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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서 학생들은 각자가 프로그래밍한 항생 나노봇이 4세대 내성을 지닌 황색포도상구균이 생산한 팬톤-발렌타인 류코시딘을 얼마나 정밀하게 차단하는지를 실험했다. 전기자극으로 황색포도상구균 자체를 사멸시킬 수도 있었지만, 이번 실험의 목표는 조작 능력이 뛰어난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특정한 유전자 신호에만 반응하도록 하는 것이 까다로운 과제였다. 세록은 유전체 코딩 개념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회전력의 발생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는 자기장을 조절하는 작업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에러가 나 클러치가 더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을 때는, 답이 없었다. 나노로봇이 자기복제할 수 있지 않았더라면, 세록은 어마어마한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보급형 수준의 나노로봇은 실험실에서도 배양이 가능했다. 따지고 보면, 세균과 나노로봇은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다. 나노로봇을 특별히 생명을 지닌 부류에 편입시키지 않는 이유는, 생명에 대한 인간들의 지나친 윤리 감각을 구태여 자극하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몰랐다.
모니터에서 한 구체가, 무리진 구체로 이동했다. 마치 그들 사이에 끼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이었다.
“미생물으로 애완 사업이나 해보려고, 마이크로바이움 세트로 파는 거지.”
나준이 막 식판을 테이블에 내려놓았을 때, 자열이 농담을 꺼냈다.
“아서라, 동물해방단에 고소 당할라. 차라리 아(亞)아이를 키워. 녹농균보다 훨씬 귀여우니까.”
“이미 키우고 있어.”
나준이 자열의 대답에 경악했다.
“너마저? 거짓말. 보여줘봐.”
자열이 테이블 위에 갤러리를 띄웠다. 공중에는 커다란 눈에 보라빛 머리색의 아아이가 네 발로 바닥을 기어다녔다. 아아이를 기르는 행위는 애완 행위가 아니라 육아 행위로 간주되어, 불법이 아니었다.
“와, 나만 없어. 진짜 사람들 아아이 다 있고, 나만 없어.”
나준이 억울한 목소리로 발을 굴렀다. 틱스타톡을 켠 나준은 #아아이스타톡 으로 게시물을 검색했다. 50만 개 게시글이 떴다. 아아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시종이라고 부르면서 아아이를 모셨다. 아아이는 모든 면에서 인간의 아이와 동일했지만, 인간 아이 14세 수준에서 성장이 끝났다. 누구도 과한 육아기를 거치고 싶지 않기에 새끼 단계는 보통 6개월만에 지나고, 그 뒤로는 죽을 때까지 같은 체형을 유지한다. 세록은 어째서 동물해방단이 ‘아아이’기르는 일에 만큼은 그렇게 관대한지 알 수 없었다.
“세록아 가서 보자!”
나준이 말했다,
“언제든.”
자열은 흔쾌히 둘의 방문을 허락했다.
자열의 집은 한서 대표 부촌인 한평동에 있었다. 거주자 대부분이 기사를 쓰고 있어, 정류장이나 역이 들어서지 않아 대중 교통 접근성이 낮은 곳이었다. 세록은 3km 떨어진 삼계역에서 내려, 자열의 집까지 걸어갔다. 나준은 차를 몰고 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문앞으로 가서, 나준이 인터폰으로 호출했다. 잠시 후 딸각하고, 대문이 열렸다. 조심히 문을 밀고 들어가니,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공간을 확장시킨 몰입형 정원이었다. 거대한 해일이 일더니, 물이 천장까지 차올랐고, 수중 생물들이 사방을 돌아다녔다. 수장룡 한 마리가 세록과 눈을 마주치고 지나갔다.
공간의 중앙에 문이 하나 열렸고, 자열이 둘을 맞았다. 거실로 들어간 세록은 놀랐다. 몸길이가 2미터 쯤 되어 보이는 거대한 황갈색의 고양이가 양탄자 위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길들인 고양잇과 동물 중 가장 덩치가 크다는 갈피나무 고양이었다. 이무가 관리하던 애완위기종 도감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긴 갈기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우아하게 흘러내렸다. 경이로운 생명체였다. 모든 애완행위가 금지된 현 시점에서, 고양이가 집안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신고감이었다.
“장수하고 있는 거야.”
세록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쏘아보자, 자열이 설명했다. 애완행위금지법이 통과하기 전, 키우던 애완동물은 사망할 때까지 기르는 것이 가능했다. 아니 책임져야만 했다. 만약, 저 갈피나무 고양이가 그 이전부터 자열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면, 최소한 20살이었다.
“와, 사이테스가 이렇게 컸어?”
나준이 갈피나무 고양이에 다가가 바닥에 앉아 털을 쓰다듬었다. 사이테스는 낮은 톤으로 갸르릉거렸다. 나준과 사이테스는 구면인 듯했다. 사이테스는 나준의 손가락을 살짝 깨물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너도 만져보라는 나준의 권유에 세록은 사양했다. 이무의 영향 때문에 세록은 애완행동에 학습된 거부감이 들었다. 사이테스에 시선이 가 있는 동안 자열이 방 안에서 사진으로 보았던 아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자열은 아아이 ‘자청비’를 소개했다. 자청비는 나준과 세록을 번갈아 보더니, 세록을 향해 팔을 뻗었다. 아아이의 손을 잡는 것은 육아행동이었다. 아아이의 부드러운 손을 세록이 감싸쥐었다. 따뜻했다. 온기가 손끝까지 감돌고 있었다.
“진짜, 귀엽다.”
나준은 여러 각도로 자청비를 찍었다. 세록은 자청비의 손을 놓고, 뒤로 물러서 아아이가 두 발로 섰다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걷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아이가 쓰러지는 모습에 나준은 귀여워 어쩔 줄 몰랐다.
“너 닮았는데, 단성생식한 거야?”
양손으로 자청비의 겨드랑이를 잡고 들며, 나준이 물었다.
“‘낳지 말고, 입양하세요.’ 몰라? 마음에 듣는 애 찾고 보니, 우연히 보랏빛 머리였어.”
“진짜 나만 없고, 다 있어 아아이.”
이젠 아예 아아이를 끌어 안고 바닥에 누운 나준이 칭얼댔다. 품에 안긴 채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아아이의 두 눈엔 맑은 어둠이 심겨있었다. 순간 세록은 애완욕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독립하면, 당장 키워야지. 신세록 넌 혼자 살잖아. 하나 들여봐. 중성화시키면 발정도 안 난대!”
그 말을 하며 나준이 세록을 쳐다보았다.
“중성화를 왜 시켜, 아아이도 즐길 권리가 있어.”
자청비를 돌려받기 위해 자열이 옆에 앉으며 나준에게 말했다.
“그러다 자궁농축증 걸리면, 네가 책임질 거야?”
“책임? 지금 시종한테 그걸 말이라고 묻는 거야?”
자열이 나준의 품에 있던 자청비를 잡고는 조그만 이마에다 입을 맞추었다. 이에 질세라 나준도 자청비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둘은 거의 뺨을 맞대고 있었다. 얼핏보면, 두 사람이 키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곧 둘은 진짜 키스로 옮겨갔다. 세록이 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나준과 자열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혼자 바닥에 남겨진 자청비가 세록을 향해 기어왔다, 세록은 자청비를 안고 거실 끝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산수화로 꾸며져 있었다. 나무 사이로 해치를 닮은 야광색의 알레브리헤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지나갔다. 알레브리헤가 지나간 자리엔 형광 발자국이 남았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세록은 발자국을 따라 걷다 벽에 부딪쳤다. 자청비가 놀랐는지, 작게 울었다. 세록이 팔을 요람처럼 흔들어, 달랬다. 자청비가 순백색의 웃음을 지었다. 벽을 더듬으면서 걸으니, 붓 자국처럼 선이 그어졌다. 세록은 팔을 크게 옴직여 사람만한 포도알균을 그렸다. 그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자청비도 벽으로 팔을 뻗었다. 세록은 자청비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벽에 바짝 다가갔다. 자청비는 손바닥을 벽에 찍었다. 그러자 검은 손바닥 자국이 생겼고, 손을 떼내자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숲내음이 나비의 날개짓에 따라 세록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세록은 서울 떠나와서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꼈다. 이 공간에 혼자 있었더라면, 그저 영상 체험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아이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상당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세록은 자청비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자열과 나준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코코넛 케이크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록도 옆에 앉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코코넛 케이크를 포크로 집어, 자청비에게 먹였다. 대화 주제는 다음주 필수 교양 수업인 체육 과제였다. 자열은 자찬했고, 나준은 불평했고, 세록은 저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