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타인에게 손을 내밀었던 시간에 대한 기록
나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빚진 것 같은 느낌이 싫었다.
남을 돕는 것에도 인색했다. 타인과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가 되는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관여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키지 않을 때에도 그들과 얽혀야 하는게 불편했다. 나는 안전거리가 필요한데 말이지.
한국에서는 굳이 남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었다. 나 혼자서도 잘 해냈으니깐.
낯선 외국땅에선? 도움없이 생존하기란 어림도 없었다. 처음엔 미처 몰랐다.
영어가 서툰 나를 알아본 몇몇 외국인 친구들이 고맙게도 선뜻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거의 한 학기 동안은 '괜찮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익숙치 않았고, 한국 교육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경쟁형 인재였던 내가 개인과제에 도움을 준다는 이들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랬던 내가, 먼저 동기들에게 "도와줘"라고 말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낯선 외국땅에선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의 수준만큼 내 역량이 결정된다.
내가 다니던 프랑스 학교의 수업은 모두 영어로 진행되었고, 우리 학교의 학생 선발 기준이 '다양성'이었던
만큼 동기들은 다양한 백그라운드와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교수님들도 제2외국어로 '영어'를 쓰시는 분들이 다수였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영어 발음이 존재했다.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쓰시는 교수님이 한 분 계셨다.
과목 자체도 어려웠고, 프랑스어 악센트가 강하게 녹아있는 교수님의 영어 발음도 내게는 너무 낯설어서
아무리 집중해서 들어봐도 수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오기가 나서 그 과목을 밤마다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쪽지 시험이 있었다. 과목 점수에도 반영이 되는 나름 중요한 시험이었다. 친한 동기들이 공부를 안 했다며 걱정했다. 속으로 난 자신이 있었다. 전 날밤 정리한 노트를 보며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그런데 시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니 동기들의 표정이 밝았다.
나: "니네 오늘 퀴즈 몇 점 받았어?
동기들: "우리 오늘 다 맞았어. 쉽게 나왔던데?"
나: "첫번째 문제, 교수님이 지난번에 이렇게 설명했으니까 답은 1번 아니야?"
동기 A: "아니야, 너 반대로 이해한 거 같아"
공부를 안 해서 틀린 것도 아니고, 이론을 순간 착각해서 실수를 한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수업을 '반대'로
이해해서 틀렸다니... 내 자신이 너무나 바보같이 느껴졌고, 억울한 감정이 왈칵 올라왔다. 입술을 꾹 깨물고, 동기에게 내가 정말로 틀리게 이해한게 맞는지 다시 물었다. 수업자료와 내가 정리한 노트를 보며 동기 A의 설명을 들으니 내가 왜 쪽지 시험 문제들을 죄다 틀렸는지 알 수 있었다. 교수님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한 게 별로 없었다. 교수님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수업자료를 보며 노트를 다시 정리할 때도 오류가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어 리스닝이 잘 안 되었던 나는 읽고, 쓰는 과제는 혼자서도 곧잘 해냈지만, 구두로 전달되는 수업의 공지사항이나 과제를 잘 못 알아듣거나 놓치기 일쑤였다. 노력해도 안 되는게 있었다. 또, 노력한다고 해서 제한된 시간 내에 원하는 만큼 잘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인정해야 했다. 나에게 도움이 필요함을. 자존심이 강했던 나에겐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영어만 잘했어도.. 하는 울컥한 마음에 이따금 눈시울이 붉어지고, 부끄러운 마음이 불쑥 올라오기도 했다. 또, 자꾸만 동기들을 귀찮게 하는 것 같아 나 스스로가 짐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에고(Ego)를 겨우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된 후에는 오히려 동기들과의 관계가 좋아졌다. 염치 불구하고, 모르겠으면 동기들에게 손을 먼저 내밀었다.
"도저히 모르겠어. 나 과제 좀 도와줘"
"이번 에세이 주제 이렇게 이해 했는데, 맞아?"
"이번주 주말에 과제 같이 하자!"
물어볼 게 많이 생기다 보니 동기들에게 전보다 자주 연락하게 되었고, '도움'을 빌미로 공원에서,
기숙사에서, 카페에서 1:1로도, 그룹으로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하나. 나는 내가 굉장히 '오픈마인드'인 사람인 줄 알았고, 나이가 훨씬 어린 동기들에게도 편하게 대할 수 있게 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혹은 혼자 해 내고 싶어서 거절했던 그들의 '도움'은,
단순한 '호의'가 아닌, '우리 친해지자!' 였던 것이다. 오히려 민폐를 무릎쓰고 '도와줘'라고 말하니, 내가 벽을 친다고 느끼던 친구들도 나를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쯤 친해진 한 친구와 공원에서 와인을 마시며 늦은 오후를 함께 보내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녀가 불쑥 내게 한 말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처음엔 너와 친구가 되는게 진입장벽이 높다고 생각했어.
나는 너와 친해지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너는 틈을 절대 안 내어주더라고.
이제서야 네가 마음의 문을 연 거 같아 기뻐.
프랑스의 교육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협력해서 우리 모두 다 같이 잘 해내면 점수를 잘 받는 것이다. 동기 중 대부분은 이런 교육 환경에 익숙한 친구들이었다. 또, 나처럼 남에게 도움을 주고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세상엔 남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 자체에 보람을 느끼는 이도
많았다. 오히려 도움을 거부하는 게 자신을 거부하는 것으로 느끼는 친구도 있었다. '상대평가'에 찌든 나에겐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 생경했고, 망치에 얻어 맞은 것처럼 머리를 얼얼하게 했다.
나처럼 겉껍질이 단단한 사람도,
살아가다 보면 '겉껍질이 벗겨진 채 연약해진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땐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도와줘"라고 말해도 된다. 이건 '나약함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기꺼이 '연대'하는 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서로의 연약함을 감싸 안아주자고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누군가 따뜻한 손을 내민다면 잡아보기도 하고, 가끔은 기꺼이 손을 먼저 내밀어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