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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maflower Aug 27. 2020

에르메스 에르메상스 이리스 우키요에


예전 에르메상스 미르 에글란틴 리뷰에서 에르메상스(Hermessence) 라인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어요. 에르메스 향수들이 워낙 존재감이 크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에르메상스 컬렉션은 '한 편의 시'에 비교될 만큼 예술적 상징성이 높다 보니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엄청난 주목을 받곤 합니다.


전 에르메스 전속 조향사 장 끌로드 엘레나님이 13개, 그 뒤를 이어받은 크리스틴 나이젤님이 5개. 현재까지 총 18개의 에르메상스 향수들이 세상에 선보여졌는데요, 하루빨리 또 다른 에르메상스 신제품이 나오길 바라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에르메상스 향수 중 하나인 이리스 우키요에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에르메스 에르메상스 이리스 우키요에

Hermès Hermessence Iris Ukiyoé (2010)


이리스 우키요에 (출처: 에르메스 공식 홈페이지)



혹시 장 끌로드 엘레나가 일본 판화 수집가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이리스 우키요에의 '우키요에(絵)'는 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했던 목판화로, 유럽으로 넘어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장르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 끌로드 엘레나의 일기 모음집 '나는 향수로 글을 쓴다'에는, 그가 아이리스를 주제로 향수를 만들면서 '이리스 우키요에'라는 이름을 짓기까지 오래 고민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요. 단지 좋아하는 예술 장르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 아니라 '우키요에'의 숨겨진 뜻에 크게 공감한 것 같은데요. 책의 일부분을 아래와 같이 발췌하여 공유합니다.




2010.2.3. 수요일. 카브리

- 향수의 이름

일본 판화 수집가인 나는 화가 오가타 코린의 아이리스 병풍에서처럼 떠다니는 세계의 아이리스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 집 정원도 오뉴월만 되면 깃털이나 눈처럼 희고 짙은 쪽빛의 아이리스가 만개하고 장밋빛 아이리스 향으로 가득 찬다.

(...)

에르메상스는 향수의 원재료명과 조향의 의도를 정의하는 또 다른 단어를 합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여기서는 일본어 단어들을 나란히 잇는 편이 더 나아 보인다. 아이리스 콘이로, '콘이로'는 일본어로 '파랗다'는 뜻이며, 아이리스 카도, 즉 '꽃길', 아이리스 우키요에, 즉 '떠있는 세상의 이미지'. (...) 향수의 이름은 당신의 모든 감각을 사로잡아야 하는 언어이자 향수와의 첫 접점이다.



2010.4.27. 화요일. 카브리

- 아이리스 유키요에

오늘 에르메상스 컬렉션 중 하나가 될 신제품의 이름이 결정됐다. 오랫동안 아이리스 유키요와 아이리스 유키요에 중에서 고민한 후 나는 결국 두 번째 이름으로 정했다. '유키요'라는 단어는 '떠다니는 세상'을 지칭한다. 연약한 것들의 통렬한 아름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불교철학에서 나온 말이다.

(...)

이 '유키요'라는 단어는 향수에 대한 나의 비전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에'를 추가하면, 이 세상에 대한 회화적인 표현을 의미하며, 특히 일본 판화를 지칭한다. 이것의 표현 양식은 후각적이기까지 하다.




같은 책에서 장 끌로드 엘레나는 '나는 결코 현실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현실보다는 상상, 꿈, 환상과 같이, 결코 속임수가 아니라 창의적인 것을 선호한다.'라고 얘기합니다.


그의 대부분의 향수 작품들이 이런 환상이 가미된 창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불가리 오 파퓨메 오 떼 베르에서도 차(tea) 향을 그대로 쓰는 대신 버가못과 플로럴 계열의 향료를 조합하여 싱그러운 찻잎의 이미지를 창의적으로 구현해냈죠.


이리스 우키요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향수에 흔히 사용되는 아이리스의 파우더리한 뿌리 향을 그대로 사용하기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이리스의 꽃 향을 만드는데 그의 상상력을 발휘했습니다.


오가타 코린의 아이리스 병풍 (출처: 위키피디아)

오가타 코린의 작품 속, 흐드러지게 핀 아이리스 꽃들이 바람에 유유히 흔들리듯, 공간을 부유하듯, 몽환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요. 병풍 속 꽃들만큼이나 이리스 우키요에의 항도 참 청초하고 아름답습니다 :)


시트러스와 밝은 플로럴 노트를 중심으로 탑에서는 시원한 워터리 그린 노트가, 베이스에서는 부드러운 우디 노트가 더해졌는데요. 만다린과 로즈 노트의 싱그러웠던 향이 순간 포근하게 바뀌며 우아하게 피부를 감싸 안아요. 노트들 간의 조화가 얼마나 매끄러운지 원래부터 하나의 향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보통의 아이리스 메인 향수들에서 찾기 힘든 투명함이 돋보여요. 순수하고 여린 듯 하지만 에르메상스 특유의 기품을 가진 아이리스 꽃향이 잔향까지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우키요'는 떠다니는 세계를 뜻한다고 말씀드렸죠. 매일같이 우울한 현실을 마주하다 보니 자꾸만 도피처를 꿈꾸게 되는 요즘이네요. 이 향수가 여러분의 작은 '우키요'가 되어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선물할 수 있길 바래봅니다.






에르메스 에르메상스 우키요에는 만다린, 로즈, 아이리스, 오렌지 블라썸 노트를 포함하고 있어요. 100ml 33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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