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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ba Jun 09. 2024

조금은 여유로운 삶

항상 뭐라도 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신질환 같았던 것 같다. 올해 여러 힘든 일을 겪은 이후 서서히 그 마음을 내려놓았다. 하염없이 잠을 자보기도 했고, 아무런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기도 했고, 사람들을 계속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기도 했다. 삶에 여유를 찾는 법을 배우다 보니 세상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잘 안되던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고, 좁은 인간관계가 점차 넓어지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보기도 했다.


지난번에 회사 동료가 등산을 가자고 했었다. 예전에 나였으면 온갖 핑계를 대며 제안을 거절하고 내가 보기에 돈을 더 벌기 위한 '생산적인 일'을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유를 찾은 상태의 나는 내게 다가오는 사람의 손을 뿌리치지 않기로 약속했고, 그렇게 일요일 아침 등산을 했다. 회사 동료들 뿐 아니라, 지인까지도 같이 와서 생각보다 행복한 등산이었다. 그중에 어떤 형을 만나게 되었는데, 집 가는 길이 비슷해서 지하철에서 얘기하던 중 러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 한 번 같이 러닝 해요'라고 스쳐 지나가는 말을 하며 작별을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10시에 그 형과 같이 성북천을 뛰었다.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강을 따라 뛰는 건 굉장히 오랜만의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5년 전쯤 만났던 여자친구가 이 근처에 살아서 밤마다 같이 러닝을 했던 기억이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같은 코스를 뛰고 있었다. 생각보다 함께한 추억이 많았구나.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뛰다 보니 숨이 조금 더 차긴 했지만 지루하고 힘들진 않았다. 항상 혼자 뛸 때는 자신만의 싸움을 하는 운동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같이 뛰니 러닝이 생각보다 즐겁다고 느껴졌다. 사람을 잘 가리는 내 성격상 누구랑 친해지기가 좀 어려운데,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으면서도 멋있게 사는 사람. 이런 사람과 함께라면 하루종일이라도 떠들 수 있다. 


그 형은 스타트업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봤을 때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붙임성이 있고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예전에 스타트업에 종사했던 경험이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다. 이쪽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하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다. 크고 허황된 꿈일지라도 일단 부딪치고 보는 스타일이다. 예전의 나도 그랬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그러한 성향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서 내가 잃어버린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니,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매번 만나던 사람들만 만나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 옛 추억도 많이 생각나고, 잠들어있던 세포들도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여유를 찾으니 전혀 모르던 세상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고, 그 속에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는 경험을 한다. 세상은 역시 혼자서 살아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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