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부터 재즈는 안 힙해

by 설다람


그동안 재즈의 즐거움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려는 책들과 글은 많았다. 하지만 그 글들을 읽으며 조금 답답했다. 대부분이 수학의 정석이거나 음악인 열전집에 가까웠다.


내가 재즈를 처음 접한 것은, '정확히는 내가 듣고 좋아하는 장르가 재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거장을 연주하다 시리즈에서 Antônio Carlos Jobim 편을 보고 나서였다. 스윙이 아니라 보사노바였지만, 재즈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서 곡을 바라보게 된 첫 번째 순간이었다.

실제로 재즈에 대한 감각을 느끼게 해 준 건 Nujabes였다. Modal Soul에 녹아든 샘플들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희망차고 어두운 미래가 시작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었다.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사운드였다.


그러나 재즈를 권유하는 책들은 직관적이지 않았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글들을 읽으며, 시간 낭비를 꽤 오래 했던 것 같다.


처음 재즈를 듣는 사람 입장에서 그 글들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반문하게 된다.


왜 재즈를 듣는 데, 왜 재즈 어원부터 알아야 하지?

왜 재즈를 듣는 데, 루이 암스트롱부터 들어야 하지?

왜 재즈를 듣는 데, Kind of Blues 앨범부터 들어야 하지?

등등


내가 보기엔 위와 같은 질문을 떠오르게 하는 종류의 가이드는 평론가와 재즈 꼰대들 집단과 같은 음악 권력의 카르텔이 만든 감상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재즈가 절대로 고상한 음악도, 힙한 음악도, 비주류 음악도 아니란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아, 비주류 음악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비주류라서 주류로 취급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마저 질퍽거리고, 질척거리는 지저분한 재즈의 세계로 귀의하게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재즈를 듣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 귀뿐이다.

부가적으로 보태면 좋은 건 눈이다.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은 건 제대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제대로'라는 단어에서 꼰대스러움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는 최소의 특별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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