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노 Oct 30. 2024

[핵심문장] 아주 보통의 행복


진정한 행복은 아주 보통의 행복이다.


행복은 겁을 먹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행복은 '내 삶을 사랑하는 정도'다. 딱 그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


우리가 달력을 볼 때, 행복의 천재들은 자기 마음을 본다. 그리하여 우리가 몇 안 되는 기념일을 챙기느라 많은 날들을 그냥 흘려보낼 때, 그들은 자기 마음속 감사의 감정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우리가 소수의 기념일을 핑계 삼아 다수의 비기념일을 평범하게 만들 때, 그들은 모든 날들을 비범하게 만든다.


행복 천재들은 좋아하는 것에 관한 한 천재다. 행복 천재들은 좋아하는 것이 많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고 많으면 마음속에 '관심'이 가득하다.


간섭하기가 행복에 불리한 이유는 간섭이 삶의 중심을 '자기'에게서 '타인'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행복의 천재들은 타인의 삶에 무관심하지 않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이타적이며 공동체적이다. 그들은 타인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다만 경계를 지킨다. 왜냐하면 행복의 본질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력은 알아야 할 것들을 알수록 커진다. 그러나 행복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모를수록 커진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만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아는 것도 행복감을 떨어트린다.


여행은 관광이 아니다. 수동적인 봄(gazing)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자기발견의 경험이다. 자신을 발견하고 사유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이 여행이다. 여행은 새로운 자기를 잉태한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 우리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선물을 들고 온다. 일상의 시작과 끝이 자연적 시간의 흐름에 의해 규정된다면, 인생의 시작과 끝은 의미 있는 경험에 의해 규정된다. 여행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자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절차다.


여행은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구체성은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생계를 위한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 때문에 무뎌질 대로 무뎌진 감각을 망치로 부수듯 깨어나게 하는 작업이 여행이다.


오해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데서 생겨난다. 타인의 선한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을 거라고 해석한다. 타인의 좋지 않은 행동은 돌발적인 상황 때문에 생긴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본성과 의도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해석한다. 이것이 오해의 본질이다.


실패의 최소화가 아니라 성공의 극대화를 요하는 상황은 반드시 다시 오게 되어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재미와 창의다. 딱 필요한 것만 하겠다는 태도가 지속되면 지루함에 대한 인내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져 공격력이 저하될 수 있다.


고통이 극복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반드시 의미 발견의 순간이 존재한다. 고통에도 뜻이 있다는 점을 스스로 발견하면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


자기의 일에서 스스로 성장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즐거움을 갖는 것은 재미있는 일의 조건들이다.


의미의 저력은 '해석'을 통해서 발휘된다. 의미는 우리에게 '고난에도 뜻이 있다'는 해석을 제공한다.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고난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의미다. 의미형 인간은 인생의 실패를 삶에 대한 위협이 아닌 도전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의미형 인간의 저력은 고난의 한가운데에서 최고조로 발휘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일찍 전투를 포기하고 있다. 나이와 함께 늘어나는 일상의 의무와 조직에서 맡게 되는 보직을 핑계 삼아 탁월성에 대한 추구를 포기한 채 조로의 삶을 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성과가 줄어드는 이유는 나이 자체 때문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노력을 훨씬 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완벽주의적인 기준을 들이대 스스로의 행동을 억압해버린다.


타인의 정신세계도 우리의 정신세계만큼이나 깊다. 그들도 우리처럼 정교한 존재다. 그들의 행동도 우리의 행동만큼이나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복잡한 정신 작용의 산물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원초적 본능 외에도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존재이고, 누추한 곳에 눕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 싶어 하는 존재다.


예측의 가치는 틀리지 않는 것에 있지 않고, 틀림을 통해 사유를 자극하는 것에 있다.

설명의 가치는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다는 지적 허영에 있지 않고, 우리가 그렇게 확신에 차서 설명하는 과거가 조금 전만 해도 예측이 불가능했던 우리의 미래였음을 인정하는 겸손에 있다.

설명과 예측이 쏟아지는 시기에 진정한 용기와 진정한 겸손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자기만의 질문을 가져야 한다.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시그니처 질문을 만들어내야 한다. 개인이건 사회건, 그것의 품격은 그가 던지는 질문의 품격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삶과 좋은 글은 육하원칙을 따른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는 좋은 글이 갖춰야 할 조건이자 좋은 삶에 대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삶의 모든 문제를 사람의 문제로만 국한시키지 않을 때, 삶은 여유로워지고 균형을 이루게 된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사소함 속으로 더 깊이, 온전히 들어가는 것이 곧 행복이다.


행복은 마음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묘하게도 마음 관리는 공간을 정리할수록 쉬워진다.


때로는 사실 자체보다 사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


행복은 고통의 유무가 아니라 고통에 임하는 자세에 의해 결정된다.


시간이 많아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인해 우리는 늘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질적인 시간 부족 현상은 이 착각에서 비롯된다.


자유자재형 인간들은 자기의 감정에 충실하고, 자기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들은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만든다.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은 스스로를 자유자재형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핵심문장] 언리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