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의 나무에 걸려있는 잎의 모양이 모두 다르듯 더불어 사는 우리가 지니는 삶의 가치는 모두 다르다.
부족한 점을 찾기보다 현재의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실천하고 크게 기뻐해 보자. 이런 경험은 차곡차곡 내 안에 쌓여 가끔은 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든든한 무게 추가 되어줄 것이다.
조건을 따지다 보면 마음먹고 의자에 앉는 것조차 쉽지 않다. 사실 '완벽한 글'이란 '완벽한 사람'만큼이나 허무 맹랑한 말이란 걸 알고 있다. 좋아하고 욕심나는만큼 조심스러운 것은 당연하지만, 노트북도 열지 않고 걱정만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0에는 무엇을 곱해도 0일 뿐인데.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었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그냥 한 거지, 뭐"라는 식의 대답을 무심하게 내놓았다. 단순한 사람들의 그냥 시작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불필요한 마음을 덜어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내가 살면서 닮고 싶다고 생각했던 단순함의 제왕들을 떠올린다. 그냥 시작해서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들. 불필요한 마음을 덜어내는 일은 모든 성취의 첫걸음이다.
혼자 있을 때도 행복한 사람은 가치 판단의 기준이 자기 자신에게 있을 거라고, 적어도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 거라 믿는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라고 파스칼도 말하지 않았던가.
필사는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책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안다. 의미를 갖지 못하고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의 파편들이 어떤 문장을 만나 비로소 퍼즐처럼 맞춰질 때의 쾌감을, 내 사고의 범위와 사유의 깊이가 확장되는 순간의 짜릿함을 안다. 이런 경험은 우연보단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스치듯 흘러갈 수 있는 문장을 눈으로 붙들고 연필로 끌어와 내 안에 가두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은 절대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거듭하기 때문에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작은 실수를 골라 내기보다는 작은 실천에도 크게 칭찬하며 각자의 방법을 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면 좋겠다.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에서는 배가 똑바로 나아가려면 바닥짐을 실어야 하듯, 우리에게는 늘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 결핍이 필요하다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소개한다. 누구에게나 잠들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고독의 시간인 잠을 자는 동안만이라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물건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던 건 비움의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 더 컸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것은 비워지고 나의 생활과 습관, 가치와 취향으로 채워진 방은 언제나 나를 위해 준비된 공간이다. 나는 그곳에서 언제든 쉴 수 있다.
자신에 대해 오래 고민해 본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제 해마다 유행이 바뀌어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취향을 묻는 질문에 망설이는 일이 없다. 내게 비움은 단순히 물건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남길지 고민하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과 같다.
당장에 물건을 다 비워야 한다고 압박을 느끼기보다는 천천히 내 삶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의 망각의 동물이라 많은 것에 무뎌질 수밖에 없지만, 기록은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언제나 '어떻게'보다는 '왜'가 중요하다. 나는 왜 물건을 비우고 싶은가, 나는 왜 달라지길 원하는가, 비움을 통해 내가 온전히 집중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선행되지 않으면 간결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해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변 환경과 마음이 정돈되면 본질에 집중하며 불필요한 것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단순한 삶에 찾아온 여유는 내가 나만의 단계를 밟을 수 있게 도와줬다.
충동의 손을 들어주는 건 일상에 빈틈을 만드는 일이다. 그 사이로 알 수 없던 세계가, 기대하지 못한 즐거움이, 이따금 꺼내볼 수 있는 달콤한 추억이 흘러들어온다. 조개의 상처가 만들어낸 진주처럼 일상의 틈이 주는 귀한 선물이다.
기록은 언제나 생각하는 삶을 만들어 준다.
우리가 그토록 갖길 원하는 자기애라는 건 사실 별게 아닐지 모른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것. 그리고 그걸 품 안에서 소중히 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설레는 걸 지키는 건 나를 지키는 일이다.
우리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나만의 규칙을 세우고 다듬어가며 일상을 유지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반복적인 동작에 근육이 생기듯 반복되는 일상이 우리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순간 <캠핑클럽>에서 인상 깊게 들었던 이효리의 말이 생각났다.
"남들이 안 알아줘도, 나 자신이 기특하게 보이는 순간이 많을수록 자존감이 높아져. 남이 생각하는 나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생각하는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