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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향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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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maflower Jan 15. 2019

메종 프란시스 커정 페미닌 플루리엘

하얀 실크로 감싼 풍성하고 아름다운 플로럴 부케


조향사 프란시스 커정을 처음 알게 된 건 2011년 출시된 엘리 삽 르 파팡(Elie Saab Le parfum)이라는 향수 때문이었다. 화려한 오렌지 플라워 향이 그때는 꽤나 생소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는데, 향수 리뷰를  찾던 중에 '화이트 플로럴의 귀재, 프란시스 커정'이라는 글을 보고 프란시스 커정이 어떤 조향사인지, 어떤 향수들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엘리 삽 르 파팡 (이미지 출처: perfume-malaysia.com)


사실 조향사들은 오랜 기간 무명의 존재로 지내왔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베스트셀러 향수를 사면서도 사람들은 특별히 그 향수를 만든 사람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향사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브랜드들도 많았다고 하는데, 특히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을 내 건 패션 브랜드의 경우 옷을 만든 디자이너가 직접 향수를 만들었다고 소비자들이 믿길 바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변화가 찾아왔다. 니치 향수의 유행을 타 향수가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아닌, 예술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조향사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매년 셀 수 없는 신제품이 쏟아지는 향수 시장에서, 어떤 조향사가 어떤 영감을 가지고 향수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스토리는 제품을 돋보이게 하는 경쟁력이자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가 되었다.


뒤늦게 찾아본 프란시스 커정의 커리어는 평범하지 않았다. 장 폴 고티에 르 말(Jean Paul Gaultier Le Mâle, 1995)을 통해 25세라는 어린 나이에 천재 조향사로 주받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던 엘레자베스 아덴 그린티(Elizabeth Arden Green Tea, 1999), 조르지오 아르마니 매니아(Giorgio Armani Mania, 2002), 크리스틴 나이젤과 함께 작업한 나르시스 로드리게즈 포 허(Narciso Rodriguez for her, 2003) 등 꾸준히 성공작을 선보였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여러 조향사들이 하나의 향수 프로젝트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존의 시스템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향수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2009년 마크 차야(Marc Chaya)와 공동으로 설립한 '메종 프란시스 커정(Maison Francis Kurkdjian)'을 통해 그 목표를 실현하고자 했는데, 십 년이 지난 지금 메종 프란시스 커정이 니치 향수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고 그의 이름이 전보다 훨씬 유명해진 것을 보면 그의 생각이 옳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프란시스 커정 (이미지 출처: franciskurkdjian.com)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향수들은 브랜드 로고, 보틀 디자인만큼이나 하나같이 세련되고 우아하다. 가벼운 오 드 코롱을 재해석한 아쿠아 시리즈(아쿠아 유니버설/Aqua Universalis, 아쿠아 비떼/Aqua Vitae, 아쿠아 셀레스티아/Aqua Celestia 등)부터 어둡고 강렬한 오우드 시리즈(우드/Oud, 우드 실크 무드/Oud Silk Mood, 우드 캐시미어 무드/Oud Cashmere Mood, 우드 벨벳 무드/Oud Velvet Mood, 우드 사틴 무드/Oud Satin Mood 등)까지, 넓은 향 스펙트럼 안에서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그의 예술성을 마음껏 펼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플로럴 향수(아폼 뿌르 팜므/APOM pour Femme, 아미리스 팜므/Amyris Femme, 페미닌 플루리엘/Féminin Pluriel , 아 라 로즈/À  la Rose)들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중 최근 한참이나 빠져있었던 향수가 바로 페미닌 플루리엘이다.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공식 자료에 의하면 '풍성한 플로럴 부케에 영감을 받아 영원한 여성성을 '하는 이 향은 단지 '여성스럽다'라는 한마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훨씬 더 복잡하고 깊이 있는 향이다. 플로럴을 포함한 여러 노트들을 정교하게 쌓아 올린 덕에 시간에 따라 한 겹 한 겹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며 결코 단조롭지 않은 매력을 뽐낸다.


메종 프란시스 커정 페미닌 플루리엘 (이미지 출처: fragrantica.com)


플로럴 부케로 넘어가기 전의 도입부는 생략하기로 한 듯, 플루리엘은 초반부터 달콤한 로즈와 부드러운 아이리스를 앞세운 아름다운 플로럴 노트를 선보인다. 싱그러운 오렌지 블라썸, 투명한 릴리 오브 더 밸리, 한층 드라이(dry)하게 변한 아이리스의 뉘앙스가 번갈아 드러났다 이내 섞여 들어가며, 한참이나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화려하거나 관능적인 향은 아니지만, 달콤하면서도 실크처럼 부드러운 향 충분히 중독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디 노트의 무게감이 조금씩 더해는 것이 느껴진다. 플루리엘은 시프레 플로럴(Chypre Floral) 계열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시프레의 특징이 뚜렷하다기보다 모던 시프레 향이 가진 플로럴과 패츌리 조합의 고급스러움을 살짝 빌려 조금 더 깊이 있는 향을 완성한 느낌이다. 잔향으로 갈수록 오히려 아이리스와 머스크가 어우러파우더리하고 깨끗한 향취가 돋보인다. 달콤한 첫인상과 부드러운 감촉, 파우더리한 잔향으로 이어지는 전개가 무척이나 다채롭고 아름답다.


한마디로 색색의 꽃들을 아름답게 묶어 하얀 실크로 감싼 풍성한 부케 같은 향이다. 프란시스 커정은, 각각의 꽃이 가진 아름다움을 더 돋보이게 할 줄 아는 플로리스가 된 듯, 정교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저마다의 꽃 향기를 아름답게 묶어냈다.


이처럼 메종 프란시스 커정은 조향사 프란시스 커정의 네임 밸류만큼이나 훌륭한 컬렉션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장 폴 고티에, 버버리, 겐조 등 다른 브랜드를 위해서도 향수를 만들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향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남은 모양이다.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쩐지 조금도 지겹지 않을 것 같다.








메종 프란시스 커정 페미닌 플루리엘은 아이리스, 바이올렛, 장미, 자스민, 릴리 오브 더 밸리(뮤게), 오렌지 블라썸, 베티버, 패츌리 노트를 포함하고 있다.  70ml 23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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