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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Sep 27. 2023

퇴근을 하는 세 가지 방법

그 브랜드는 과연 1천만 원짜리 모피를 진짜로 팔았을까?

퇴근을 하는 방법은 세 가지였다.   

1. 점포가 일 매출 목표를 달성한다.

2. 층이 일 매출 목표를 달성한다.

3. 층에 1천만 원을 달성한 브랜드가 있다.


그날, 선배들은 과연 내가 퇴근할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내기를 했다고 했다. 고작 몇 만 원이 오가거나 밥이나 사주는 내기겠지만, 그날은 지점장까지 합세해 꽤나 흥미진진했던 모양이었다. 퇴근하지 못한 자들은 백화점이 마감한 10시 이후에 모여서 부진회의를 진행했다.  부진회의의 주요 내용은 왜 오늘 매출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지, 내일은 어떻게 매출목표를 달성할 것인지 등을 정리하여 보고하는 것이지만,  당장 내일의 대안이 오늘 밤 10시에 나오지는 않았다. 결국은 그저 화난 지점장의 화풀이 상대가 되어 그의 화가 풀릴 때까지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다가 12시 즈음 퇴근하게 되는 일상이었다. 당시 한 층은 2~3명의 관리자가 근무하고 있었고, 아직 몇 개월 근무를 하지 않은 내가 저녁에 혼자 남아있는 일은 자주 있지 않았다. 팀장님은 기억나지 않은 무슨 일로 먼저 퇴근을 했고, 나는 층 관리자로서 혼자 남아 마감까지 우리 층을 지켜야 했다. 점포가 일매출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좀 힘이 부친 어느 날이었다. 점포가 당일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어도, 해당 층이 당일 매출목표를 달성한 팀은 이미 지점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퇴근하였고, 층 매출목표 달성이 부진하여 남아있던 선배들의 마지막 관심사는 일 매출목표의 90% 정도 달성이 예상되는 우리 팀이었던 것이다.


DM 등 중요한 날이면 각 브랜드별로 매출목표를 작성하고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끝없는 회의를 하고는 했다


나는 매출판에 각 브랜드별 목표를 적어 들고는 매장을 돌았다. 한 시간에 한 번씩 현재까지의 매출현황을 적어 들고 매장을 돌고, 예상매출을 가늠하며 또 돌았다.  백화점을 1층부터 찬찬히 돌며 아직도 유입되는 고객이 있나 살피기도 하고, 우리 층을 돌며 쇼핑을 하고 있는, 그래서 잠재적으로 매출을 일으켜줄 고객이 있나 살피기도 하였다. 한 바퀴 한 바퀴를 돌면 매출이 10만 원씩, 100만 원씩 오를 것처럼 간절하게 똑같은 매장을 돌았다. 관리자의 발걸음에 따라 매출이 오른다는 속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창백해진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몰라 미친년처럼 계속 매장을 돌아다니기만 했다. 예상 마감매출은 전년보다 성장하긴 했지만, 매출목표와 비교하면 10% 정도가 부족할 것 같았다. 매니저님들이 열심히 팔아주신 덕분에 600~700만 원씩 매출을 한 브랜드가 여럿이지만, 이렇게 고객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어느 브랜드가 1000만 원 매출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할 수만 있다면 남은 매출목표 몇백을 내가 다 팔아서라도, 아니 내가 다 사서라도 부진회의는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꼼짝없이 나 혼자 부진회의를 참석하고 그 불편한 상황을 이겨내야만 했다. 이제 갓 입사한 후 처음으로 혼자 마감 때까지 층을 지키게 된 나는 부진회의에 들어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오늘 고객이 많이 없었습니다’는 사실을 말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나뿐 아니라, 모두가 집에도 못 가고 밤을 새워 지점장의 욕받이가 되어야 할 느낌이었다. 당시 지점장은 나에게 신과 같았다. 


"모야~ 얼마가 부족해서 정신없이 돌아다녀 이렇게!!"

"히잉 ㅠㅠㅠ 4~500백 부족해요 ㅠㅠ 이제 시간이 없어서 매출 못할 것 같아요 ㅠㅠㅠㅠ

 천만원한 브랜드도 없고 큰일 났어요 ㅠㅠㅠ"


매니저님들의 물음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이 그렁그렁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릴없이 매장을 돌다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겨두지 않고 체념하듯 매출을 확인해 부진보고를 작성하려던 나는, 갑자기 하늘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섬광을 보고는 방송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곧, 전 매장에 나를 살리는 생명수와 같은 음악이 울려 퍼졌다. 


"빰빠밤빠바~ 빰빠밤빠바~ 빰빠밤빠바~ 콩그레츄레이션~ 콩그레츄 레이션~~

오늘 3층의 모피브랜드, ooo이 당일매출 1천만 원을 달성하였습니다~ 모두 축하해 주세요!! "


한방에 1천만원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브랜드는 역시... 모피뿐?


지금보다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유통점 내의 매장에서는 휴대전화가 아니라 무전기로 소통을 했었다. 어두운 계통의 정장을 입고 무전기를 뒷주머니에 꽂고 매장을 도는 일상이었다. 지금은 근무조가 A/B조로 나뉘어 법정근무시간을 지키려는 노력이라도 하지만, 당시에는 거의 모두가 풀근무를 할 때였다. 팀장급은 주말 이틀을 쉬려면 지점장님께 따로 보고해야 했어서, 주 6일을 자진하듯이 나와서 근무했다. 아직 여자인 ‘관리자’가 없어서 매장을 돌아다니며 정리를 요청하기라도 하면 근무하는 매니저들이 “어린년이 잔소리를~”이라며 험담을 하기도 했고, 브랜드의 영업담당도 팀장님 없이 만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마치 군대인 듯 ‘다/나/까’를 사용해야 했고, ROTC출신의 신입사원을 선호하던 시대였다. 팀장님은 나에게 “매출은 무조건 높다고 좋은 게 아냐~ 내가 원하는 날 그 매출이 나와야 좋은 거지!”라는 이상한 가르침을 주고는 했다. 매출이 내 맘대로 어느 날 올리고 내릴 수 있는가 싶었지만, 그는 내게 그것이 다 짬바라고 했다. 그는 매출이 부족하면 일부 매니저를 따로 불러서 카드를 돌려 거짓 매출을 찍으라고 지시하기도 했고, 매니저들은 특정한 날 매출을 올리기 위해 단골손님 카드 번호를 깜지에 긁어서 두기도 했다 (당시에는 전산으로 그렇게 처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산상 신용카드 번호를 안다고 해서 수기 타건 할 수 없다). 그렇게 개인의 카드로 긁은 매출은 이후의 어느 날인가에는 다시 반품을 해야 했지만, 당시에는 그저 일상같이 흔한 일이었다. 회사가 중요하다고 하는 날 매출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이후에 그 매출이 어떻게 빠졌나를 다시 살펴보는 일은 없었다. 조삼모사와 같은 매출 타건이 흔하게 있던 때라, 윤리적/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우리 층은 매출목표의 90% 정도를 했지만 1천만 원을 판매한 브랜드가 있었기에, 나는 해맑게 상기된 표정으로 지점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퇴근할 수 있었다. 8시도 전에 출근해서 밤 10시를 넘어서 한 퇴근이었지만, 지금까지의 그 어떤 순간보다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아까와는 다른 표정으로 매장을 한 바퀴 돌면서 세상 그 누구보다 밝게 매장을 지키는 각 브랜드 매니저님들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과연 그때 1천만을 달성한 브랜드는 정말로 그 늦은 저녁에 모피를 팔았을까? 정말로 팔았다고 한들, 우리 층이, 전체 점포가 매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다. 혹여 그 하루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한들, 전체 월 누적에 큰 영향을 미쳤을까? 오늘 팔지 못한 매출을 찍는다면, 결국 미래의 언젠가는 빠질 매출이었다. 그 하루 하루의 매출이 모여 전체를 만드는 것이 옳다면 왜 지금은 그런 문화가 없어졌을까? 


"라떼는"이 힘을 잃는 것은 그 것이 먼 옛날 언제가를 미화시키는 개인의 영웅담일 뿐, 지금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지금 '라떼'를 외치고 있는 것일까?





*관리자(팀장/담당) - 대졸 공채, 현장 영업/브랜드 교체/ 매출관리 등의 업무를 맡는다.

조장(판전직, 판매전문직) - 고졸 (여)직원, 현장 매니저 소통/ CS(고객서비스) 관리 등의 업무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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