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날짜를 보니 2018년 3월 16일,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오는 사무실 밖 풍경. 밖을 나오는 순간, 석양은 예뻤지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고, 그리고 나는 갈 곳이 이미 정해졌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직장을 그만두면서 생각했다. 정말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
엄마 퇴근할 때까지 집안일 도우겠다고, 같이 저녁 먹겠다고 늦게 와도 된다던 아이들의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목을 메이게 했다. "알았어 엄마 금방 마무리하고 갈게.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는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나머지 업무를 진행했다. 그렇게 마무리하고 퇴근한 후 아이들을 만나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속이 편안해졌다. 이제 울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아이들과 자리 잡은 이곳은 서울이 아니니까, 그래 이 쪽은 내가 경험이 없으니까, '이 정도 월급이면 우리 세 식구 충분해'라고 생각했다. 또한 고정적으로 매월 안정적 수입이 보장되는 것이고, 4대 보험도 되니까 이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현실의 직장은 전쟁터였고, 내가 받은 급여엔 시간당 쳐내야 할 업무량과 인간에 대한 무례도 들어 있었다. 직원들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대표라는 사람은 "OO대리가 월급을 받잖아. 그럼 그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매출이 3천만 원 이상은 나와야 한다는 거지! 도대체 뭐가 어려운 거야? "
나는 대답했다. 복잡하다고 그리고 처음 업무 지시했던 내용과 달리 업무가 과중되고 있다고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 " 일러스트, 포토샵 좀 한다며 그 일 다하고 누끼 따고 업무 협조까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 아~ 내가 그랬구나. 내가 디자인을 좀 해봤다고 면접 때 이야길 했구나. 그때 알았다. 나의 이야기 중에 필요한 부분을 들었구나.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문제는 한 달이 지나도록 기존 직원이 하던 일의 업무량을 쳐내고 있지 못한 나의 귀책사유가 분명했다.
그리고 내가 한 가지 더 간과한 것. 어떤 회사든 오픈 멤버를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 작은 회사일 수록 더 그랬다. 회사를 처음 같이 시작했다는 사실은 동지애를 넘어섰으며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우리는 견뎌냈어 라는 그 끈끈한 무엇을 나는 간과했다. 모든 자리에서 오고 갔던 이야기들. 점심시간 혹은 근무하면서 질문했던 내용 하나하나. 비밀이 없이 공유가 되고 있었다. 누가 어디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서로 모르는 척했지만, 그 시절 네이트 온으로 말이 말을 전하고 있었다. 선임자에게 이 일과 나는 맞지 않은 거 같아요. 고민이 되네요.라는 말은 1시간도 되지 않아 10명도 안 되는 그 작은 회사의 전 직원이 알게 되었다. 젠장할. 나의 고민은 그저 그들에게 가십거리였고, 일 못하는 사람의 투정이었을 뿐.
이직을 결심하기까지 그 몇 개월이 매일이 부담스럽고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더욱 황당했던 건, 유류비가 지원이 안되는데 조금 떨어진 물류창고를 자차로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것. 하루에도 두세 번씩 왔다 갔다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했고 왜 이러고 있나 싶기까지. 한 번 어떤 일을 시작하면 쉽게 그만두지 않은 성격이기에 그래 내가 잘못한 게 있을 수 있지.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을 거야.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은 줄지 않았으며 수습기간이라고 본 급여의 80% 지급하는 상황에서 나는 한계에 봉착했다.
고민이 된다는 것,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 움직이는 발걸음 모두가 무겁다는 것, 이미 직장에서의 많은 사인들은 내가 적응을 할 수 없다고 신호를 보냈고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육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대단한 사건이 하나 일어났고, 회사는 뒤숭숭해졌고, 대표는 노동부에 불려 가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결국, 며칠 후 대표실에 정산실장과 함께 들어가, 나의 퇴사의사를 밝혔고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최종적으로 업무 마감일자 세팅하였다. 나는 그렇게 수일 후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계속 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지속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장에 이력서를 넣었다. 이미 그만두기 전부터 워크넷과 여성 새로 일하기 센터를 통해 이력서를 온라인으로 제출했으며, 그 와중에 새일 여성인턴으로 재취업이 확정이 되었다. 갈 곳을 마련해 놓으니 쉬는 동안 마음도 편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나름 용기 있었던 이직이었지 않았나 싶다.
가끔 그들이 궁금하다. 아직도 끈끈하게 잘 있을까? 사업은 잘 되고 있나?
그런데 이딴 생각은 집어치우자. 이런 걱정할 시간에 내 일이나 잘하자. 이미 더럽고 치사해서 박차고 나온 구직장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그곳의 공기!! 다시 맡고 싶지 않은 공기!
사진으로 남긴 그날의 기억. [해방감]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그들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 수년이 지난 지금 그 어디서도 마주친 적이 없으니, 앞으로 만날 확률이 현저히 낮다는 말. 아니 없을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뻔뻔한 워킹맘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