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차
“그쪽 사주는 불이야. 막 타오르는 불은 아니고 어두운 밤에 새어 나오는 한 줄기 등불 같은 그런 불.”
불의 사주라. 뜨겁다는 뜻인가 싶었다. 원체 몸에 열이 많은 게 다 사주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사실, 사주를 봐주신 역술가 분의 말대로 나는 불과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어버리고. 오래도록 느긋하게 지지고 싶다가도 무언가가 떠올랐을 때 움직이고, 갑작스러운 다짐에 열의를 쏟기도 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지금의 삶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일정해야 해요. 꾸준하고 변하지 말고.”
언제인가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가 봤던 누군가의 말이었다. 꾸준해야 한다. 꾸준하기 위해서는 그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펑펑 터지는 화약처럼 살아왔던 내게는 조금은 어려운 말이었다. 집중력 결핍 때문에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재미가 없고, 흥미가 없으면 그렇게 오랜 열의를 보이지 못했던 내게 ‘도파민’이라는 단어는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 자극을 조금은 덜어내야지. 그렇게 살아야지.”
누군가는 요가를 하고, 누군가는 명상을 하고, 누군가는 비워내는데 그 힘을 다했다면 나는 내 속을 비워내기 위해 더 큰 자극을 주었던 것 같다.
-팡! 팡!-
샌드백을 치고 상대의 주먹이 내 얼굴에 닿고, 내 주먹이 상대의 배에 닿고. 한 번 시원하게 땀을 흘리고 나면은 조금은 마음이 초연해졌다. 역시나 모든 건 생각대로 되지 않는구나. 역시나 세상에는 강자가 너무 많구나. 어쩌면 내가 그렇게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흥분했던 건 현실의 벽을 그저 머리로만 상상했던 게 아니었나 싶었다. 어정쩡하게 배운 녀석이 세상을 논하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듯이, 책 하나를 읽고 진리를 깨달은 척하는 청년만큼 어리석은 자가 없듯이. 그 어정쩡함이 항상 나를 불태우고 있던 게 아닌가 싶었다.
“하아... 그 마저도 이제는 쉽지 않다.”
정말 쉽지 않았다. 그마저도. 나이를 먹고 조금만 무리해도 바로 데미지가 들어오는 요즘은 그렇게 뜨거워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라는 인간의 장작이 이제 많이 닳았구나 싶기도 했고 이전처럼 불태우는 게 쉽지 않은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은 뭔가 시나 간단한 에세이를 쓰며 그 마음을 잠재우기 시작한 것 같다. 이 또한 불태우면 불태운다고 볼 수 있겠지만, 파란 하늘 아래에서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맞고 있으면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고, 자연스럽게 쓰고 싶은 글들이 생각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은 걸 알고 있지만 한 번씩 너무 힘들게 오래도록 연소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문을 열고 가만히 앉아서 바람을 맞거나 주변을 걷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정말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말이다.
“요즘이 제일 좋다.”
정말 요즘이 제일 좋다. 이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오래갔으면 좋겠다. 찌는 듯 한 더위도 살이 깎아내는 듯한 추위도 극단으로 가는 현상보다 어정쩡한 지금의 이 시원함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설익었을지언정 지금의 이 어정쩡한 시간이 오래되어야 무언가를 내려놓은 채 주변을 볼 수 있는 습관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