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 것 없는 '진짜 나' 마주하기
모범생, 일잘러.
나는 학창시절 내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모범생이었고,
20대 시절에는 소위 말하는 일잘러로 살았다. '일'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잘' 하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불현듯 가끔, 나는 거품이 껴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다. 눈에 보이는 스펙과 성과는 좋았지만,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던 때도 많았고, 하기 싫은 일은 대충하기도 했었으니깐.
그래서인지도 오랜 꿈이라는 핑계로 유학을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걷힐 거품이 두려워 조금 더 공부하고,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쌓아야 했기에.
유학을 가기 위해 아이엘츠(IELTS) 시험을 준비했다. 당시 강남에서 회화학원과 아이엘츠 시험 종합반에 등록해서 다녔었는데, 주변 사람들보다 영어를 잘 하는 편에 속했다. 실제로 단기간에 꽤 좋은 점수를 받고 원하던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매일 밤 자기 전 영어로 공부하고, 일 하는 '멋진 나'를 상상했다.
당시 코로나가 한창 유행했던 시기라 한국에서 줌(Zoom)으로 OT 수업이 진행되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현실 속 '영어'는 전쟁터 같았다. 제대로 한 문장이나 들었을까? 정신은 아득해 지고, 손발은 차가워졌다. 옅은 미소만 지었고, 메모장에 적어놓은 몇가지 문장으로 겨우 자기소개를 마쳤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큰일났다. 나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조금 흘러 학교에서 수업을 위해 파리로 오라는 공지가 내려왔고, 기숙사에도 들어가기로 했던 터라 큰 캐리어 하나를 덜렁 들고,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두번째 온 파리. '예쁘기는 드럽게 예쁜 파리'. 내게는 애증의 도시이다. 파리에서 유학하고 있는 다수의 친구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 애증의 파리. 두 말 할 것도 없이 여자들이 좋아하는 감성을 듬뿍 담은 예쁜 도시이긴 하지만, 느려터진 행정처리, 소매치기, 더럽고 좁은 거리 등등 단점도 많은 도시가 파리이다. 나에게 이제는 '애(愛)'만 남아 그립기 그지 없는 도시가 되었지만 말이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하루종일 듣고, 말하고, 써야 했다. 친한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편하게 대화할 때,
모바일 메신저로 대화할 때, 덜 친한 동기들끼리 대화할 때, 동아리에서 공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대화할 때 쓰는 영어가 조금씩 다 달랐다. 글도 마찬가지였다. 회의록 작성에서 쓰는 영어, SNS 업로드용 영어, 학교 과제 제출용 에세이에 쓰는 영어가 다 달랐다. 영어를 잘 하려고 일부러 나를 극한 환경에 내몰았다. 수업과 과제를 마치면 새벽 2시까지 영어 공부를 했다. 외국에 나오면 영어가 저절로 늘 줄 알았는데, 그건 누가 지어낸 드라마인지 모르겠다. 처음 거의 1년 동안은 한국인 동기, 선배들과도 거리를 유지하고, 한인 모임에도 절대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 컨텐츠도 금요일날 밤에만 잠깐 볼 정도였다. 대신 동기들과 파티할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참석했다. 못 알아듣고, 말도 못 하겠어서 6시간 동안 리액션만 하고 온 적도 있다.
유학을 시작한지 1년이 다 되어갈 무렵이 되니, 여러모로 영어로 공부하고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 졌다. 술자리에서 더 이상 바보처럼 웃다가 오는 게 아니라, '대화'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의견을 말하는 일도 곧잘 있었고, 팀 과제할 때도 내 의견을 잘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영어가 많이 늘긴 했지만, 내 영어의 수준만큼만 인풋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아웃풋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영어' 탓을 했다. 그리고 영어 실력이 늘면 자연히 인풋과 아웃풋도 향상될 것이라 믿었다. 시간이 더 흘렀고, 두 번의 인턴쉽을 통해 실제 기관에서 프로들과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 내가 깨달은 사실은, 문제는 '영어'가 아닌 '나'였다.
그곳의 프로들은 나에게 '인사이트'를 원했다. 특정 주제나 프로젝트에 대한 '나만의 인사이트'.
맨 처음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 어버버 했다. 여전히 영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세계 각국 대표들이 참석하는 컨퍼런스 진행을 돕는 일을 맡았을 때, 영어를 못 해도 '내가 알고 있는 바가 명확하다'면 잘 표현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대표들이 많았는데, 회의록을 작성하면서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보니, '전문가의 인사이트'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분명 영어를 못 하는 거 같았는데, 토론이 되고, 그들의 말이 보고서에 실렸다. 비록 언변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다 들어있었다. 나의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돌이켜 보니, 모국어를 잘 했기 때문에 그동안 아는 지식이나 전문성에 비해 보고서가 잘 나왔고, 일을 잘 해 보였던 건 아닐까 싶었다.
아, 내가 그동안 막연히 걱정해 왔던 내 안의 '거품'이 진짜 있었던 거였구나.
'모국어'라는 안전장치가 사라지니 거품이 모두 걷히고, 이제서야 나의 '밑천'이 드러났구나.
이제 내가 가진게 사실은 큰 바위가 아니라 작은 조약돌이었음을 가릴 거대한 포장지가 사라졌구나.
그동안은 '영어를 잘 해서 내 능력을 제대로 보여줘야지'라는 억울함이 독기로 변해 이를 악물고 '영어공부'만 열심히 했다면, 이를 깨닫고 난 뒤에는 나의 '진짜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근무 시간은 워라밸이였지만, 잠 자는 시간 그리고 주말까지 모두 반납한 채 일에 몰두했다. 모국어로 일할 때보다 몇 십배는 더 열심히 일 해 야지만 '보통 직원(1인분의 몫을 하는 직원)'인 척이라도 할 수 있었으니깐.
거품이 다 걷힌 채 맨 몸의 나를 마주보고,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난 과거의 성공, 성과, 노력을 다 부정 당하는 기분이었으니깐.
그렇지만 '거품'을 모른척 내버려 둔다해도 언젠가는 저절로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나처럼 어느 날, 거품이 걷히는 계기를 만난다면, '인정'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다. 바닥이 여실히 드러난 내 밑천을 확인하고, 거품 없는 '진짜 나'를 부단히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잘 키워진 진짜의 '나'는 영어든, AI든, 이 세상 어떤 허들이 온다 할 지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