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외국인 빌런들과 싸우다,
내가 빌런이 되다

유럽에도 존재하는 또라이 총량 불변의 법칙

by 베러미 BetterME

또라이 혹은 빌런, 한국에서도 만날 만큼 만났다고 생각했다.

노예처럼 살았던 국내 풀타임 석사를 마치고, '커리어 우먼이 된 나'를 상상하며 들어간 첫 직장에서

처음 만난 빌런은 Lv.1이 아닌 끝판왕이었다. 매일매일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참다못해 같은 팀 선배에게

물었다. "제가 사회생활이 처음이라 그런데, 원래 직장이 이런가요?"


그녀가 답했다.
"너 그거 아직 모르는 구나. 또라이 총량 불변의 법칙. 이런 또라이들은 어딜가나 있어."

첫 판부터 끝판왕을 만난 나를 그 이후로 조금 마음을 놓았는데, 그 이후에도 줄줄이 새로운 종류의 빌런들이

끊임없이 내 삶에 공급되었다. 수많은 빌런들과의 사투 끝에 난 이제 빌런을 상대할 나의 내공이 상당하다고 믿었다.



# 인종차별 빌런

코로나의 여파로 파리에 도착하고도 학교에 갈 수 있는 날보다 갈 수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줌(zoom)으로 하는 수업이 많았다. 유학 초기에는 각국에서 온 외국인 동기들과 '영어'로 대화하는게 너무 긴장되고 다양한 발음들을 알아듣는데 꽤 애를 먹었다. 비대면으로 하는 '영어'는 더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래서, 줌으로 수업하는 날은 동기들과 그룹토론 시간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거나 웃음으로 떼우는 날이 많았고, 이는 나의 약점으로 작용했다. 미국이나 유럽 문화에선 '나'와 '나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으면 '무시'되기 쉽상이다. 당시의 나의 모습은 외국인 빌런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한 미국인 여자애가 내가 말할 때마다 웃으며, 내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말했다.

처음엔 내 발음 문제인가 싶어 다시 교정해 말해 주기도 했고, 다른 단어나 문장으로 바꿔 말해보기도 했다.

여전히 같은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인종차별'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유럽 배낭여행 때 '어린 학생들'이 눈을 찢으며 "칭챙총" 거리는 장난 수준의 인종차별 이후,

처음 당해보는 고급스킬의 '인종차별'에 나는 적잖히 당황했다. 보다 못한 캐나다인 동기가 내 입장이 곤란

하지 않게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줌미팅을 종료시키는 버튼을 마치 도망치듯 누르고,

서럽게 눈물을 토해냈다. 상황을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인종차별 빌런보단 뭘로 보나 훨씬 나은 사람인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싶었다.

나는 석사학위도 이미 있었고, 전공 관련 경험도 그녀보다 훨씬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잘난' 건

영어를 잘 한다는 것 밖에 없어보였다. 심지어, 제2외국어도 아니고 모국어를 잘 하는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우리 과 수업은 '조별과제'가 많았는데, 난 졸업 내내 그 친구와 같은 조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엔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 친구가 있는 날은 혹여나 책을 잡힐까 미리 오늘 말할

만한 내용을 영어로 써놓고 준비하거나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게 했다. 그리고, 한국에 있을 때보다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했고, 동기들과 소셜 네트워킹이 있는 날이나 파티가 있는 날은 무조건 참석했다. 어느 순간이 되니 영어의 자신감이 좀 붙고, 친구들과 편하게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그때부턴 조별과제 시간엔 '나'를 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남은 파트를 하는 대신 내가 맡고 싶은 파트에 대해 강력하게 말하고,

반대의견도 세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티에 많이 참석하면서 나의 무리가 생기고, 친한 동기들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그녀가 나를 무시하는 일은 사라졌다.


양육강식.
잡아먹히기 싫다면, 잡아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 무임승차 빌런

동기 중에서 가장 친한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너무 나이스해.
좀 더 나쁜년처럼 굴 필요가 있어.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그냥 무심히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체감할 수 있었다.


MD 출신의 아랍 남자애가 개인사정으로 학기 중간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친구에 대해 파악이 전혀 안된 채로 그와 조별과제를 하게 되었다. 나와 그를 포함하여 총 4명이 한 조가 되었다.

당시 조별과제는 짧은 시간 내에 꽤 많은 분량을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해야 해서, 리서치할 시간도 부족했고, 이를 토론하고 정리할 시간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리서치할 파트와 작성할 보고서 파트도

개별로 분배하여 시간을 아끼고자 하였다. 보고서 마감 하루 이틀 전 날 우리는 리서치한 내용을 파일로

정리하여 업로드 하기로 약속했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리서치 파일을 공유했다. 새벽에 올릴려나? 싶어

불안한 마음을 외면한채 침대에 누웠다. 그 때, 그에게서 개인 메세지가 왔다.


"혹시 나를 좀 도와줄 수 있어?"

"무슨 일인데?"

"내가 머리가 좀 아파. 그래서 과제를 못 했어."

"머리가 아파서 과제를 못 했다고? 그러면 우리 단톡방에 얘기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를 해야지.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네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니, 내가 왜? 네가 약속을 안 지킨 거니깐 단톡방에 이 내용을 공유하고, 되는 데까진 네 파트 조사해서

최대한 빨리 공유해줘"

"알겠어"


그는 미안하다는 말 조차 없었다. 그리고 우리 조 단톡방에는 몇 시간이 흘렀는데도 단 한마디가 없었다.

나는 나머지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공유했고, 그들에게도 그의 연락이 왔었는지 물었다.

없었다고 한다. 화가 솟구쳤다. 왜 하필 '나'에게만 도와달라고 한 거지?

나는 잘 웃고, 친절하게 말하는 아시안 여자애라서?


언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아임 파인 땡큐, 앤유?"로 영어를 시작해서 그런가. 긍정문만 죽어라 배워서 그런 탓일까. 한국말을 할 때의 난 '찔러도 피 한방울 날 것 같지 않다'는 말도 많이 들었던 사람인데, '영어'로 말하면 나이스한 사람, 아니 혹자는 만만하게 보는 사람이 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날 이후로 난, 영어 '부정문'과 '의문문'을 죽어라 연습했다.

무임승차 빌런같은 애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강강약약.
모두에게 '나이스'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02. 거품이 걷히고, 내 밑천이 드러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