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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ba Jun 17. 2024

할 말이 많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친한 형이 있다. 6년 전 즈음에 창업을 하면서 만났던 형인데, 그 일을 그만둔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을 하면서 지낸다. 만나는 날이면 거의 쉴 새 없이 한 12시간 이상을 떠드는 것 같다. 그래도 이야기의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 한 달 만에 만나도 항상 다른 주제로 공기가 채워지고, 그동안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발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형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한 명인데, 가끔 보면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지?' 할 때가 있다. 지식의 너비와 깊이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재밌다. 나는 언제나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가지는 성격이기 때문에 형을 만날 때면 보따리를 푸는 이야기 장수를 만나는 것만 같다. 


취미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축구팀에 같이 있다거나. 합창을 같이 한다거나. 카페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거나. 나도 그런 친구가 지금도 있고 과거에도 여러 있었다. 다만 취미는 하나의 수단일 뿐인 듯하다. 진정으로 자주 만나서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같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형이랑 나는 오토바이라는 취미를 같이 공유하고 있지만, 더 나아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 비슷하다.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 그래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물론 그 깊이는 나보다 형이 더 깊기는 하지만, 나 역시도 성인이 된 후로부터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서 달려온 것 같다. 그 과정 속에서 같이 실패도하고 좌절도 해봤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지금도 만나서 서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어떻게 돈을 더 벌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나는 형에게 가장 먼저 조언을 구하고, 형은 언제나 그랬듯 좋은 선택지들을 내어준다. 이번에 내가 오랜만에 삶에 여유를 갖고 잘 풀리는 일이 생겼다고 이야기하자 형이 누구보다 기뻐해주면서 자기 일인 것처럼 '이건 어때, 저건 어때?' 여러 다른 것들도 제안해 주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기존에 멈춰있던 생각들이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 나은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 한 3시쯤 만나서 다음날 3시쯤 헤어진 것 같다. 별다른 취미는 필요 없다. 그냥 만나서 술 마시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이야기한 것이 전부였다. 그냥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누군가 좋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요즘 나에게 삶에 있어 가장 큰 행복이다. 만날 때마다 삶에 대한 자극을 받는 것은 덤이다. 좀 더 정진하자. 


형을 만나고 나서, 취미 활동을 하러 갔다. 다만 나는 활동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복귀한다. 오늘도 역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떠나려는 찰나, '오늘도 회식인가?'라는 말에 '아, 가족이랑 약속이 있어서요.'라는 말로 자리를 황급히 떴다. 집에 와서 어머니랑 저녁을 먹는데, 어머니가 물어보셨다. '너는 왜 그 사람들과 밥을 안 먹니?'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어제 그 형이랑은 12시간을 떠들면서 왜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과는 1시간 반도 떠들고 싶어 하지 않는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당장 떠오르는 건 이미 거기 구성원들이 너무 친하다는 것이다. 나는 새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데, 우선 그 무리에 융화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술자리도 자주 가야 하고 모르는 사람들과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나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털어놓아야 한다. 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게 어머니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었다.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큰 무리에 한 명이 새로 들어오면 그 한 명이 노력하기보다는 큰 무리가 조금씩 노력해 주는 편이 더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노력을 했겠지만, 그것이 나를 무리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당연히 내가 유별난 것도 있겠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더 무언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이 상태로 몇 명 친한 사람들을 옆에 두고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래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다음 주에 있을  엠티를 가기로 결심했다. 나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결정이었다. 웬만하면 그런데를 잘 가지 않는 성격인데, 올해 많은 일을 겪고 나도 많이 변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고집스러운 나의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부디 형과 같이 12시간을 쉼 없이 얘기할 수 있는 한 사람만 만나도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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