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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Feb 10. 2023

옥 씨,


박옥씨는 아마도 62년생인데 주민등록상 65년생입니다. 헷갈려서 잘 기억은 안 납니다. 용띱니다. 용의 기상을 지닌 박옥씨에게서 저는 몽골의 낙타 이야기, 말을 타는 이야기를 들으며 컸습니다. 한쪽 어깨엔 길고 검은 화구를, 또 한 쪽 어깨엔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박옥씨 덕에 어린이집 대신 예술의 전당에 따라 다녔어요. 종종 예술의 전당 학교를 벗어나 전세버스에 박옥씨와 수많은 이모들과 빼곡히 앉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지요. 버스가 출발하던 때 스케치북 낱장에 손이 베어 아팠던 기억이 왠지 선명합니다. 그리고 그 날 박옥씨의 기억, 언젠가 건네준 육아일기의 뒷부분, 해가 뜨는 시간에 이모들과 스케치북을 들고 명산에 오른 박옥씨는 아마 그 때 그림을 그만 그리기로 했습니다. 이모들이 가진 재능을 본인은 가지고 있지 않음을 글로 적은 날. 박옥씨를 따라 뱃속에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저도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었는데요, 그 날 박옥씨의 문장을 따라 저도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탯줄로 연결된 작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던 저는, 탯줄이 끊어진 후에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다가, 엄마의 글 한 줄에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 거지요. 탯줄처럼 우리를 연결한 글 한 줄. 엄마와 딸은 이렇게도 연결되어 있는 걸까. 엄마와 딸의 운명은 어떻게 이리도 닮은 걸까.


박옥씨의 육아 일기를 떠올리는 지금, 글을 쓰는 딸은 깨닫습니다. 박옥씨의 글이 참 좋았다고. 수많은 말은 그림 그리고픈 마음을 꺾을 수 없었지만, 진실된 박옥씨의 마음, 마음이 투영된 글, 제 삶의 향방을 바꿔 놓았지요. 그림으로 내 모든 마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예쁘든 흉하든, 모든 것을 옮기며 살아가리라 생각했는데요. 여전히 그런 제 모습을 꿈꿉니다만, 지금 제 삶의 출구는 글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었던 적은 별로 없었는데. 써야 하니까 씁니다. 쓰지 않을 수가 없어서. 박옥씨의 재능도 사실 글이 아닐까? 우리는 닮았으니까.


육아를 마치고 은퇴한 박옥씨, 나이든 박옥씨, 오늘부터 글을 쓰면 어떨까요. 누구보다 부지런해 영어공부를 매일 꾸준히 하는 것처럼. 글을 쓰며 외로운 마음을 달래 보세요. 쓰지 않을 수 없는 날이 많아질 거예요. 그리고 우리의 운명은 멀리 있어도 같은 길을 가게 되겠지요. 아니 사실은 제가 육아일기 쓰던 박옥씨의 나이에 가까워져 운명으로 닮은 박옥씨의 삶을 따라가고 있는 거겠지만요.


며칠 전 박옥씨가 제게, “온실 속 화초처럼 키워놨는데 지금은 야생화다.” 했습니다. 제가 온실 속 화초처럼 컸다고 생각하지 않지마는 ‘지금은 야생화’라는 말이 참  맘에 듭니다. 그것 아세요, 엄마도 야생화예요. 당신은 바다로 들로 종종대는 제주 여성을 닮았어요. 그리고 제 출근길 제주 숲과 들판의 야생화를 닮았어요. 그래서 제가 제주로 오게 된 걸지도 모르지요. 저는 엄마를 쏙 빼닮았으니까요.


-2022.11.12 하노이에서, 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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