부를 또 해? 공부 안 지겨워? 이제 그만해도 되잖아 쫌 놀아!"
나: "니들이 좋은 차 사는 돈으로 나는 유학가는 거야. 똑같아. 그냥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줘."
친구들: "차라리 외제차를 사!!"
저마다 인생의 가치와 우선순위가 다르다.
당시의 난 친구들처럼 '안정적인 삶'이나 '행복'이 인생의 최우선 가치는 아니었다.
친구들이 보기엔 나는 어쩌면 굉장히 무모해 보였을지 모른다. 당시의 난 좋은 직장도 있었고,
결혼해도 좋을 것 같은 오래 만난 남자친구도 있었다. 맞다, 한국에서의 삶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 갈 것만 같았기에 떠났을 뿐이다.
단칼에 결심이 서지는 않았다. 사실 몇 개월 가량, 매일 밤 고민했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계속해서 생성해 냈다.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1. 주변에 많은 이들이 만류한다.
2. 30대 초반에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전공으로 커리어를 다시 시작하는게 어려울지도 모른다.
3. 지금 남자친구와 헤어질 확률이 매우 크다.
4. 유학준비를 하려면 최소 6개월-1년 기간이 추가로 소요된다.
5. 단기간에 영어실력을 향상시켜야 하는 일은 돈도 많이 들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6.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못 할 수도 있고, 유학에 실패하여 중간에 돌아올 수도 있다.
7. 30대 초반에 한국에 돌아와 유학비용으로 쓴 돈을 메꾸고, 다시 사회적, 경제적 안정을 이뤄 결혼할 여건을 마련할 때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될 지 모른다.
8. 30대 중-후반에 결혼하게 되면 자연임신이 어려울 수도 있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생각하니, 나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이렇게 늦게 유학을 꼭 가야만 하는 것인지.
너무 도전적인 일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꼭 가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말하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가야하는 이유는 가지 말아야하는 이유들처럼 논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았으니깐. 내 오래된 꿈이니깐. 더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은 대부분 그럴듯한 진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열망' 같은거다.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어서 해야 하는 일.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개였지만, 가야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지금 삶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충분히 좋은 편에 속한다. 이렇게 안락한 삶에 안주해서 살다보면,
1-2년 뒤쯤 난 지금의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아이 하나 낳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가 거실에서 평화롭게 노는 모습을 보며, 문득 노을이 지는 하늘을 베란다 창 너머로 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를 보며, 엄마의 인생이 조금은 후회스럽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단 하나의 이유가 수없이 많은 이유를 내 머릿속에서 단숨에 몰아냈다. 몇 일 뒤, 퇴사를 하고 강남 아이엘츠 학원에 무작정 등록을 했다. 전공 특성상 공인영어 점수도 취업시 특별히 필요하지 않아, 제대로 영어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수능 이후 처음이였다. 당시 코로나가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마스크 품귀현상이 일었다. 해외여행도 금지되기 시작했다. 유학을 미루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솔직히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었고, 지금 흐지부지 된다면 또 이렇게 용기를 낼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계획대로 공인영어 점수를 만들고, 서류접수를 하고, 에세이를 썼다.
유학을 떠나던 날, 공항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텅 빈 인천국제공항. 한 손에는 큰 캐리어를 들고, 한 손에는 마스크를 잔뜩 넣은 가방을 들었다. 당시엔 국내에서 구매한 마스크는 해외로 가져갈 때 갯수 제한이 있었고, 한 사무실에서 공항직원과 함께 마스크 갯수를 세아렸다. 한국에서 이룬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떠난 유학길이였고, 무섭고 불안한 마음에 코로나까지 더해져 매우 심란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비행기 안에서 계속 생각했다.
'아, 그냥 차를 살걸. 친구들 말대로 좋은 차나 한대 살걸. 내가 왜 유학을 간다고 했지?
비싼 돈 들여서 왜 이런 위험한 선택을 해야하는 걸까?'
경유지에 도착해서, 마침내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생각이 바뀌었다. 그 때부터 불안함에 뛰던 심장이 묘한 설레임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맞아. 난 한번도 '안전한 길'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적은 없었어.
20대에 이룬 대부분의 성과들도 다 '울퉁불퉁한 길'을 건너서 얻어낸 거잖아.
유학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좋았던 날보다 울었던 날, 좌절했던 날이 사실은 더 많았다.
하지만, 20대 시절 울퉁불퉁한 길을 통해 단련한 내공으로 온갖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30대의 도전은 20대의 도전과는 달리 주변의 응원도 적고, 실패 리스크도 크고, 단점들이 훨씬 많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큰 장점 하나가 있다.
'20대때 쌓은 실패의 경험, 작은 성공의 기억'. 그것들이 당신의 도전을 지켜줄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