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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Nov 26. 2018

대구 여자의 서울 적응기

그림으로 그린 나의 적응기






고딩들의 목표는 인서울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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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년 동안 나의 목표는 인서울이었다. 딱히 뭐라 말할 이유는 없었다.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고등학생인 나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운이 좋게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을 했고, 20살의 나는 그토록 원했던 서울에 왔다. 서울에 온 첫날,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어 기숙사 침대에 쪼그려 앉아 울며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난다. 서울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사람들은 너무 바빠보였고, 어딜가나 복잡하고 불안했다.


대구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택시를 타면 사투리를 쓰는 우리를 알아채고 똑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다 내려준 적도 있었다. 서울은 나에게 너무나도 불친절했다. 그랬기 때문에 난 자연스럽게 서울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버렸다. 1학년의 나는 그랬었다.



서울 – 태재


집 많은데

내 집없고

올 일 많은데

올 곳 없어가

다들 전봇대에

기대 서 있네


서서 울어서

서울인갑다




들여다보다


복잡한 서울이 싫어 일부러 조용한 동네를 찾아다녔고 그 곳엔 내 마음을 둘 수 있었다. 편안했다. 좋아하는 동네, 좋아하는 가게들이 늘어갈수록 난 서울이 좋아졌고 점점 선입견이 사라졌다. 과제에 치여 힘이 들때 시간을 내어 그곳에 가면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고, 한 박자 쉬어갈 수 있었다.


서울이 좋은, 서울에 온지 4년이 넘은 지금, 내가 서울을 온전히 볼 수 있게 된 과정을 책으로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때 처음 서울에 왔을때 느꼈던 감정부터 지금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하나 둘씩 그리기 시작했다.




온전히 [온ː전히]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히



2014, 스무살의 나

서울 가기 전날 인사를 드리러 할머니집에 갔다. 할머니는 하얀 봉투 하나를 내게 주셨다. 봉투 사이로 살짝 삐져나온 만원짜리가 보였다. 용돈 받을 생각에 신나 흰 봉투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니, 꾸깃꾸깃한 만원짜리 사이에 할머니의 손편지가 들어있었다. 용돈만 생각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

지영아 장하다

몸도 약한데 얼마나 고생을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할려고 하면 무엇이던가네 노력하면 되느니라

명심하여라

할머니가 선물로 조금줄터이니 저금하였다가 피료할때 쓰기바란다

장하다 손여딸아

할머니가

"


할머니의 자랑스러운 손'여'딸은 그렇게 서울로 떠났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복잡해

어딜가든 멋있을 것만 같았던 서울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버스를 타건 지하철을 타건 사람들에 치여야했고, 거리의 사람들은 항상 바삐 어디론가 가는 것 같았다. 거리의 빽빽한 간판들도 나를 불안하고 숨막히게 했다. 나는 너무 답답했다. 그렇게 2014년 나의 일학년은 지나갔다.




2015, 스물한살의 나

빨갛고 선명한 선입견

그렇게 해서 선입견이 생겨났고, 나는 서울을 온전히 보지 못하게 되었다. 어딜가든 빨간 선입견을 씐 체 그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흔적만 남은 선입견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가 좋아하는 가게, 그 장소와 어울리는 시간, 좋아하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나의 선입견은 점점 작아졌고, 그 흔적만 남게 되었다.




지금의 나

이제 나에게 서울은 더이상 낯설고 마음 둘 곳이 없는 곳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 내가 좋아하는 골목, 내가 좋아하는 밥집 이 장소들이 모여 서울이 나의 제 2의 고향이 되버렸다.





서울, 이곳도 참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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